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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세핀 Sep 21. 2022

석세션

가족끼리 왜 이래


 HBO가 또 큰일을 해냈다. 마음에 드는 미드가 나왔네 싶으면 HBO였던 경우가 많았던 나는 이쯤이면 HBO에서 만들었다고 할 때 그냥 볼 수도 있을 텐데, 석세션을 틀기까지 조금 고민했다. 기업의 CEO 자리, 즉 왕좌를 놓고 싸우는 것이 주된 내용일 것 같은 이 드라마, 실제 기업들에서도 이렇게 싸우는데 굳이 드라마로까지 봐야 하나 싶었다. 사실 첫 시퀀스를 보고 또 껐었다. 둘째 아들인 켄달이 '볼터'라는 기업을 매수하기 위해서 회의하는 장면이었는데, 모습이 우리네 재벌과 똑 닮아 있었기에 순식간에 지겨워졌다. '휴 밥맛이네.'


 그랬던 내가 왜 다시 틀었을까? 오징어게임이 에미상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기사들에서 '석세션'을 언급했다. 그 단어를 너무 많이 들어서일까, 한 번 그래... 보자.라는 생각과 함께 그 시퀀스를 넘어갔다. 그리고 이주 정도 지났을까, 한 편에 60분이나 되는 이 드라마의 시즌 3까지 모두 정주행 하고야 말았다.


 오랜만에 빨리 감기를 더블 탭 하지 않고 본 드라마였다. 이들이 싸우는 모습이 바둑이나 체스 같아서 다음 수를 도대체 뭘 두려고 하지? 그게 궁금해서 더블 탭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3분 전 상황과 완전히 역전된 상황이 펼쳐지니 그런 반전을 이끈 요소가 궁금해서 쭉 봤다.



 요약하자면, 이 모든 일은 거대 뉴스/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웨이스타로이코의 창업주인 로건 로이가 자신의 생일에 앞으로 몇 년간 더 해 먹겠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된다. 둘째인 켄달 로이는 열심히 일해서 아버지가 자신을 인정하고, CEO로 임명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청천벽력 같은 발표를 해버린 것이다. 켄달은 충격을 받고, 그때부터 아버지를 끌어내릴 모든 작전을 가동한다. 이 와중에 형이 빠지면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보려는 로먼 로이와 이런 기업 일에는 관심도 없고 정치에서 입지를 넓혀가던 시브 로이, 한량처럼 지내던 코너 로이까지 달려들어 경쟁을 펼친다.


 이 드라마의 재밌는 점은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빠져나가기도 하고, 의도하지 않은 일로 발목이 잡히기도 한다. 그렇게 복잡하고 꼬여있어 보이지만, 각 캐릭터가 선명하게 살아있어서 저 인간 저럴 줄 알았어라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나쁜 놈과 비상한 나쁜 놈, 이상한 나쁜 놈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피 흘리고 다치고 다시 일어난다.


 뻔하디 뻔한 재벌가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그들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 자연스레 파생되는 악영향들도 다른 재벌 드라마와 다르게 비춘다. 예를 들자면, 1화에서 야구 경기 중에 켄달이 자리를 비우자 로먼이 근처에 있던 일하는 사람의 아들에게 야구 배트를 쥐어준다. 쥐어주면서 하는 말이 홈런을 치면 백만 달러를 주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아이는 홈런을 치지 못했고, 로먼은 눈앞에서 수표를 찢어 버린다. 아무 일에나 돈을 걸고 돈이면 무엇이든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재벌 캐릭터이지만, 그 이후에 로건 로이의 행동에서 차이점이 있다. 직원을 시켜 그 가족에게 사과하고, 비밀 유지 계약서를 쓰자고 한 후 자신의 사위가 생일 선물로 준 무려 파텍 시계를 준다. 로먼을 그냥 밥맛없는 놈으로 그리는데서 그치지 않고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그것이 기분 나쁠 수도 있고, 누군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창업주의 성격이 드러나는 씬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기업의 인수/매수 등을 세밀하게 묘사해 놓은 편이어서 경제 공부도 된다. 이렇게 기업을 사고파는구나, 왜 사기업으로 그들이 전환하려고 했는지, 사모펀드에 지분을 팔고 그 돈으로 빚을 갚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등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이 드라마와 지금 읽고 있는 책 <문 앞의 야만인들>을 통해 정말 정말 정말 큰돈은 어디에서 오가는지 그리고 그 돈에 대해서 얼마나 아무렇지 않게 생각들을 하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여러 캐릭터가 나오고, 시즌 3에는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까지 나오지만 가장 관심이 가는 캐릭터는 그레그다. 우리나라 드라마 같았으면 이렇게 어벙한 캐릭터가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서민이었던 캐릭터가 이렇게 저렇게 사촌들의 힘을 파도타기 해서 올라가다가 꼭대기까지 차지하는 드라마였을 수도 있지만, 변방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그레그의 모습을 보는 것이 웃기다. 다른 사람들은 감정이 없는 로봇같이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캐릭터만은 그래도 인간 같다. 그리고 톰, 매튜 맥퍼딘이 연기한 톰에 눈이 간다. <오만과 편견>에서 그 로맨틱하던 다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고, 로이 가족의 눈치를 보면서 자기 먹을 건 항상 챙기는 비열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거의 이중인격인데, 시즌 3을 거치면서 조금은 그 이중적인 성격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시브, 제리를 비롯한 여성 캐릭터들도 빛난다. 시브 역할을 맡은 사라 스눅은 케이트 윈슬렛이 나온 <드레스 메이커>에서 처음 보고 저 사람 정말 독특한 배우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석세션에서도 자기중심적이고 또렷한 막내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다른 배우들도 눈에 들어오지만 하던 일이 그랬어서 그런지 홍보담당자만 보면 마음이 쓰인다. 휙휙 바뀌는 발표 내용에 그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보도자료를 만들어 내는 캐롤라인이나 자기 맘대로 하는 켄달을 설득하려는 홍보대행사 사람들을 보면... 음...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렸고, 사실적이어서 맘이 상할 정도다.


 시즌 3까지 가면서 이제 좀 제발 누군가가 CEO를 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지만 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이어지니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진짜 돈 많은 사람들 답게 어디든 오가는 PJ(Private Jet, 전용기)로 이국적인 풍광들도 보여주고, 막장 같아 보일 때 즈음에는 고급스러운 배경음악이 나온다. 그들의 이전투구는 언제쯤 끝날까, 그리고 과연 그 결말에 만족할까? 욕망으로 가득 찬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사는 세상은 조금은 평범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많이 가졌는데도 더 가지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 때도 있다. 시즌 4는 2024년 즈음 나온다는데, 기다려서 봐야 할 드라마가 하나 더 생겼음에 감사하다.

 

조금은 무서운 오프닝 크레딧...


웨이브에서 HBO 작품들을 들여온 덕에 석세션도 웨이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 왓챠에서 열심히 들여왔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웨이브에서 들여오고 있구나...



*2023년의 시즌4로 종영한다고 한다. 흑... (2023년 4월 현재 HBO에서 방영 중이다.)

*웨이브에 왜 석세션 없어... 시즌4는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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