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저녁 8시 반. 터미널 근처에 적당한 게스트 하우스에 전화를 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통화 연결음이 10번은 울리고 나서야 전화가 연결됐다. 정신없는 음악 소리 사이로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은 무슨 일인지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오늘 하루 밤 잘 수 있는 방이 있는지 물었고, 5인실에 자리가 하나 남으니 오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신이 나기보다는 처음 보는 4명의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잠을 자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성수기도 아닌데 게스트 하우스에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어?라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니 성대한 파티는 이미 한창 물이 오른 상태였다. 전화기 넘어 흘러나오던 시끄러운 음악의 근원지가 바로 오늘 밤 자게 될 숙소일 줄이야.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카페로 운영하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 1층에서 매일 밤 파티를 열어 숙박객들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친해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내게는 파티가 언제 끝나느냐가 더 중요했다. 내 아름다운 시시한 여행의 첫날밤을 화려한 소음과 함께 보내고 싶지 않았으니까. 다행히도 파티는 앞으로 두 시간 뒤 그러니까 11시면 끝이 난다고 했다. 평온한 밤을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변명을 해보자면, 나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다수의 사람들을 한 번에 만나기보다는 소수의 사람들을 차근차근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기 위해선 수많은 질문과 대답이 필요한데, 그 대상이 많아지면 머릿속이 질문과 대답으로 가득 차 무엇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된다. 만원 지하철 안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나가야 할 사람은 나가지 못하고, 타야 할 사람이 못 타는 상태라고나 할까. 반면 소수의 사람들과 만나는 일은 내가 가진 템포와 죽이 잘 맞는다. 충분히 고민을 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위트를 살짝 얹어 대답할 수도 있는 템포. 게다가 서로의 눈빛과 표정을 확인할 수 있어 진심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오랜 시간 좋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내 사람들은 대부분 소수의 만남을 통해 인연이 시작된 사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시시한 여행을 통해 만나게 될 사람들은 질긴 인연이 되었으면 한다. 여행이라는 일탈 속에 화려하게 만나고 사라지는 인연이 아니라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간 난 뒤에도 이어지는 인연을 만들고 싶다.
파티에 참석하지 않는 대신 내가 선택한 것은 '산책'이다. 고요한 달밤에 전주 한옥마을을 산책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었다. 텅 빈 방에 올라가 짐을 풀자마자 설레는 마음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5분 정도 걸었을까. 고즈넉한 밤길을 자연스럽게 밝히고 있는 등불이 보이기 시작했다. 등불과 등불 사이는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아 어둠이 있어 등불이 빛날 수 있음을 증명해줬다. 한옥의 처마 끝에 걸린 등불은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중 네모난 모양에 한지를 덕지덕지 붙여 만든 등불을 보면서 한동안 불멍(불을 보고 멍하니 있는 것)을 때리고 있는데, 달고나 냄새가 났다. 달고나는 강력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달고나 냄새만 맡으면 초등학교 앞 문방구 아저씨가 생각나니 말이다. 문방구 아저씨는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면서 한 번도 웃어주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열심히 별 모양 달고나를 파서 먹다가 실수로 부서진 달고나 때문에 울고 있는 아이도 달래주지 않았다. 모양대로 잘 파먹어 하나를 더 달라고 온 손님에게는 더욱 엄격했다. 달고나 테두리 그대로 잘 먹었는지 확인하는 순간에만 아저씨의 눈빛은 살아났다. 전주에서 나는 달고나 냄새를 따라가 도착한 곳은 구멍가게였다. 구멍가게 아저씨는 문방구 아저씨와 달리 달고나를 만들 때도 눈빛이 살아있었다. 불 위에 큰 주걱을 올려두고 설탕과 소다를 젓고 있는 아저씨의 팔목 스냅에서 전문성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구경하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달고나, 별거 아냐. 한번 해볼래?"라는 무언의 언어를 눈썹에 담아 올리셨다. 나도 모르게 "달고나 하나 주세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받아본 별 모양 달고나는 작고 가벼웠다. 반면 손은 두툼하고 커져버려 달고나를 하기에 불리한 상황이 돼버렸다. 게다가 추운 날씨 덕분에 손이 달달 떨려서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망해버렸다.
고개를 들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아저씨를 보는데, 내 표정을 잘못 읽으신 것인지 다시 해보라고 권하신다. 백번을 다시 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정중하게 거절하고, 다른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언제부터 전주에서 장사를 하셨어요?" 이 질문과 함께 아저씨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주에서 구멍가게를 하고 있는 아저씨는 여행을 좋아한다고 했다. 국내 여행뿐만 아니라 해외여행을 다니느라 일 년의 절반만 영업을 한다고 했다. 단순히 휴가로 여행을 다니는 수준이 아니라 인생의 목적 자체가 여행인 사람 같았다. 다른 지역의 문화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인연은 어떻게 만드는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행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하실 때 눈빛은 달고나 앞에서의 눈빛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눈빛이 살아있는 여행가이자 구멍가게 주인인 아저씨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눈치 빠른 아저씨는 내게 여행을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질문해주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할지 말지 고민을 하다 '시시한 여행'에 대해 털어놨다. 여행하는 순간을 즐기고 싶어 목적 없이 여행을 하고 있다고. 그런데, 소중한 시간을 목적 없이 여행한다는 일이 한편으론 무섭기도 하다고. 아저씨는 단 일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그런 여행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돼서 편해." 그렇다. 우리는 여행 중 얼마나 많은 고민으로 시간을 허비하는가. 오히려, 시시한 여행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소중한 시간을 벌 수 있는 여행인 것이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파티를 갈지 말지 고민했다면 구멍가게 아저씨와 이 소중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아저씨의 말을 듣고 나서야 마음의 무거운 짐을 덜어 놓을 수 있게 되었고, 다음에 전주 여행을 올 땐 <시시한 여행>이라는 책 한 권을 들고 오겠다고 말해버렸다. 호기롭게 말했지만 얼굴이 벌게져 급하게 인사를 하고 가는데 아저씨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그래, 언제든 다시 찾아와." 숙소에 돌아와 누워서도 그 목소리는 따뜻한 여운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