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두드리지 않고 들어올지도 모를
1000쪽이나 되는 이 책 <문 앞의 야만인들>은 도전할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았다. 책의 두께도 그 위용을 자랑하지만 무엇보다도 내용이 어려울 것 같았다. 기업을 사고파는 이야기가 나와 무슨 상관일까 싶기도 하고,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별세계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팬데믹 이후 이곳저곳에 사고 팔리는 기업들이 늘어나기도 했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모펀드에 대한 관심 또한 지대해졌기에 그 세계를 세세하게 다룬 이 책이 궁금해졌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윈스턴', '살렘'이라는 담배로 잘 알려진 'RJR'이라는 기업과 '오레오', '리츠'로 잘 알려진 '나비스코'라는 기업이 합병되어 RJR 나비스코로 거듭나고, 많은 협상과 베팅을 거쳐 KKR이라는 투자회사에 결국 팔리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KKR의 국내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어떤 기업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다. https://www.kkr.com/ko/businesses/kkr-portfolio
이 두꺼운 책의 크나큰 장점이자 이 두께가 되게 한 원인은 바로 이 과정에 참여한 주요 인물들에 대한 정보들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RJR 나비스코의 CEO인 로스 존슨이 어디서 태어나고 어떻게 자랐는지, 그가 어떻게 성장하고 그의 커리어가 어땠기에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데까지 이르렀는지를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두었다. 그뿐만 아니라, KKR의 창업주들인 로버츠, 크래비스, 콜버그, 이 입찰에 참여한 포스트먼, 변호사, 은행가, 투자금을 내주는 대부호까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써두었다. 덕분에 본 적 없는 사람들인데도 그들이 이 거래에 어떻게 임했는지, 어떤 인물들이라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있었다. (사실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매각 대상 기업인 RJR 나비스코의 CEO인 로스 존슨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 사람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시작했으며 작은 기업의 사장을 맡고, 그 회사가 팔려서 좀 더 큰 회사의 사장이 되고, 이런 식으로 해서 위로 올라갔다. 위로 올라가서는 자신의 크루를 꾸려서 그들에게는 전용기도 대여해주고, 골프도 치게 해 주고, 쉽게 말해 그야말로 '향응'을 제공했다. 이 사람은 원래 과자 회사인 나비스코의 CEO였는데, 담배 회사인 레이놀즈와 합치게 되면서 두 회사를 합친 RJR 나비스코의 CEO가 되었다. 나비스코라는 회사는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아는 '오레오'라는 과자를 만드는 회사다. 이 책에 따르면 나비스코의 제빵사들은 합병을 반대했다고 한다.
나비스코의 제빵사들은 스탠더드 브랜즈의 주류 사업 부문 관리자들을 '술주정뱅이'라 불렀는데, 이들은 자기네 회사가 담배 회사와 합치자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 <문 앞의 야만인들> 중 155쪽에서.
두 회사가 합병하고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 같았지만 현실은 파란 핏빛 미래였다.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가는 떨어지고 떨어져서 CEO인 존슨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고민들이 매일 그를 괴롭혔다. 그러다가 그는 해결책을 발견한다. 회사의 주식을 스스로 사서 비공개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은행과 손을 잡았는데, 이 입찰 경쟁에 KKR이 뛰어든다. 이때 들고 나온 것이 KKR이 잘하는 LBO(Leveraged Buy-Out)였다.
LBO란 정말 쉽게 말하면 아직 내 것도 아닌 회사의 자산 등을 담보로 잡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이 회사를 사고 이 회사를 쪼개서 팔거나 일하는 직원들을 자르거나 해서 돈을 갚는 것이다. 책에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이 사업은 돈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돈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아는 사람들을 위한 사업이다. - <문 앞의 야만인들>
LBO를 진행할 경우, 한 기업의 소규모 이사진은 보통 월스트리트에 있는 투자사들과 손잡고 대규모 차입금을 동원해 일반주주들로부터 그 기업을 사들인다. - <문 앞의 야만인들>
사냥꾼과 사냥감 그리고 LBO 회사는 모두 그 결과에서 이득을 누렸다. 유일하게 피해를 보는 쪽은 그 회사의 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그 회사의 직원들이었다. - <문 앞의 야만인들>
참,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은행에서는 뭘 믿고 돈을 빌려주지? 그것도 한 두 푼이 아니다. 조 단위다. 조 단위 돈을 어떻게 빌려주지?라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은행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조사만 제대로 하고 기업의 가치만 잘 평가한다면, 그 기업을 담보로 잡고 있으니 언젠가는 은행 것이 될 수 있고 (돈을 못 갚을 경우), 갚으면 갚는 것이고 이자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은행에서도 돈을 빌리고 곳곳에서 '자금을 조달'해서 이제 입찰(비딩)에 들어갔다.
주식 한 주당 얼마, 이렇게 해서 입찰을 했는데, 마지막까지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KKR이 250억 달러를 주고 RJR 나비스코를 샀다. 250억 달러는 원화로 약 30조 원이다. 30조 원을 조달하기 위해 KKR은 정크본드를 발행하고, 은행들에 돈을 빌리고 한동안은 부채를 갚는데 힘썼다. 그리고 후에 나비스코를 크래프트에 팔았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중엔 존경할만한 사람들도 있다. 담배회사이긴 하지만, 윈스턴 살렘이라는 지역의 경제를 살리고 좋은 제품을 내놓기 위해 고심했고, 오랫동안 회사의 성장에 신경을 썼던 레이놀즈의 CEO나 '오레오', '리츠'같은 스테디셀러 과자들을 만들어 낸 나비스코의 제빵사들. 이 사람들은 이 책에서도 나오는 '컴퍼니 맨'들이었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한 회사에 바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간부가 되는 것이 과거의 미국의 모습이었다면, 이 1980년대를 지나고부터는 기업 구석구석 '나도 한몫 챙겨야지'라는 풍조가 시작되었고 존슨처럼 자신의 이득을 챙기고 챙기다가 감옥에 간 사람도 이후에 등장했다.
사모펀드 포스트먼 리틀의 회장인 포스트먼의 말에서 따온 말이지만, 책에 따르면 그가 '야만인들'이라 부른 그들은 여전히 문을 박차고 들어갈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거래에서 유일하게 피해를 보는 쪽은 책에서도 말했듯이 회사의 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직원들 뿐이다. 야만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문을 두드리는 상황에서 눈이라도 크게 뜨고, 촉각이라도 곤두세우고 세상을 보며 살아야겠다. 어쩌면 그들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