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용 Apr 28. 2019

싫어하는 것 목록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내가 싫어하는 일을 안 하는 게 더 중요해



팟캐스트를 듣고 있었다. 이어폰 사이로 그 말이 '톡'하고 튀어나왔다. 아, 그렇지. 맞는 얘기다. 욕구를 만족시키기보다는 고통을 줄이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니까. 나는 수긍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싫어하는 게 뭐였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걸 말하기가 편했다. 그건 내가 싫어하는 게 너무 많아서일까. 아니면 싫어하는 걸 떠올리는 일이 싫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걸까. 나는 내가 싫어하는 것 목록을 만들기로 했다.


내가 싫어하는 말이 떠올랐다. 억지로. 나는 이 단어를 미워한다. 우선 발음부터가 싫다. 첫 번부터 '억'하고 소리가 목구멍 끝 걸리는데 괜스레 강압적인 태도와 억울한 감정이 느껴진다. '지'에서는 턱 하고 걸린 숨을 내쉬면서 진공상태가 된다. 마지막으로 '로'를 할 때서야 비로소 공기를 내뱉을 수 있는데 서글프다. 그 일련의 과정이 마치 정당하지 않은 요구에 울컥했다가 끝내 체념한 사람의 한숨처럼 들린다. 나는 그 발음과 의미가 마음에 안 들어서, 가끔은 사전에서도 지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어 하나가 없어진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런 마음이 들곤 했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쓸데없이 요란한 게 싫다. 진심이 아닌 것 같아서 그렇다. 네가 말하는 '진심'이 뭐냐고 묻는다면, 겉과 속이 같아지려고 애쓰는 일이라고 대답하겠지만..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 보다는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가 더 중요하게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진심이 아닌 것도 싫어하지만, 그보다 더 싫어하는 것은 거기에 속아서 넘어가는 사람들이다. 중요한 건 항상 겉이 아니라 속에 숨어있으니까, 자세히 봐야 한다는 걸 모두들 잊는 걸까? 조금만 더 신중하고 숙고한다면 이 세상 문제의 절반이 줄어들 것만 같았다.


내게 실망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이를테면 한숨을 쉬거나, 나를 바라보지 않고 대답하거나,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처럼 냉랭한 표정을 지을 때. 그럴 때면 나는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느낀다.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찌꺼기가 되어 버려지는 시간이다. 그러면 화가 식도를 비집고 올라온다. '화'는 두 가지 메시지를 갖고 있다. '내가 맞고 네가 틀렸어.'와 '나는 너의 잘못을 바꿀 거야.' 그 아래에 감춰진 감정은 '수치심'이다. 스스로에 대한 무가치함, 무력함, 부끄러움, 영혼의 늪지대 등등 그것을 일컫는 말들은 다양하다. 본질은 간단하다. 내가 불완전한 사람이란 걸 들키기 싫은 마음이다.


계속해서 목록을 채워간다. '맞다, 너 그거 알아?'라고 했다가 '아니다, 됐다.'라고 말하는 것...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한 사람과 대화하는 것... 자기도 꼰대면서 꼰대를 욕하는 것... 기타 등등. 하나씩 적다 보니 의외로 새로운 것은 없었다. 다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종류였다. 그럼에도 목록을 적을수록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달까. 불편한 상황을 이해하고, 가끔은 '아, 저는 이런 걸 싫어해서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 목록은 내가 싫어하고 경계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네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다시 한번 내 마음을 '툭'하고 건드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하기의 신중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