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꾸리는 것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

by 조세핀

발레 '스트레칭' 수업을 들은 지 6개월이 넘었다. 여전히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여전히 유연하지 못하며 여전히 맞는 자세를 취할 수도 없지만 계속해야겠다는 마음은 남았다. 어떤 목표를 정하고 이 운동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도 하고, 이 수업을 듣는 시간이 좋아서 계속하고 싶다. 물론 하면서 멋진 몸매를 갖게 되면 좋겠지만, 지금까지 해본 결과 역시 그런 건 식단에서부터 가능하다. 비록 스트레칭 수업이기에 완전한 발레 수업까지는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간이 좋다. 음악을 들으면서 어느 정도는 내 한계를 시험하는 그 시간이 온전히 내 것처럼 느껴진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을 하러 갈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오전 업무에서 겪었던 기분 나쁜 일들, 어이없는 지시, 황당한 사람들로 인한 심리적 고통이 무마될 정도로 내 몸을 늘려 보기도 한다. 그렇게 육체적 고통을 좀 내 몸 곳곳에 심어주면 심리적으로 느꼈던 아픔들은 금세 까먹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상쾌하게 돌아올 때는 또 기분이 어찌나 좋은지,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다. 그 어떤 일을 한 시간들보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한 그 한 시간이 귀하다.


재작년에는 요가 수업을 8개월 정도 들었다. 선생님께서 자세가 아주 나쁜 나를 어떻게든 바꿔 보려는 마음이 느껴지는 수업이었다. 나는 나를 포기해도 선생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응원해 주셨다. 돌아봐도 따뜻했던 수업이었는데, 요가원이 없어져 버렸다. 그 이후로 다른 요가원을 찾는 것에 실패했다. 까마득한 저녁에 이어지던 요가의 시간은 발레의 시간과는 달랐다. 발레의 시간이 '단련의 시간'이라면 요가 수업은 '용서의 시간'이다. 동작을 하나하나 취할 때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를 받아들이고, 세상을 받아들이면, 마음 상할만한 모든 일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지막에 '사바 아사나'까지 하고 나면 집에 돌아가서 푹 잘 수 있다. 요가 수업을 들으러 가는 것이 다소 귀찮았던 게으른 나까지 용서했으니.


무엇보다 계속하는 것. 마음 같은 것 먹지 말고 그냥 하는 것. 요즘에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그렇게 운동은 열심히 가는데 글 쓰기는 어쩐지 날이 갈수록 쓰기 어려워지는 것은 왜일까. 얼마 전에는 글을 쓰지도 글을 읽지도 않은지 너무 시간이 오래되어서 약간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전까지는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었는데, 갑자기 그 부분이 빠지면서 무엇이 그 공간을 채웠는지 살펴봤다. 살펴볼 필요도 없이 스크린 타임이 범인을 잡아 왔다. 릴스라는 애다. 릴스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집 앞 쓰레기 투기범 잡은 사람, 건강검진 꾸준히 받으라는 사람, 최애 공연을 보러 다니다가 친해진 사람, 아무나 만나서 밥 사달라고 하는 사람, 서울역에서 길 알려주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많은 신세계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다가 보니 내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다. 내 마음을 채울 시간이 없다. 이렇게 오늘도 릴스를 그만 넘길 것을 다짐하지만 궁금하다. 세계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조금이라도 공감을 해보고 싶다.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싶다.





*AI로 쓰지 않은 글이 요즘 프리미엄을 붙이고 나온다는데, 이어 나갈 수 있을까요? AI의 유혹을 이기고 오늘도 내일도 글을 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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