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엽서를 좋아하시나요?
바야흐로 취향의 시대다. 향수를 좋아한다고 하면, 어떤 브랜드의 향수인 지부터 시작해서 우드 향이 나는지 장미향이 나는지 머스크 향이 나는지 무화과 향이 나는지까지 세밀하게 취향의 가지를 뻗어나가고, 음악이 좋다고 하면 케이팝이 좋은지 팝이 좋은지 사이키델릭이 좋은지 락이 좋은지, 락이 좋다면 이 밴드는 더 세밀한 기준으로 어디에 속하는지까지 대화를 나누는 시대다.
책을 고를 때도 취향이라는 것이 작용한다. 한국 문학에서 이 작가 이 작가는 좋은데, 저 작가는 좀 우울한 느낌이어서 요즘에는 안 읽어, 라든가. 에세이 중에서도 실제로 겪은 일을 다룬 이야기는 끌리지만 처세술이나 인간관계론을 다룬 이야기는 읽고 싶지 않다든가. 구체적으로 생각해서 원하는 책을 딱 고르고, 살펴보고, 때로는 구매까지 이어진다. 어떤 독립 서점들에서는 책을 고르는데 어려움을 겪는 손님들을 위해 OOO을 위한 책 추천 등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문구류는 어떨까? 어렸을 때부터 키워 온 문구 내공으로 한 문구인(文具人) 나도 까다롭게 펜을 고르고, 노트를 고르고, 마스킹 테이프를 고른다. 펜을 고를 때는 써보기도 하고, 이 펜으로는 이런 글을 써야겠다, 저런 글을 써야겠다 고민도 한다. 노트를 고를 때도 이 노트와 함께하는 이야기는 어떨까? 상상해보면서 노트를 고를 때도 있다. 그렇게 애정을 듬뿍 담아 고르고 나면 왠지 내 인생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는 기분까지도 든다.
최근에는 스스로 엽서 북을 만들면서 엽서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엽서를 향한 관심은 전시회에 가서 꼭 엽서를 한 장씩 사던 초등학교 때부터 있었긴 하다.) 엽서 한 장에도 꽤나 큰 공이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만들고 보니 아무 사진이나 엽서가 될 수 없고, 아무 모양이나 글을 쓰는 부분에 넣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을 들인 엽서는 세상 밖으로 나가 사람들의 손에 쥐어지고, 어떤 말들, 마음을 담은 말들이나 간단한 인사치레 등을 담아 누군가에게로 보내진다. 방에 엽서를 붙여 놓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엽서라는 것은 내가 갖고 있는 물건은 아니고 누군가에게로 향하는 물건이다. 그만큼 어떤 엽서에 어떤 말을 써서 보낼지 많이 고민하게 만드는 종이 한 장이기도 하다.
얼마 전, 연희동에 있는 <포셋(POSET)>에 들렀다. '엽서 도서관'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 가게는 엽서들이 랙 위에 가지런히 정렬해 있었다. 그림엽서, 사진엽서, 특이한 엽서, 동그란 엽서 등 다양한 엽서가 있는 이 가게는 엽서만을 위해 태어난 공간이었다. 손님들은 선반을 돌며 원하는 엽서가 있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나도 그들과 같이 누군가에게 줄 엽서를 살펴보았다.
조금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왜 이런 엽서를 만들었는지,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사진이라면 지역은 어디인지에 관한 설명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 살펴보지는 않아서 있는 엽서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엽서만 있어서 그 창작물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가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다. 손님이 엽서를 쓰고 걸어둘 수 있는 곳도 있으면 재밌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엿보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써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편에 위치한 기록보관소도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기록들을 보관할 수도 있고 누군가와 함께 사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친구와 교환일기를 쓰던 아주 어린 시절이 살짝 생각났다. 창문가에는 엽서를 쓸 수 있는 책상도 있어서 엽서를 구매해서 바로 써도 좋을 것 같았다.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작업물들이 놓여 있어서 물건을 파는 매장이라는 느낌보다 감상하기 좋은 전시관처럼 느껴졌다. 열심히 살펴보고, 귀여운 그림들이나 멋진 사진들에 위로를 받고 전시회가 끝나면 엽서를 몇 장 사가는 것처럼 나도 마음에 들었던 엽서를 몇 장 샀다. 누군가에게 언젠가 마음을 전할 때 이 엽서를 꺼내어 쓰기를 바라며 기분이 좋아질 것만 같은 그림이 담긴 엽서를 구매했다.
사실 얼마 전에 이곳에 나의 엽서 북도 입고하려 했으나 사려 깊은 거절 메일을 받았다. 언젠가 내 엽서도 이곳 어딘가에 놓이기를 바라며, 일하시는 분께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가게를 나섰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 수도 있고, 정말 빼앗고 싶은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책, 다음 엽서 북을 준비하면서 좀 더 많은 사람, 좀 더 많은 마음들에 가닿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은 먼 길이지만 조금씩 그 거리를 좁혀 나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포셋 POSET>
서울시 서대문구 증가로 18 연희빌딩 3층 305호
@poset.offi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