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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피플 Apr 19. 2020

귀찮은 필름 사진을 고집하는 이유

필름 카메라, AE-1

시청역에 자주 가는 사진관이 있다. 대학교 시절 같이 출사를 다니던 친구가 소개해준 곳이다. 대학교는 수원에 있는데도 1시간 동안 광역버스를 타고 시청역을 향했다. 학교 주변에 있는 사진관들은 대부분 디지털 사진을 찍고, 현상해주는 곳이라 선택지가 없었다. 그러나, 사진관 이름이 인스튜디오로 내 이름과 같아서 왠지 모르게 정이 갔다. 5년이란 시간이 지나 시시한 여행을 하고 있는 지금도 '필름'을 사기 위해 시청역을 온 걸 보면 앞으로도 인스튜디오와의 정이 오랜 시간 이어질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사진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할 텐데 걱정이 된다. 밤이든 낮이든, 인물이든 풍경이든 한 번의 터치만으로 훌륭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마트폰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필름 사진 특유의 색감을 담아내는 카메라 앱들이 등장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그래, 나 같이 멍청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필름 사진을 고집하겠어.


오랜만에 방문한 인스튜디오에 도착하자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사진관은 2층인데 줄이 1층까지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 20대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었고, 한 손에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어느 세대보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그들이 사진관이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필름 사진을 고집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언제부터 필름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왜 필름 사진을 좋아했지?


필름 카메라를 사서 제대로 필름 사진을 시작한 건 런던에서부터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2달간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찰나, 버스에서 졸다가 디지털카메라를 놓고 내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빨간 버스는 저 멀리 떠나버리고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분실물센터에 전화를 해서 신고를 했다. 친절한 직원은 디지털카메라를 찾게 되면 연락을 준다고 했다. 야속하게도, 한 달 동안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한달 후면 유럽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데 대책이 필요했다. 당시 스마트폰은 지금처럼 카메라 성능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잃어버린 디지털카메라를 다시 사는 일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포토벨로 마켓에서 '필름 카메라'를 발견했다. 매대에 올라가 있는 필름 카메라 중 유독 캐논 AE-1이 눈에 밟혔다. 블랙과 실버 투톤의 조화가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웠고, 정중앙에 CANON이라고 라벨링 된 것도 귀여웠다. 무엇보다 카메라를 들었을 때 묵직한 깡통을 드는 것 같은 그 무게감이 참 좋았다. 다만, 필름 카메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잘 사용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필름 카메라를 팔고 있던 주인은 사용법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필름 카메라는 사용하기 귀찮을 뿐 어렵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사야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250파운드를 주고 AE-1을 샀다. 덕분에 유럽 여행을 하면서 친구들 기념품을 못 샀다. 대신, 내가 보고 있는 장면들을 열심히 필름 사진에 담았다. 한국에 도착해 친구들을 만나 사정을 설명하고 필름 사진을 선물로 건네줬다. 친구들 중 한 명이라도 "야, 무슨 필름 사진을 기념품으로 주냐."라고 이야기하는 민망한 분위기가 연출될까 잔뜩 쫄아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친구들은 잘 나온 필름 사진을 가져가기 위한 사투를 벌였다. 필름 사진을 보면서 내 여행에 대해 궁금해하고 즐거운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고맙게도 자기 방에 필름 사진을 걸어둔 친구도 있었다. 그렇다, 내가 필름 사진을 고집하는 가장  이유가 바로 '물성' 때문이다. 필름 카메라로 담은 사진들은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특유의 물성을 가지고 있다.


사실, 필름 사진을 찍는 일은 엄청 귀찮은 일이다. 사진을 기록하기 위해선 필름이라는 소모품이 있어야 한다.필름이 없다면 아무리 대단한 사진을 찍어도 기록되지 않는다. 렌즈를 통과한 빛이 내 눈에서 사라질 뿐이다. 그러나, 필름 가격이 만만치 않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FUJI 35mm FILM(C200)만 해도 하나에 6,000원 정도다.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것처럼 필름 사진을 찍을 순 없다. 뷰파인더에 담기는 구도는 괜찮은지, 빛을 적당히 들어오고 있는지, 초점을 잘 맞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숨을 참고 셔터를 누른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긴장한 몸이 풀어지는데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이 느낌은 필름 사진을 찍어본 사람만 안다. 게다가, 필름 사진이 가진 매력의 정점은 현상소에 맡긴 필름 사진을 기다릴 때 발휘된다. 필름 사진은 변수가 많아서 한 장, 두 장 신중하게 찍은 사진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불안함, 기대감, 호기심 등 다양한 감정들이 휘몰아치는데 그 순간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낀다. 위와 같은 경험들이 내가 필름 사진을 고집하는 이유다. 돌아보니 내가 필름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가 참 다양했구나 싶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필름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다면 묻고 싶다. 당신은 왜 필름 사진을 찍으시나요? 의외로 재밌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질문이니 주말에 시간을 가지고 답을 찾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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