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손길이 따스하게 닿을 때
"절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아요. 인간은 타인의 손길이 자신에게 따스하게 닿을 때야 비로소 살아 있는 기분을 느끼니까요."
- 알베르트 키츨러 <나를 살리는 철학>
눈이 뻑뻑하다. 어깨는 단단하게 뭉쳤다. 머리는 몽롱하고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이 상태를 어쩐지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두 사람이 살던 공간에 세 사람이 살게 된다는 건, 그리고 함께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는 건 무거운 피로도 잊게 만들었다.
지금은 새벽이고 아내와 아기는 자고 있다. 나는 이따금씩 몸을 일으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피고 이불을 다시 덮어준다. 꼭 감은 눈을 바라보고 미세한 숨소리에 귀 기울인다. 눈물을 닦아주고 내 곁에 있어주어서 고맙다고 속삭인다. 이 일련의 과정들이 내게 주어진 신성한 의무이자 의식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이따금씩 쓰디쓴 아픔을 맛보게 될 것이고 서로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기도 하겠지만, 이 순간이 있기에 어떤 일이든 무사히 견딜 수 있겠다는 용감한 마음이 생겨났다.
오늘 아기는 내게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동물 소리 같은 딸꾹질을 하며 인상을 픽 쓰다가도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기도 하고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다가도 재채기를 하고는 이내 졸린 듯 하품을 한다. 나는 마치 어느 외진 마을에서 오로라를 바라보듯 작고 경이로운 광경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이 순간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언젠가의 나는 혼자인 삶으로 충분했다. 당시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간섭받고 싶지 않았다. 그게 편했다. 감정을 소모할 일도, 상처를 주거나 받을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허전한 마음은 애써 모른 척했다. 그것이 내 속을 파먹고 상처가 곪도록 내버려 두었다. 외로운 시절이었다.
어쩌면 나는 오늘을 만나기 위해 지금껏, 그만큼의 고초를 겪어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나 세상이 나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마땅히 누려야할 기쁨들을 빼앗겨 왔다고 여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돌려받아야 할 것보다 더 큰 선물을 받게 되었다. 타인의 손길이 따스하게 맞닿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는 기분을 느낀다. 혼자서는 미처 알지 못했을 마음이다. 이 마음을 잊고 싶지 않아서 글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