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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Jun 01. 2019

청계천에는 잉어가 살고 있다


근무시간에 농땡이를 치고 청계천에 왔다. 저편 멀리, 스피커를 울리는 노동가요를 등지고 하천을 따라 걸었다. 계단 하나를 내려왔을 뿐인데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머리 위로 유리벽 건물이 아니라 하얗고 푸른 이팝나무가 보였다. 인적도 드물고 적막했으며 다만 하천 소리만이 흐르고 있었다. 종종 양복을 입 회사원들이 벤치에 앉아있는데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그늘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물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유영하고 있다. 내 장딴지만 한 굵기에 무릎까지 올라올만한 크기였다. 그 육중한 몸집으로 어찌나 여유롭게 헤엄치는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나도 즐거워질 정도였다. '저 녀석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까. 아니, 꼭 생각하며 살 필요는 없다만...', '혼자서 외롭지 않을까. 아이고 저기 몇 마리 더 오네.' 나는 혼자서 묻고 대답하면서 한동안 잉어를 구경했다.


청계천에 잉어 떼가 모습을 나타낸 건 13년 4월 말부터다. 산란을 위해 한강을 거쳐 중랑천, 청계천까지 약 10km를 거슬러 올라온다고 한다. 10km면 우리 집에서 회사까지 출근하는 거리다. 그 거리를 물길을 거슬러 올라왔다니 행군을 마친 훈련병과 진배없었다. '마냥 여유로운 줄 알았더니 너희도 꽤나 고생했었구나. 그래도 너희들은 무언가 사명이 있었으니 힘들지만은 않았을 거야.' 나는 잉어를 속 편히 판단한 것에 대해 반성하면서 간단한 위로를 보냈다.


퇴근하는 길이었다. 도중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횟집 앞이었다. 그곳에 파란색 페인트로 칠해놓은 수족관이 있었다. 두꺼운 유리벽 안으로 가자미인지 광어인지 바닥에 가라앉은 생물과 각종 잡어가 미동 없이 물에 잠겨있었다. 청계천과 횟집 수족관. 자유와 억압. 이토록 뻔한 클리셰는 글을 쓰는 나조차도 부끄럽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원래부터 삶이란 어디선가 본 듯한 것들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일단 그 부분은 차치하고.


내가 주목한 건 수족관 속 물고기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사장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수족관에서 조개를 하나씩 꺼내어 깨끗한 솔로 문지르고 있었고, 딸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모를 앞치마를 두른 아가씨는 그 옆에서 수족관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 장면이 어디선가 본 듯해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잊히지가 않았다. 아무런 의미 없는 이야기인 줄은 알지만 그 사람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 청계천에는 잉어가 살고 있다고. 그것들은 알을 낳기 위해 10km 물길을 거슬러 올라온다고. 그 정보가 도대체 무슨 효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모두 잊고 사는 건 아닌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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