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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Feb 04. 2020

손에 힘 빼기


일기장에서 이런 혼잣말을 발견했다. "우리 있잖아. 왜 그렇게나 힘주며 살았을까.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 내 인생은 끝장나는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 참 웃기지. 지금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말이야. 어쩌면 지금 나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들도 결국 시시한 일이 되어버릴지도 몰라. 나는 이제부터 그렇게 믿기로 했어."


가끔 시간이라든가 인생의 기류가 내 주변을 흐르고 있다는 걸 깨닫는 시점이 있다. 마치 다이아몬드를 녹인 물을 끊임없이 흘려보내는 기분이랄까. 그때마다 나는 '어느 정도 긴장감으로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머리로는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몸으로는 '그래서 어떻게, 어느 정도로 살아야 된다는 건데?'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회사에 내 전력을 쏟아보기도 하고, 백수로서 시간을 아낌없이 낭비해보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허무함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 중간 어딘가라는 의미인데, 그 '중간'이라는 감각이 너무나 추상적이고 막연하다 보니까 잊어버리기 십상이었다. 그러면 어느새 너무 몸에 힘을 주고 있는 나를 발견하거나, 너무 늘어진 나무늘보 같은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체감(體感)의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손에 힘 빼기'라는 의식을 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손에 힘을 꽉 쥐어본다. 다른 사람이 풀어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 상태를 100이라고 해보자. 그리고 천천히 힘을 빼보는 거다. 100, 90, 80, 70... 천천히 50까지 내려가 본다. 딱 절반이다. 그 감각을 기억해둔다. 그리고 더 내려가 본다. 40, 30, 20, 10... 그리고 손에 완전히 힘을 빼버리는 것이다. 긴장이 풀리고 늘어지는 게 느껴지는가. 그 손은 아무런 힘도 없고 존재만 하는 상태다.


나는 이를테면, 딱 50 정도의 긴장감으로 살아가려는 것이다. 꼿꼿이 힘을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늘어지지 않는 정도로 말이다. 따뜻한 봄에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슬며시 잡는다거나, 노견(老犬)의 흰 목덜미를 살갑게 어루만지거나, 향기로운 레드향을 손에 쥐는 힘만큼. 딱 그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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