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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Jul 18. 2019

그 밤의 한강공원

우리가 함께 있을 땐 아무것도 아닌 일이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 밤 한강공원을 기억합니까. 여름밤에 맞는 강바람은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그 노래를 기억합니까. 우리는 다리를 건너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문 리버 였습니다. 가사를 잘 몰라서 얼버무리다가도 그 부분만큼은 둘 다 자신 있게 불렀습니다. 차가 쌩쌩 달리고 있어서 우리는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저 앞에 남녀가 걷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작게 소곤거립니다. "커플인가 봐." "아냐, 둘이 손도 안 잡는데?" "근데 거의 닿을랑 말랑해." "아마 공원에 가서 고백하려나 봐." 나는 그럴 리 없다며 그녀의 말을 일축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걸지 않은 내기를 합니다. 그들은 결국 공원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기에서 이겼지만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이었습니다.


밤 12시가 되자 공원이 닫힌다는 방송이 들립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유롭게 공원을 거닐었습니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시원했습니다. 개구리 우는 소리 상쾌했습니다. 그 소리들은 마치 내 귀로 들어와서 촉각으로, 시각으로, 후각으로 발산하는 듯했습니다. 저 구석에 새끼 고양이가 숨어 있었습니다. 저 녀석 말고는, 이 공원에 우리 둘 뿐이었습니다.


"저기 야경 봐." "너무 좋다." "저기 불 켜진 건물은 뭘까." "아직도 일하고 있나 봐." "저 사람들은 모르겠지?" "뭐를?" "자신들이 야경으로 보인다는 걸?" "아마 모르겠지." 우리는 쿡쿡 소리를 내며 웃었습니다. 달은 구름에 가려서 마치 손톱으로 긁어낸 자국 같았습니다. 공원의 모든 불이 꺼졌습니다. 우리는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때의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과 텅 빈 한강공원을 걷고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고 실속 없는 내기를 하고 함께 문 리버를 부르는 날이 또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것은 은행에서 대출이 나오지 않는다거나 5평짜리 반지하 원룸에 살고 있다는 사실과는 별개의, 그러니까 전혀 다른 세계로부터 떠오르는 감정이었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어떤 밤에 한강공원을 찾더라도, 그 밤의 한강공원에서 느꼈던 감정을 기억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있을 땐, 아무것도 아닌 일이 사건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보는 풍경은 문득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고민하게 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는 "당신은 잘하고 있어."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라고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어느 책의 문장처럼 우리는 매일매일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지만 이런 하루라면 기꺼이 사라져도 괜찮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꽤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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