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지도 못했던 사랑에 대한 장례식에 관하여 - 4
나는 B를 돌이켜 보면서 모든 것들에 작별해야 했었다. 그 애의 웃을 때 눈이 둥글게 휘며 주름지던 모습, 살짝 거칠고 굳은살이 잡힌 그 애의 손바닥, 나를 보던 시선 들과 그 애가 나에게 했던 말들과 단어 하나하나 까지도. 흔히들 그냥 잊고 말면 그만이라고 할 텐데, 나에게 있어서 그냥 그 애를 통째로 잊는다는 건 언젠가 길에서 보는 아주 사소한 것 하나에도 그 애를 떠올리고 마음이 무너질 거라는 걸,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이별을 통해 깨달았던 방법이었다. 그래서 작은 것 하나에도 작별해야만 내가 좀 더 평온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기억 속에, 그리고 그 애와 나눴던 활자 사이에서 그 애를 떠올리고 일일이 인사를 건네며 작별했다.
사랑이었지만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라 시작도 하지 못한 사랑을 애도한다는 건 - 그 애의 모든 순간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건 사랑스러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외롭고 고독한 일이었다. 친구들이나 지인 에게 이야기를 꺼내봤자 이해를 받지 못한다는 걸 더더욱 알아서, 그리고 나 조차도 이곳에 글을 적으면서 절절히 모든 이야기를 적어 내려야 그제야 사람들이 겨우 이해할걸 알아서 나는 입을 열지 못했다.
내 기억 속에 B를 돌아보면서 나는 그제야 B가 더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B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애였다. 그 스스로 사랑을 느꼈지만 사랑을 인정하는 순간 본인이 생각했던 기준들이 무너진다는 걸 알아서인지, 그 애는 다른 것들로 나에게 사랑을 표현했다. 가족들에게 치던 장난을 나에게 치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내가 도망갔나 걱정하면서. 더욱 어이가 없었던 건, 그 애의 모국어 문장을 알려달라는 내 요청에 B는 나에게 문장을 하나 가르쳐 주었다. 단어 하나하나 나의 서툰 발음을 교정해 주면서, 그 애는 그저 그 문장이 일상에서 쓰이는 것 마냥 뜻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뒤돌고 보니 그 문장은 아주 깊고도 섬세한 뉘앙스로 '나는 너를 잘 느끼고 있어', 즉 너랑 있는 지금의 시간이, 연결이 좋다는 뜻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고서야 그 자리에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망할 B. 알려줄 거면 제대로 된 문장이나 알려주지, 아님 뜻이라도 제대로 알려주던가.
B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애가 표현한 사랑들을 되짚으며 나 스스로 사랑을 확인해 나갔다. 더욱 서러웠던 건, 이 사랑이 있었지만 시작조차 되지 않았으며, 대상은 부재했고, 정리와 애도는 나 스스로 해야 했던 것이었다. 말 그대로 아무도 모르는 장례식에서 나 홀로 고요히 상주로써 모든 일을 해나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