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독 토독, 가을비가 자동차 천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창문 밖으로 고함을 지르는 사람이 보였다. 키는 165cm, 몸무게는 73kg 정도 되는 건장한 남성이었다. 무슨 일이지? 하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친구가 말했다. "아, 저 사람 또 저러고 있네." 친구는 동네에서 소리를 지르고 다니면서 위화감을 조성하는 미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 순간, 내 입에서는 "제일 힘든 건 본일일 거야."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친구는 운전을 하고 있는 나를 빤히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미친 사람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 나도 경험해 보기 전에는 몰랐다. 누구나 마음속에 괴물을 하나씩 숨기고 산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아닌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마음속에 괴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이다. 너나 하세요, 괴물! 도대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며 반감이 들 수도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최근에서야 나라는 존재가 무엇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흔히 말하는 미친 사람들을 봐도 손가락질을 할 수가 없다. 지금 얼마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길래 저렇게 소리를 지를까 싶고, 지금 얼마나 자신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으면 저렇게 몸부림칠까 싶다. 그저, 그들에게도 평온이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애꿎은 입술만 씹는다.
어느 날, 침이 목구멍으로 꿀떡꿀떡 넘어가는 불쾌한 감각에 잠에서 깼다. 국수를 먹는 꿈을 꾼 것도 아니었다. 잠을 자는 도중에 면발이 넘어가듯 침이 계속해서 넘어갔다. 그건, 뇌가 명령한 일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의도한 일도 아니었다. 나라는 지옥에 갇히기 시작한 것은 그날부터다. 침을 삼키는 행위가 더 이상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입에 고이는 침을 삼키기 위해서는 있는 힘껏 목에 힘을 줘야 했다. 심지어, 입에 고인 침이 없을 때는 억지로 침을 모아서 넘겨야 하는 강박이 생겼다. 마치, 누군가 내 입을 강제로 벌리고 끊임없이 물을 퍼붓는 것만 같았다.
나는 5초에 한 번씩 의식적으로 침을 삼켰다. 5초라는 시간은 내 목숨을 쥐고 있는 폭탄 버튼 같았다. 침을 삼키지 않으면 목구멍이 팡! 하고 터져 죽을 것 같았다. 억지로 침을 삼키지 않고 버티고 있으면, 어느새 입에 고인 침은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당연히 음식을 먹는 일도 힘들었다. 음식도 침을 삼키는 타이밍에 맞춰 넘겨야 했다. 그 타이밍이 어긋나면 어김없이 심한 사래가 걸렸다. 그 사래를 멈추기 위해서 마시는 물조차도 타이밍을 맞춰야 했다. 나는 침을 삼키는 일을 남에게 위임할 수만 있다면, 평생 모은 자산을 모두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침을 삼키는 일은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내 모든 신경은 얼마 지나지 않아 침을 삼키는 일에 잠식 당했고, 내 마음 깊은 곳에 자고 있던 괴물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
당시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서 보냈다. 허리가 좋지 않아 오래 움직일 수가 없었고, 침을 삼키는 일에 집중하려면 누워 있는 것이 가장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서 침을 삼키고 숨을 쉬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내가 바라보고 있던 천장에서 물이 떨어졌다. 볼을 스치고 지나간 물이 마르면 목구멍으론 울분이 차올랐다. 울분이 터지면 나는 괴물처럼 소리를 질러야 했다. 어떻게든 쏟아내지 않으면 내 안에 있는 괴물이 나를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잠시지만 한바탕 쏟아내는 동안엔 괴물에게 저항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옥 같은 날이 얼마나 반복됐을까, 침을 삼키는데 넘기는 힘이 부족해서 사래가 걸렸다. 타이밍이 어긋나서 사래는 자주 걸렸지만, 힘이 부족해서 사래가 걸린 것은 처음이었다. 더 이상은 침대에 누워 있는 일마저 자신이 없어졌다. 지금 당장이라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고개를 돌리니 엄마가 보였다. "엄마, 나 좀 살려줘." 엄마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기 위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눈이 벌게진 엄마를 4초 정도 보다가, 5초라는 타이밍에 맞춰 고개를 돌리고 침을 삼켰다. 그러자, 천장에선 다시 물이 떨어졌다.
증상이 너무 심해지자 숨까지 껄떡껄떡 넘어갔다. 결국 죽어도 가기 싫었던 대학병원 응급실을 다시 갔다. 그러나, 전공의 파업으로 의사가 부족해 나 같은 경증 환자는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당장 살아 있기도 힘든데 아무런 치료도, 진료도 받지 못했다. 119에 전화를 하니 동네 병원을 권유했다. 그렇게, 동네 병원을 여러 군데 돌아다녔지만 의사들은 침삼킴이 힘들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침을 삼키는 게 왜 힘들어요?"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병원에 찾아온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나였다. 그럼에도, 의사들은 꾀병으로 양호실에 찾아온 학생을 보듯 나를 봤다. 심지어 어떤 의사는 내 증상을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타자를 몇 자 치더니 이제 나가보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간호사는 처방전을 받아가라고 나를 불렀다. 처방전에는 호흡곤란, 발작, 이명 등 심각한 부작용이 적힌 정신과 약물이 가득했다.
내 마음을 진정시킨 것은 약이 아니라 음악이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라디오에서 허회경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흘러나왔다. 피아노 코드를 무겁게 누르면서, 차분하게 흘러가는 음악을 들으니 격양된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었다. 마음이 진정되니 허회경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지금의 나만큼이나 의욕이 없어 보였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장애물에 부딪힌 사람처럼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매일 이렇게 살아가는 게
가끔은 너무 서러워 나
익숙한 듯이 살아가는 게
가끔은 너무 무서워 나
허회경_그렇게 살아가는 것
가사는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 담은 것 같았다. 그러니, 그녀의 목소리에 희망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로 그랬다. 매일 지옥 같은 나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서러웠다. 왜, 나일까? 나는 내가 나인 것이 너무 억울했다. 정말로 그랬다. 내 안에 있는 괴물이 익숙해지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된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똑바로 정신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쩌다가 침삼킴이라는 병 같지도 않은 병에 걸린 걸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차에서 내려 동네를 걸어 다녔다. 지금 집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있으면 당장이라도 미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동네를 서성이며 고함을 지르고 다녔다.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봐도 가슴에 얹힌 답답함은 조금도 사라지질 않았다. 주먹으로 가슴을 퍽퍽 치기도 하고,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 짜보기도 했지만, 무엇을 하든 괴물 같은 나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하늘을 보고 신에게 기도를 했다. 하느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응답이 없었다. 하늘을 보고 신에게 욕을 했다. 씨발, 나 좀 살려달라고! 응답이 없었다.
나를 구원한 것은 신이 아니라 들개였다. 몇 시간을 미친 사람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니, 들개가 쫓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들개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허리를 부여잡고 최대한 빠르게 걸어갔다. 들개에게 도망가기 위해선 많은 부분에 신경을 써야 했다. 들개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했고, 허리에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두 발을 강하게 움직여야 했다. 들개는 내가 앞을 보고 걸으면 쫓아왔고, 뒤를 돌아보면 경계를 위해 멈춰 섰다. 들개와 나의 눈빛 교환은 마치 서부 영화에 등장하는 총잡이 결투처럼 팽팽했다. 안 그래도 몸이 안 좋은데 들개한테 물리기까지 하면 내 인생은 말 그대로 끝이었다. 나는 사력을 다해 도망치는 일에 집중했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흥미를 잃은 들개가 사라졌다. 그제야 당연한 사실이 떠올랐다. 내가 침삼킴이 불편했던 이유는 침삼킴을 과하게 신경 쓰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니, 도망치느라 바빴던 20분 동안 침삼킴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일이었다. 침대에 누워만 있어서 심심했던 신경들이 자신의 쓸모를 다할 수 있는 일 말이다. 아마도, 내 신경들은 나를 닮아 너무 자유로운 모양이다. 6개월 좀 가만히 누워있었다고 침삼킴으로 이렇게 시위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음날부터 바로 도서관에 가기 시작했다. 매일 일간지 신문을 읽었고, 기사 내용을 노트에 정리했다. 오랜만에 눈으로 글자를 읽고,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을 하니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맞아, 나는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나아가, 기사 내용을 달달 외운 다음 휴게실에서 혼자 거울을 보고 브리핑도 했다. 신문을 읽고, 쓰고, 말하다 보면 3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그 시간은 나를 온전히 나로서 살아있게 만들었다. 침삼킴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줬다. 굳이 힘을 주지 않아도 침이 자연스럽게 넘어갔고, 심지어 침을 삼키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을 정도였다. 내가 그토록 바란 자유란 이런 것이었다. 박완서 선생님이 전쟁 중에도 신문을 읽었다는 것은 그다음에 알게 된 사실이다. 박완서 선생님은 정체성을 잃으면 누구든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사실을 몰라 침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정체성을 조금씩 잃어갔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지금도 정체성의 중요함을 모르고 있었다면, 무지개 빛깔의 낙엽들이 눈처럼 흩날리는 줄도 모르고 침이나 삼키고 있었을 테니까.
쓰지 않고는 살겠는데, 읽지 않고는 못 살겠다.
박완서 소설가는 전쟁 중에 피란을 갔는데 책 한 권을 못 챙겨갔다.
읽을 것이 없어 도배지 대신 벽에 붙인 신문지를 읽었다더라.
이슬아_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이제는 도서관을 가지 않아도 신경이 심심할 틈이 없다. 아침에는 수영을 하고, 오후에는 글을 쓰고, 저녁에는 달리기를 하다 보면 하루가 총알처럼 사라진다. 침삼킴이 치고 들어올 시간이 없다. 주중엔 음식 장사를 위해 여러 가지 프로모션을 하고, 주말엔 독서모임도 운영하다 보니 일주일도 순식간에 지나간다. 나의 일상은 침삼킴에 필요한 5초도 아까울 정도로 부족하다. 그럼에도, 늦은 저녁에 정적이 찾아오면 불안이 스며들 때가 있다. 대부분의 불안은 자연스럽게 지나가지만, 종종 침삼킴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이제는 과거처럼 허둥대지 않는다. 당장은 불편해도 곧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짧으면 30초, 길어봐야 5분이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침삼킴을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더 이상 침삼킴이 두렵지 않다. 불안은 나무가 아니라 구름 같은 것이다. 나무처럼 뿌리를 내리고 영원히 자리를 잡지 않으니까. 구름처럼 바람을 타고 왔다가 금방 사라지는 것이 불안이다. 오늘 봤던 구름이 내일도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불안은 절대로 영원하지 않다. 어쩌면, 그렇기에 불안도 사실은 구름처럼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동그란 나침반 안에 들어있는 바늘을 지남철이라고 부른다. 이 지남철은 자성 때문에 끊임없이 흔들리는데, 처음 나침반을 보는 사람들은 고장이 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흔들림은 가장 정확한 방향을 찾아내기 위한 아름다운 몸짓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루가 평온하면 하루는 불안하다. 한 시간이 행복하면, 한 시간은 우울하다. 어쩌면, 누군가 흔들리는 나를 보고는 미친 사람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내가 흔들리는 것은 가장 정확한 나로 나아가기 위한 찬란한 투쟁이라는 것을. 그런 마음으로 허회경의 <그렇게 살아간다>를 다시 들어본다. 분명히 똑같은 노래인데 이제는 다르게 들린다. 의욕이 없어 보였던 그녀의 목소리에서 삶에 대한 투지가 느껴진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결국은 한 음절 뱉어내는 예술가의 몸부림이 전해진다. 들으면 서럽기만 했던 노래에서 이제는 위로를 받는다. 그렇게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은 나 하나가 아니라고, 그러니 오늘은 편하게 자라는 노랫말에 마음이 포근해진다. 아직 저녁 6시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푹신한 이불을 껴안고 싶어 진다.
조용히 생각에 잠겨
정답을 찾아 헤매다가
그렇게 눈을 감는 것
그렇게 잠에 드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허회경 _ <그렇게 살아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