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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May 23. 2019

쓰다 보면 솔직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글을 쓰다 보면 솔직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말과 글은 조심해야 한다는 걸 배운다. 나는 입천장까지 나온 말을 삼켜야 하는 사람이다. 나의 언어는 여전히 서투르고 엉성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국어를 배우기로 한 초등학생부터 지금껏 그랬다. 머릿속 심상을 그림으로 온전히 그려내지 못하듯, 나의 미진한 붓은 간신히 솔직함 비슷한 것을 따라 내릴 뿐이었다.


쓰다 보면 멋진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무엇도 아니라는 사실을 마음 아프게 깨닫는다.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니 텅 비었더라. 텅 비어있는 줄만 알았더니 텅 비어있을 공간도 없더라. 이런 종류의 얘기다. 자신에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는 초라하다. 오르고 또 올라도 못 오를 산을 앞에 둔 사람처럼 초라하다. 수십 개 발자국이 찍힌 길을 바라보는 허망한 숨소리만큼 초라하다.


나는 기민하지 못하다. 그래서 물리적 감각이 아닌 무언가로 쫓다 보니까 분명 있는데 보이지 않는 추상을 사랑한다. 인정받기는 오래전에 포기했다. 하지만 쓰다 보니 인정받는 글을 내야 했다. 무엇보다 내 안에 있는 제3의 검열관에게 인정받아야 했다. 그렇게 내가 내 속을 향해 자꾸만 귀 기울이다 보면 가운데 명치로 빨려 들어가는 모양으로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수그러들어서 제3의 검열관을 만나보려고 하면 보이지 않았다. 그건 아버지도 아니고 법과 도덕도 아니었다. 저만치에 숨어서 울먹이는 초등학생이었다.


전에는 내가 생각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생각이 없는 편이 맞았다. 내가 5분간 주절주절 이유를 설명했을 때 '그건 다 핑계가 아닌가요.'라고 상대가 말했다. 나는 멍해져서는 그만, 당신 말이 맞다고 대답했다. 곧이어 당신 말이 사실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렇게 느꼈는데요.라는 말을 입천장에서 꿀꺽 삼켰다. 나의 엉성하고 서투른 국어로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할 자신이 없어서 였다. 쓰다 보면 솔직한 사람이 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바보 멍청이 겁쟁이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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