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순간을 당신과 공유할 수 있어서
그런 책이 있다. '필독서'라고들 하는데 그 두께 때문에 겁이 나서 쉽사리 시작하지 못하는 책 말이다. 그런 책들 중 하나인 <코스모스>는 약 7백 페이지의 두께를 자랑하는 책이다. 부모님께서 반드시 읽으라고 사주신 책도 아니고, 어느 시점의 내가 이 책을 읽어야겠다 싶어서 산 책인 것 같은데, 그때 왜, 무슨 이유로 이 책을 구매했는지는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책장 한편에 우직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이 검은색의 책을 집어 든 것도, 매일 조금씩 읽어서 독파하겠다는 마음을 먹겠다는 것도 우연일지도 모르겠다. 매서운 더위와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느 여름날 나는 이 책을 다 읽겠다고 다짐했다. 이 책을 다 읽어서 어떤 통찰을 얻겠다는 목표는 아니었지만, 완독이라는 목표를 삼고 그 목표를 달성해서 얻는 기쁨은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10일 여가 지나서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은 아마 책의 맨 첫 페이지에 있는, 저자인 칼 세이건이 그의 아내인 앤 드루얀에게 남긴 머리말이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남겼다.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 칼 에드워드 세이건 (저), 홍승수 (역) <코스모스>
지구의 역사, 우주의 역사, 다른 행성들의 역사, 지구에서 태어나고 사라져 간 많은 생명체들, 그리고 저 먼 다른 은하에 있을 수도 있는 어떤 생명들에 대해 다룬 이 책을 읽다 보면 이 긴 역사에 비하면 나의 삶은 정말 찰나라는 생각이 든다. 45억 년의 시간을 견디며 자전하고 공전해온 이 지구를 생각해보면 나라는 사람은 잠깐 살다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게 주어진 이 찰나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 지구를, 세상을 망치는데 그 순간을 쓸 수도 있고, 누군가는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데 쓰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이 책을 통해 좀 더 생각해볼 수 있었다. <코스모스>에 따르면 우리가 지구 생명의 본질을 알려고 노력하고, 외계에 있을 수 있는 생명을 확인하려고 애쓰는 것은 사실 우리 자신이 과연 누구인가 알고자 하는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정말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MBTI 테스트를 하거나 새로운 심리테스트가 나오면 자신이 어떤 이름으로 정의되기를 바라면서 진지하게 질문에 답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은 어쩌면 가장 알기 어려울 수도 있다. 심지어 나 자신에게조차도 숨기고 있는 무언가는 항상 있을 수도 있고, 나라는 사람은 어제와 오늘이 어느 정도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자주 생각해야 한다. 자신을 어느 정도 이해해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지구는 참으로 작고 참으로 연약한 존재이기에 좀 더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이야기, 코스모스의 광막한 어둠 속에 있는 천억 개의 다른 은하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화재로 인해 인간의 지성 발전이 얼마나 늦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이 책은 겁먹었던 것과 달리 무척이나 쉽게 쓰여 있어서 읽기 편했다. 저자가 방대한 이야기를 쉽게 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모르겠다. 이 글을 번역하는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셨을 번역가님도 대단하게 느껴졌고, 감사했다.
책의 몇몇 구절은 자기 계발서 뺨치는 저자의 호통이 포함되어 있어 아래로 몇 문장 적어보려고 한다.
무슨 일을 하든 심사숙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 일을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으며 거기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의 행성 지구가 우주에서 중요한 존재로 남길 바란다면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나왔다. 그리고 코스모스를 알고자, 더불어 코스모스를 변화시키고자 태어난 존재다.
칼 에드워드 세이건 (저), 홍승수 (역)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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