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은 나의 고향이다. 강릉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그곳은 분명 나의 고향이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군 전역까지, 나의 인격은 대부분 그곳에서 형성되었다. 문득 떠오르는 그리운 마음도 그곳을 향해있다.
강릉은 대관령과 동해 사이에 있는 도시다. 시내에는 남대천이 가로지르고, 시내를 벗어나면 산과 바다를 쉽게 볼 수 있다. 어디서든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고, 높은 건물이 없어서 탁 트인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인적이 드물었다. 휴가철을 제외하면 도로는 한산했고 줄 서는 일도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인천에서 강릉으로 이사 왔다. 나는 싫었다. 시골이라는 생각에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강릉은 분명 대도시는 아니었지만 시골도 아니었다. 전학 첫날에는 사투리를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만나 빠르게 적응했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의 목표는 대관령을 넘어가는 것이었다. 어디든 강릉만 벗어나면 된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소망이었다. 인터넷이 발달한 시기에도 태백산맥이라는 물리적 장벽은 우리를 갑갑하게 만들었다. 나는 입시에 성공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울에 상경했다.
이윽고 군 생활을 위해 강릉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바뀐 건 없었다. 할머이처럼 시나매 흐르는 도시였다. 나는 서울로 올라가고 싶었다. 모든 게 느리게 흘러가는 도시에서 마음 급한 건 나뿐인 듯 했다. 군을 전역하고 나는 서울에서 줄곧 지냈다. 이방인인 듯, 여행자인 듯 서울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지낸 것이 어느덧 10년이다. 이제는 강릉에서 지낸 날보다 서울에서 지낸 날이 더 많아졌다.
내가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운 장소와 기억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다만 그리움이 너무 깊으면 향수병이 되겠고, 너무 얕으면 공허해질 것이다. 친구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던 남대천 제방, 노부부가 운영하던 메밀 전집, 아버지와 동생과 때를 밀던 해수 목욕탕, 학교 급식소 가는 길에 펼쳐진 해송(海松) 숲, 다섯 개의 달이 뜬다는 경포 호수, 만남의 장소였던 신영극장, 나를 너무나 좋아했던 럭키 문방구 아주머니,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혼자 맥주를 마시던 한라 아파트 놀이터, 그토록 싫어했던 찝찔한 바다 내음까지도. 서울에 살다 보면 그런 그리움이 종종 폭력적으로 나를 휘감고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