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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Apr 20. 2020

모든 '픔'을 미워하기로 했다


어제는 온종일 앓았다. 삶은 6개월에 한 번씩 나를 큰 아픔 속에 몰아넣는다. 그리고는 일상의 소중함과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일깨워준다. 아픈 건 너무 싫다. 나는 아플 때면, '행복은 아픔이 없는 상태다.'라는 소극적인 행복 이론을 믿게 되었다. 아픔이 얼마나 싫던지, 나는 '픔'이 들어가는 모든 단어를 미워하기로 했다. 아픔, 슬픔, 배고픔, 서글픔, 헤픔, 어설픔, 고달픔, 구슬픔, 애달픔, 가냘픔. 그러나 이 모든 '픔'을 빼놓고는 나를 설명할 수 없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온 마음으로 미워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픔은 사라진다. 그것이 얄밉기도 야속하게도 느껴지지만 우선은 감사한 마음이 었다.


아픔을 끝내고 나면, 제일 먼저 청소를 한다. 우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둔다. 창문을 열어 탁한 공기를 환기한다. 이불은 깔끔하게 펼쳐놓고 밀린 설거지를 끝낸다. 탁자 위에 놓인 잡동사니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물티슈로 쓱쓱 닦아낸다. 종량제 봉투를 꾹꾹 눌러 담아 질끈 묶고서 분리수거 쓰레기와 함께 내보낸다. 청소기를 휘우우웅 돌리고 물기를 꼭 짠 걸레로 바닥을 훔친다. 책장에 널린 책들을 제자리에 꽂으면 청소가 끝난다. 땀으로 끈적한 몸을 씻어내고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는다. 손톱과 발톱을 적당한 길이로 깎는다. 나는 그렇게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청소를 끝내자 비가 내린다. 나의 아픔과 함께, 이 세상 모든 '픔'들이 봄비에 씻겨 내려갔으면 좋겠다. 너무 멀어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떠나버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무언가를 미워할 일도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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