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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May 08. 2019

꽃 같은 리액션

서른 번째 생일날의 단상

1


회사에서 꽃을 받았다. 서른 번째 생일이었다. 꽃을 선물 받는 건 참 오랜만이다. 아마 대학 졸업식이 마지막일 것이다. 꽃은 흰색과 보라색이었다. 초록잎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달랑 몇 송이만 있는 게 아니라 풍성하게 꼭 묶여 있었다. 향이 좋았다. '꽃은 좋겠다. 자기 예쁜 건 알아가지고. 이렇게나 맘껏 뽐내고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2


"아이고, 이렇게 꽃을 다... 감사합니다."

나는 꽃을 받으며 엉성하게 말해버렸다.

그러자 한 동료가 말했다.

"그게 끝인가요...?"

나는 곧바로 "아, 죄송합니다."하고 사과했다. 


생일 선물을 받고도 사과를 하다니. 참 바보 같았다. 나는 리액션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원체 감흥이 없어서 인지, 표현을 못하는 사람이어서 인지는 모르겠다.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은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을 자주 받는 것인지, 아니면 감정을 드러내는 게 편하고 익숙한 것인지 궁금했다. 나는 꽃 같은 리액션을 해버렸다. 금방 시들어지고 사라지는 것이 같았다.



3


꽃은 두 가지 향기를 내보낸다고 한다. 첫 번째는 꿀벌과 나비를 유혹해서 번식을 하기 위한 향기다. 두 번째로는 잎사귀를 갉아먹는 애벌레나 해충을 없애기 위해 기생 말벌 같은 곤충을 유혹하는 향기다. 그렇게 이끌려온 곤충은 꽃에 있는 애벌레를 잡아먹거나 알을 기생시켜 제거한다.

 

꽃은 꿀벌과 나비를 유혹할지, 해충을 쫓아낼지 결정해야 한다. 둘 다 소홀히 할 수 없으므로 꽃은 딜레마에 빠진다. 나는 상대방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과 부끄러운 감정을 억제하는 것 사이에 있었다. 어쩔 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에서 '푸스스'하고 바람이 빠진 것만 같았다. 결국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나는 꽃 같은 리액션을 해버렸다. 해충은 그대로 남았고 꿀벌과 나비는 멀리 날아갔다.



4


꽃을 들고 퇴근했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 앞에 섰다. 어두운 유리에 비친 나는 검정색 상의와 검정색 하의를 입고 있었고, 한 손에는 꽃을 들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눈에 띄고 싶지 않은 사람이 존재만으로도 특별한 것을 들고 있었다. 누가 봐도 우스웠다. 나는 스크린 도어에 비친 나를 보며 꽃다발을 뒤로 감추었다. 어차피 숨길 수도 없지만 그렇게 했다. 뭔가 위안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랬다.



5


생일이 지나가기 전에 친구에게 물었다. 내 장점이 뭐냐고. 그랬더니 친구가 말했다. 생각을 글로 잘 옮기고,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그리고 잘 들어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단점은? 하고 다시 물었다. 세 가지가 없지. 말이 없고, 재미가 없고, 눈치가 없고. 나는 웃었다. 그렇게만 들으면 참 가까이하기 싫은 사람인데? 하며 웃었다. 그랬더니 그녀가 말했다. 근데 나는 찾아낸 거지. 뭐를? 그럼에도 괜찮은 너를. 아. 으음. 지나갔다. 뭐가? 내 서른 번째 생일. 나는 끝까지 꽃같은 리액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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