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중학교 1학년 전까지 가난과 친구였다. 가난은 예고 없이 문을 두드렸고, 우리는 한 번 빠르면 일주일, 길면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다. 총 다섯 번의 전학. 친구들과 친해질 때쯤이면 또다시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야 했고, 반복된 이별 끝에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사를 갈 텐데, 친구를 사귈 필요가 있을까?’ 아니, 나는 친구를 사귈 만한 성격조차 아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이 “각자 자리 밑의 쓰레기를 주우세요.”라고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 자리뿐만 아니라 옆 친구의 자리까지 함께 정리했다. 하지만 나는 내 밑에 쓰레기가 없으면 그냥 앉아 있었다. 쓰레기를 줍는 친구들을 그저 내려다보았다. 나는 여자아이들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당겨 울리고도 사과 한마디 없이 적반하장으로 화를 냈다. 수업이 끝난 후 친구들이 “같이 가자!”라고 하면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왜 해?”라고 말하며 혼자 달려가는 아이였다. 가난과 함께 살다 보니 늘 배가 고팠고, 그 배고픔은 나를 더 이기적이고 날카롭게 만들었다. 매일 같은 옷을 입었고, 아이들은 냄새가 난다며 나를 조롱했다. 학교가 싫어졌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그렇게 나는 더욱더 닫혀갔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나의 인생 시계는 완전히 멈춰 있었다.
번외로, 20대 후반이 되어 부모님께 “나는 항상 따돌림을 받았었어.”라고 말했을 때, 어머니는 담담하게 답했다. “그땐 가난 때문에 너희를 챙길 정신이 없었어.” 이해는 하지만 참 씁쓸했다.
어쨌든 내 인생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중1과 중2 때도 여전히 멈춰 있었지만, 세상은 나의 정지 상태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듯했다. 나 모르게 녹슨 톱니바퀴에 희망에 기름을 발라 칠한 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중3이 되던 해. 나는 본격적으로 다시 살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