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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May 29. 2019

어지러운 마음을 욕실에 씻어냈다


1

한참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질 않았다. 결국엔 안 되겠다 싶어 몸을 일으켰다. 나를 붙들고 있는 질문은 하나였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참으로 지긋지긋하고 융통성 없는 문장이었다. 새벽 3시 반이었다.


2

요즘 아버지의 작별 인사(를 겸한 잔소리)가 조금 바뀌었다. 전에는 '밥 좀 잘 챙겨 먹고 다녀라.'였다면 지금은 '재밌게 살아라. 재밌게.'가 됐다. 그럴 때면 '아버지 걱정 마셔요. 나는 이미 재밌게 살고 있어요.'라고 자신 없이 대답하곤 한다. 그러면 아버지는 '재밌게 살아. 재밌게.'라고 재차 당부하신다. 그것이 꼭 인생의 진리인 것마냥 몇 번이나 강조했다. '나는 재밌게 살고 있으니 너도...'라고 말해주었다면 조금이나마 응원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와서 말하자면, 아버지, 솔직히 나는 재밌게 사는 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불행하냐 묻는다면 불행하지 않다고 대답할 테고, 행복하냐 묻는다면 행복한 것 같다고 대답할 테지만. 재밌게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멀뚱이 고민에 잠기는 꼴이 됩니다. 오늘은 새벽까지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기어이 몸을 일으켜 어지러운 마음을 욕실에 씻어냈습니다. 머리카락 사이에 엉긴 진흙처럼 물에 흐르는 것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도 있습니다만. 이렇게라도 해야 그나마 나아진 기분입니다.'라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찬물을 몸에 끼얹었다. 새벽 3시 40분이었다.


3

'글을 계속 써야 할까요?

내가 쓴 글이 대체 의미가 있을까요?

혼자서 괜히 힘쓰고 있는 건 아닐까요?'


언젠가 이런 속절없는 질문을 어느 작가에게 물은 적이 있다. <쓰기의 말>, <글쓰기의 최전선>을 쓴 은유 작가였다. 그녀는 내게 글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저 글 쓰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지속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나의 글이 단 한 명에게라도 감응을 준다면 그것대로 의미가 있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개져서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해서 스스로 피곤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본질이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은 일종의 불안과 강박이었다. 때로는 그럴듯한 의미 없 일도 흔쾌히 해볼 수 있는 인생이, 아버지가 말하는 재밌게 사는 것이 아닐까.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쓰지 말자.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살자. 런 생각이 들 때쯤 조금 개운해졌다. 을 눕히자 눈꺼풀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새벽 3시 5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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