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요 자꾸, '책순(冊筍)’이.
나만의 작업실을 꿈꾸게 된 것은 방에 ‘책순(冊筍)’이 쑥쑥 자라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이 ‘책순’이라는 것은 방금 내가 지어낸 말로, 이와 유사한 모양으로는 숲에서 자라는 ‘죽순’, 동굴에서 자라는 ‘석순’이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쇼핑 중의 쇼핑, 책 쇼핑을 해 온 터라 이 책순은 천장을 모르고 자라났다. 넓지 않은 방이기에 임시로 작은 책장까지 구매했지만 책장이 생기니 공간이 생겼다는 괜한 안도감에 책을 조금 더 샀는지, 방은 더 좁아졌다.
처음부터 작업실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 책들을,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한 공간에 모아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세어보면 그리 많지도 않지만, 앞으로 책을 계속 살 것이기 때문에 이들을 적절한 공간에 모셔두고 싶은 것이다. ‘책을 좋은 곳에 꽂아두고 싶다’에서 꼬리를 물고 시작된 생각은 책들이 꽂혀 있는 짙은 고동색의 나무 책장으로 이어졌고, 그 책장이 있는 상쾌하면서도 따뜻한 작업공간으로 확장됐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원하는 작업실의 모습을 하나씩 그려나갔다.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당연히 있었으면 좋겠고, 커피도 마시면서 보면 좋겠으니 커피를 내릴 수 있는 테이블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신발은 신고 들어가는 곳이어야 한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눕기가 용이해지고, 한 번 누우면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런저런 작업실에 대한 상상은 했지만, 실제로 작업실을 찾아 나서지는 않았다. 꿈의 작업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빈 공간이 필요하고, 그 공간을 원하는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공사도 해야 하며, 가구들도 들여놓아야 한다. 그리 대단한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원하는 것이 왠지 욕심 같았다. 그 모든 것을 하는데 드는 비용과 수고로움이 벌써부터 부담으로 다가왔다.
현실적인 이유들로 당장 꿈의 작업실을 가질 수는 없기 때문에 조금 미뤄두고, 집 주변의 카페 등지에서 유목민 생활을 했다. 내 물건들이 많이 없어야 딴생각을 안 할 수 있기에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녔다. 그렇지만 코로나가 심해지자 집이 아닌 곳에서 작업을 하는 것도 조금씩 불편하고 불안해졌다.
집 안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들이 길어지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방 정리를 시작했다. 꿈의 작업 공간은 제쳐두고 지금 살고 있는 방부터 작업도 가능한 공간으로 바꾸어야 했다. 청소는 하지만 무언가를 버려야겠다고 작심하고 정리를 시작하는 것은 꽤 오랜만인 것 같다. 들어온 짐만큼 버리기로, 채운만큼 비우기로 했다. 버리는 것을 잘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채우는 속도보다 비우는 속도가 현저하게 느리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은 하나씩 보내주기로 했다. 정리하다 보면 생각도 마음도 어쩌면 조금은 여유가 생겨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공간에서 오롯이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꿈꾼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책장에 좋아하는 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 그곳에도 책순은 빽빽이 자라나겠지만, 그곳에서는 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