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놓고 안...

작년의 글, 해가 가기 전에 정리에 성공!

by 조세핀


새로운 과자가 출시되었다고 해서 동네 마트에 들렀다. 비스킷과 비스킷 사이에 초콜릿이 껴 있다 해서 ‘비쵸비’라는 그 과자를 꼭 사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첫 번째로 간 마트에 그 과자가 쌓여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를 집어 든 순간, 집에 있는 다른 과자들이 떠올랐다.



그렇다. 내 방 한 구석에는 ‘사놓고 안’ 먹은 과자들이 담겨 있는 바구니가 있다. 그 안에 있는 과자들 중에는 이 ‘비쵸비’처럼 새로 나왔다기에 샀으나 하나를 먹어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 내버려 둔 ‘르뱅쿠키’도 있고, 몇 개 집어 먹고 집게로 밀봉했지만 까먹은 ‘쌀로별’도 있고, 반쯤 잘라 먹은 ‘크런키’도 있다. 왜 그냥 두는가 싶지만, 아직은 버리기엔 아깝다. 시간이 지나면 맛이 덜해질 뿐 다들 유통기한은 꽤나 긴 친구들이기 때문에 언젠간 먹고 싶어지지 않을까 싶어 두고 지켜볼 뿐이다.


내 방 옷장에는 ‘사놓고 안’ 먹은 과자들의 먼 친척인 ‘사놓고 안’ 입은 옷들이 또 몇 벌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래도 옷장 정리를 한 번씩은 하는데, 지난 여름에는 뜯지도 않은 히트텍 내의를 발견하고 살짝 놀랐다. 작년 겨울에 이걸 찾아 입으려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어디 있다가 이제 나왔을까 싶었다. 가끔은 내가 이런 옷을 샀었나 싶을 정도의 옷도 발견되고는 한다. 살 때는 예쁘다고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아 이걸 입을 수 있을까’ 싶은 옷들은 내가 입어주기를 그저 기다리고 있다.


책꽂이에는 또 ‘사놓고 안’ 본 책들이 쌓여 있다. 올해는 그래도 중반 즈음에 각성을 하고, 사 둔 책들을 우선 읽고 책을 사자는 다짐을 해서인지 많진 않지만 예를 들면 이런 책들이 있다. 노벨 문학상 시즌에 휩쓸려 산 책, 글 잘 쓰는 법에 거대한 비밀이라도 있을까 싶어 산 책, 넓고 얕게라도 지식을 쌓고 싶어 산 책 등... 어떤 동기에 의해 샀지만, 막상 책을 펼 때까지는 한참이 걸린다. 책 등의 제목과 지은이만 몇 달을 볼 때도 있다. 우리 집에 처음 온 책들하고 낯가리는 것도 아니고, 참.


이 외에도 ‘사놓고 안’ 보는 넷플릭스, ‘사놓고 안’ 찍는 카메라, ‘사놓고 안’ 먹는 비타민, ‘사놓고 안’ 보내는 엽서, ‘사놓고 안’ 펴보는 이탈리아어 학습지, ‘사놓고 안’ 그리는 스케치북까지. 내 방에는 아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참 많다. ‘사놓고 안’ 대회가 있으면 가서 1등할 텐데... 그런 대회가 없어 아쉽다.


아까 마트에서 잠깐 고민은 했지만 결국 나는 새 과자를 또 집어 들었다. 이건 분명 맛있을 것 같기에, 이건 분명히 나를 기분 좋게 해줄 것 같기에. 그리고 다행히도 ‘비쵸비’는 더 이상 내 바구니에 남아 있지 않다. 바구니 속 다른 과자들이 서운한 것 같았지만, 이렇게 운 좋게 맛있게 끝까지 먹는 과자를 만나는 경우도 있다.


‘사놓은’ 것들이 예상치 못하게 빛을 받는 순간들도 있다. 여름에 찾아 둔 히트텍을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입을 수 있었고, 책장에 오랫동안 꽂아 두었던 어느 감독님의 에세이를 갑자기 읽고,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영감을 받은 때도 있었다.


이런 멋진 순간들 때문에 애석하게도 나는 무언가를 ‘사놓는’ 행위를 멈추지 못 할 것 같다. 나와 사이가 완전히 서먹해진 친구들이야 서바이벌을 통해 보내주겠지만, 그래도 아직 같이 있고 싶어 하는 친구들은 곁에 두고 싶다. 내가 언젠가 꼭 필요로 할 때 자연스레 집어들 그 순간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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