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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Jun 15. 2022

최고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최고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해서 평생토록 머물고 싶은, 그런 하루를 생생하게 그려보는 것이다. 


그날 아침은 알람 소리 없이 시작된다. 눈이 저절로 떠지는데 원래 일어나야 할 시간보다 삼십 분은 일찍 깬다. 그런데도 전혀 몸이 찌뿌둥하거나 피로한 기색이 없다. 간밤에 꾼 꿈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말끔하고 상쾌한 수면이다. 어떠한 저항도 없이, 가볍게 몸을 일으키고 창문을 열어 바깥을 내다본다.


하늘은 무척 깨끗하고 맑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이다. 새벽에 비가 내렸는지 바닥이 축축하지만 햇볕은 그림자가 질 정도로 따사롭게 비친다. 오래 걸어도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선선한 바람도 분다. 이토록 티 없이 해맑은 풍경을 바라보면 마치 갓난아이를 보듯 웃고 싶은 마음과 울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 나는 날씨에 따라 그날의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인간이기에, 창문에 기대어 오늘 하루는 분명 평온한 날이 될 것이라 예언해본다.


그날은 아무런 계획이 없다. 내가 해내야 할 일도 없다. 그저 바닷가 주변을 천천히 산책한다거나 단골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신다거나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다는 정도의 가벼운 목표만을 떠올린다. 이것은 참 오래간만에 갖는 여유다. 머리를 비우고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내는 것을 오늘의 일과로 삼기로 한다. 


조금 무료하다 싶으면 가볍게 차려입고 바다에 몸을 담근다. 수영은 잘 못하지만 파도에 흔들리며 수면 위에 둥둥 떠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바닷물은 햇빛에 충분히 데워져서 체온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물놀이를 즐기고는 이내 뭍으로 나온다. 돗자리에 앉아 젖은 몸을 바람에 천천히 말린다. 미리 챙겨 온 샌드위치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얼음을 넣은 맥주도 시원하게 들이켠다. 살짝 취기가 올라오니 기분이 더욱 좋아진다.


저녁에는 사랑하는 친구들과 만난다. 저녁 식사로는 향이 독특한 어느 외국 음식을 먹어본다. 친구가 추천한 음식점인데 모두의 입맛에 너무나 잘 맞는다. 식사를 한 뒤에는, 골목 사이사이를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바에 들어간다. 그곳은 주로 쳇 베이커나 빌 에반스, 엘라 피츠제랄드의 음악을 틀어줬다. 우리는 60년대 재즈 음악을 들으면서 지난 추억을 나눈다. 그리고 종종,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저 '너무 좋다'라는 말을 남발한다. 가끔씩 생기는 침묵도 그리 어색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말없이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고 노을을 바라보며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한다.


이런 날은 내게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언젠가 내가 스쳐 지나왔던 순간들의 모음이다. 나는 파편적으로나마 이런 날들이 나에게 찾아왔고, 그것을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어쩌면 내가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각각의 기억들이 칵테일처럼 서로 흔들리고 뒤섞여서 아름다운 색깔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그저 앞으로 내가 해나갈 일은 더 나은 최고의 하루를 상상할 수 있도록, 나를 붙잡는 순간들을 천천히 모아가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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