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초입
빼곡한 아파트 단지 안에만 몇 개의 정류장이 있다. 7지구 정류장에 내려 처음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는 폭이 좁아서 충분히 건너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이제 막 나눠준 겨울용 체육복을 입은 채 땀을 흘리는 아이들이 거기 서면,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다정하게 웃는다. 그 거리를 유지하면 먼 훗날 찾아올 이별에서도 웃으며 배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갖고 신호가 바뀐 횡단보도를 건넌다.
교무실 안팎에서 매일 새 마음들을 받는다. 14살일 때에만 만들어 낼 수 있는 싱그러운 진심을 기꺼이 주는 것이니 피곤한 기색을 들키지 않으려 눈에 힘을 주고,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받은 마음을 아무 데나 둘 수는 없으니 내 마음 속 사람들을 한 사람씩 보내드렸다. 함께 누비던 도시를 떠나지 않은 채 마음을 정리하다 보니 반년이 훌쩍 흘러 가을이다. 나의 한 시절을 단단히 딛고 서 있는 사람들은 두 번째 개강을 준비한다.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자신들의 세계를 더 넓히겠지.
얼마 전 영준을 만나 밥을 먹었는데, 그 소식을 들은 윤태가 연락해왔다.
’쌤, 영준이만 만나주시고...‘
‘예? 네가 만나자고 안 했잖아요...’
어쨌든 그렇게 만남이 정해졌다. 주니와 성민이 함께 온다고 했다. 하루 종일 너무 바빠 앉을 틈이 없었는데, 얼추 일과를 마무리 하니 윤태와 주니가 학교에 와 있다고 했다. 정문 계단을 내려가며 계속 두리번거렸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울 얼굴들을 찾으며 나도 들떴다. 저 멀리 주차장에 선 이들을 찾아 ‘야‘하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한 시절이 생생히 살아났다. 딱 1년 전 이맘 때였는데, 아득히 멀어진 것 같기도 해서 잠깐 아렸다.
작은 학교를 쓱 둘러 보고, 교실을 구경시켜줬다. 그들만큼이나 반가울 테지만 올 수 없는 사람들의 소식을 전해들으며 정문을 나섰다. 멋진 모습만 보여 주고 싶었는데 버스를 두 번이나 잘못 갈아탔다. 주니가 말했다.
“쌤 출근은 잘 하죠..?“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데 이런 허술함이라니. 그들의 담임일 때는 감정이 자주 발끈했다. 쌤 또 삐졌다는 민망한 말을 들었으니 횡단보도 만큼의 거리도 지키지 못하고 서운해하다가도 한없이 기뻐했다는 게 확실하다. 누군가를 아낀다는 말로 소명하기에는 어른답지 못했던 시절의 마지막은 좀 더 의젓한 모습이고 싶었는데...
편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를 겸한 술자리를 시작했다. 밖에서 술을 마시면 기억이 끊기는 일이 더러 있었지만, 천천히 조절해서 마시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쌓인 피로와 버스도 잘 못 타버리는 난감함에 치인 정신이 아슬아슬 버텼다. 성민도 그러는 중이었는데, 아쉽게도 그는 더 버티지 못하고 잠들었다. 거의 누워 있던 성민은 그래도 무사히 집에는 갔다.
그런 성민이 잠들기 전 했던 질문에 답을 듣지 못했다. 나도 아슬아슬해서 대답을 놓쳤나. 너한테 3학년은 어땠냐고. 우리반, 그니까 내가 담임으로 너희한테 보낸 진심을 잘 받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물론 ‘우리 어땠어요?’라는 질문을 내가 먼저 받았다.
‘위로’였다고 답했다. L고에서 보낸 5년의 마지막 해였고, 그래서 더 최선을 다 했다. 잘 따르고 믿어준 사람들 덕에 내가 그래도 이 학교에서 잘 해냈고, 울지 않고도 떠날 수 있다는 위로를 얻었다. 그러니 이제 보낸다. 지나간 시간과 사람을, 더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누군가에게 진심을 다 한 내 마음은 아직 아리다. 그러나 헤진 마음이라도, 엉망인 나여도 괜찮다고 웃어 보이며 응원하는 아이들이 지금의 내 곁에 있고, 그들과 함께 또 한 번의 가을 햇빛을 받으며 뛴다. 고이 품었던 마음을 한 줌 더 날려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