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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Apr 19. 2019

말하기의 신중함

말하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대학교 때 여러 별명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말로만'이었습니다. 말로만 하고 실제로 행동하지 않아서 붙여진 별명이었습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들을 했었나 봅니다. 그만큼 여러 번 실망시켰다는 거겠죠. 참으로 부끄러운 별명입니다.


저는 잘 바뀌는 사람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설득도 잘 당하고 타인의 생각도 쉽게 수용하는 편이에요. 좋게 말하면 유연한 사고를 가졌다고 할 수 있겠고, 우유부단하다고도 하겠지요. 저는 이런 성격이 제게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성격 때문에, 언제나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저는 말을 할 때마다 신중하려고 합니다. 내가 지금 내뱉는 말이, 앞으로도 지킬 수 있는 것인가? 내가 정말로 믿고 있는 것인가? 와 같은 생각을 하는 거죠. 그렇다 해도 모든 말을 지키지는 못합니다.


가끔 동료들이 저를 놀릴 때가 있어요. '잠깐만요. 생각 좀 해볼게요.' 하고는 전원이 꺼진 것처럼 멈춰있는 제 모습을 따라 하거든요. 그럴 때면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신중하게 말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돼요. 아마도 이런 고민의 시간이 없었다면 내가 어떤 말을 내뱉었을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이런 태도를 버리진 못할 것 같아요. 너무 개인적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닌지.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닌지. 모두의 필요가 아니라 나의 감정을 위해 말하는 건 아닌지. 지금 하는 말이 논의하는 목적에 동떨어져 있는 건 아닌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단어는 아닌지. 아니, 이 모든 걸 다 떠나서 말하기 전에 3초 정도 숨을 내쉽니다. 잠깐의 침묵을 참는 용기만 있다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더라고요.


다만 '메시지'에는 신중한데 '전하는 방식'에는 여전히 신중하지 못한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을 적당히, 유하게 전하는 데에 서투르다는 생각니다. 아예 말하지 않거나 그렇지 않으면 직설적이고 날 것의 언어로 말한다고 해야 할까요. 조금은 어른의 방식 연습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신중함은 용기 있는 자의 지성이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신중함은 종종 무시당하는 가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중함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눌언민행(訥言敏行). 공자의 말입니다. '말은 어눌할지라도 실천은 민첩해야 한다.' 말은 아끼고 행동으로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제는 조금 신중해졌습니다. 저는 '말로만'이라는 별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오늘은 '밥 한번 먹자'라고 말로만 해왔던 친구에게 연락해봐야겠습니다. '말로만'이라고 불리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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