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좋다. 사람으로 태어나 마주했던 고민과 두려움과 아픔 같은 것들을 나는 대부분 잠을 통해 해결했다. 헤어짐의 아픔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끙끙 앓던 신열 같은 것들도 잠을 자고 나면 한결 나아졌다."
-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잠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몸도 마음도 자고 일어나면 말끔해진다.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했다. 그건 꽤 효과가 좋았다. 대부분 내 몸을 괴롭혔던 것은 피로와 스트레스였고, 내 마음을 괴롭혔던 것은 현실 자체가 아닌 그것을 확대해서 바라보고 왜곡해서 해석하는 나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몸과 마음이 아주 힘든 시절에 나는 늘 잠을 잤다. 세상에 대한 원망이 독소처럼 내 안에 머물고 있을 때, 내가 저주하는 것과 마주해야 하는 내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그랬다. 아무런 고통도, 의식도 느낄 수 없는 잠의 시간은 내가 평온하고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였다.
졸리지 않으면 잠이 들 때까지 눈을 감고 기다렸다. 잠들기를 기다리면서, 예전에 본 영화 줄거리를 떠올리거나 아예 새로운 상상을 펼치고는 했다. 그때 만약 내가 다르게 행동했다면 어땠을까, 내가 용기를 냈다면 그 뒤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런 식으로 후회되는 마음과 어설픈 나 자신을 위로했다. 그리고 잠에 들고나면 모두 꿈처럼 잊었다.
여전히 나는 잠이 많은 편이지만, 예전에 비하면 오래도록 자는 날들이 줄었다. 일어나야 할 이유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아침 안부를 묻고 싶다, 따뜻한 밥을 해먹이고 싶다, 편지를 쓰고 싶다, 날씨를 알려주고 싶다, 등을 토닥이고 싶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기를 소원하고 싶다. 그렇게 누군가를 향한 작은 바람들이 나의 몸을 일으켰다. 이제 나는 깊은 잠에 들어 심연에서 상처를 치유하지 않는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이겨내는 법을 배웠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는 밤이면 부디 쉬이 잠들기를 바란다. 잠에서 깨면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 긴 고민에 대한 답이 아침이 되면 문득 떠오를지도 모른다. 하루만에 달라진 것이 없다해도 상관없다. 당신의 짐은 함께 짊어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떤 용기는 힘들고 어려운 날의 끝자락에서도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속삭일 때 생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