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얼마나 억울할까. 그냥, 월요일로 태어났을 뿐인데 사람들이 월요병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미워하니 말이다. 나는 사실 그런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됐다. 나는 일주일 중 월요일이 가장 좋았으니까! 심지어, 일요일 저녁만 되면 월요일에 회사를 출근할 생각에 일찍부터 가슴이 설렜다. 도저히 집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요일에는 누구도 시키지 않은 주말 출근을 자처했다. 텅 빈 사무실은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그렇게 조용한 사무실에 앉아 다음주 할 일을 차근차근 정리하다 보면 자신감이 차올랐다. "아, 빨리 내가 준비한 프로젝트를 보여주고 싶은데!" 월요일에 대한 설렘은 풍선처럼 둥글게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물론, 실제로 월요일이 시작되면 계획한 일의 절반 이상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뭐,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나보다 더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예상치 못한 문제 때문에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으면, 동료들은 언제든 옆에서 같이 머리를 박아줬다. 그렇게, 다 함께 골머리를 앓다 보면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문제도 어떻게든 풀렸다. 동료들은 절대로 내가 혼자서 힘들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도 동료가 혼자서 힘든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진심으로 도와줬고, 함께 일하며 더없이 즐거웠다. 그것이 내가 신입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5년을 내리 일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이직 생각을 하지 않았던 이유다.
그 정도로 회사를 무지 사랑하던 나도 출근이 두려운 날이 있었다. 바로, 평가시즌이다. 나는 평가 시즌만 되면 쥐구멍이라도 빌려서 숨고 싶었다. 당시 회사는 상반기, 하반기로 1년을 나눠서 평가를 했다.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 일을 열심히 한 것은 아니지만, 평가를 잘 받고 싶은 마음은 도무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를 스스로 평가하는 자가평가를 매번 빼곡히 작성했다. 제발 내 노력을 알아주세요, 라는 마음이 너무 간절한 나머지 수 천자를 써도 부족했다. 그렇게, 자가평가가 완료되면 팀장님은 그걸 기반으로 평가를 내렸다. 나는 그 평가를 열어보는 게 겁이 났다. 이번 팀장님도 똑같이 평가를 했을 것 같아서, 이번 평가에도 똑같은 단점이 쓰여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무서웠다. 나 같은 경우, 회사에서 조직 이동이 많아 한 번에 두 명의 팀장님에게 평가를 받은 적도 있다. 신기한 점은 5년 동안 모든 팀장님들이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힘은 좀 빼주세요." 나는 항상 너무 진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직무 특성상,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무엇이든 진중하게 대하려고 노력했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섬세하게 신경 썼다. 그러나, 팀장님은 오히려 완벽한 것을 보면 어떻게든 흠집을 내고 싶은 게 사람의 본성이라고 조언했다. 왜, 팀장님은 노력한 사람이 아니라 흠집을 내는 사람들의 편을 드는 걸까. 당시에는 팀장님의 평가와 조언에 반감이 들었다. 그런데, 인생을 조금 더 살아보니 알 것도 같다. 사람이든, 일이든, 어느 정도는 빈틈이 보여야 숟가락이라도 얹고 싶어 진다는 것을.
Hey so now you know the game
자, 이제 게임의 규칙을 알겠지
Are you ready?
준비됐어?
로제_APT
진지한 성격을 쉽게 바꿀 수 없다 보니, 느슨하게 일하는 사람들은 내 동경의 대상이 된다.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SNS에서 술게임인지 음악인지도 모르겠는 로제의 APT를 듣는 순간 질투가 났다. 도대체, 뭘 먹어야 이렇게 힘을 빼고 창작을 할 수 있는 걸까? "채영이가 좋아하는 랜덤게임, 게임 START" 술게임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이 음악은, 마치 내가 음악을 잘못 틀었나?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완벽한 도입부로 시작해도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을까 말까 한데, 로제는 음악도 아닌 술게임으로 시작하는 과감함을 보여준다. 그러다, 중독적인 멜로디로 아파트를 무한 반복하는 벌스가 시작되면 이 음악은 그냥 이런 음악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나는 그렇게 음악이 코러스로 가기도 전에 로제의 느슨함에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들고 항복을 선언한다. 이 음악은 청중을 설득하지 않고 마치 게임처럼 그냥 즐기게 만든다. 누구처럼 애써 멋있어 보이려고 하지도 않고, 누구처럼 굳이 쿨해 보이려고 하지도 않는다. 마치, 블랙핑크라는 울타리를 발로 차고 세상 밖으로 나와 새로운 길을 만들기 시작한 채영이라는 아티스트를 담고 있는 음악 같다. YG 프로덕션에서 느껴지던 탄탄한 구성과 웅장한 사운드에서 벗어나, 채영이의 예측불가한 자유로움과 비정형적인 아름다움이 음악에서 신나게 춤을 춘다. 그러면서도, 듣는 사람들의 흥미가 떨어지지 않도록 코러스 구간에서 장르를 바꾸는 아이디어는 가히 예술이다. 에이브릴 라빈이 떠오르는 팝펑크로 시작해 강한 비트로 사람들의 심장을 후끈 달군 다음, 브루노마스 특유의 호소력 짙고 서정적인 팝 R&B로 넘어가 사람들의 심장을 사르르 녹여버린다. 더 놀라운 점은 로제가 이 음악을 작업실이 아니라 놀면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장난으로 시작한 음악이라 발매도 망설였다는데, 로제가 음반을 낼 수 있게 뜯어말려준 제작진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어느 날, 차 안에서 APT를 따라 부르는데 눈물이 났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 때문에 가을 햇살이 강하긴 했지만 눈물이 날 정도로 눈이 시린 것은 아니었다. 요즘은 뭐든 빨라진다고 하던데, 갱년기도 10년이나 일찍 올 수 있는 걸까. 당시 눈물이 난 이유는 지금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런데,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 것 같기는 하다. 몇 번 들어본 적도 없는 노래를 신나게 따라 부르면서, 정말 오랜만에 재미라는 감정을 느꼈다. 박자에 맞춰 고개를 흔들고, 가사에 맞춰서 노래를 흥얼대는 게 얼마만인지. 무탈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던 내가, 일상에서 소소한 재미까지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벅차올랐다. "나도 일상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게 될까?"라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로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이 난다고 하던데, 뭐 그것 좀 나면 어때라며 호탕하게 웃어버렸다. 그래, 그냥 이렇게 쉽게 살면 되는데 나는 왜 늘 모든 것을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후련한 마음에 괜히 아무도 없는 거리를 달리며 자동차 경적 소리를 울렸다. 빵빵빵, 아파트, 빵빵빵, 아파트! APT 노래에 맞춰서 경적을 울리니 더욱 신이 났다.
어쩌면,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상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APT 같은 음악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죽을 만큼 노력하고는 있지만, 무엇 하나는 그냥 편히 즐기고 싶을 테니까.
요즘은 산책을 하면서 APT를 자주 듣는다. 보통 산책은 저녁 10시부터 1시간 정도를 하는데, APT를 들으면 자정이 지난지도 모르고 신나서 계속 걷게 된다. 문제는 APT를 듣다 보면 나도 로제처럼 일탈을 하고 싶은 의지가 불타오른다는 것이다. 일상의 규칙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분출한다. 그래서, 나는 호기롭게 옆으로 걸어본다. 앞이 아니라 옆으로 걷는다. 팔꿈치를 몸통에 붙이고 탭댄스를 하듯이 현란하게 발을 구른다. 그럼, 나는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인간 꽃게가 된다. 뒤로도 걸어본다. 시선은 앞으로 두고 몸통만 뒤로 돌려서 걷는 것이다. 그럼, 나는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거침없는 인간 탱크가 된다. 그렇게,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빙의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산책을 하다 보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이런 내가 어이가 없어서 계속 웃게 된다. 물론, 그런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의심이 가득하다. 저 인간 도대체 뭐야?라는 표정으로 째려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괘념치 않는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만 즐기면 되는 것이니까. 게다가, 앞으로 걸을 때는 쓰지 않았던 골반과 관절을 쓰면서 몸이 조금씩 유연해지는 기분이 든다. 무엇보다 신나게 걸을 수 있게 되어 1시간 할 운동을 2시간 하게 되는데,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눈치를 볼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다른 방향으로 걸으면서 느낀 점은 여전히 앞으로 간다는 것이다. 다른 방향으로 걷는다고 앞으로 나아가길 멈추는 것이 아니었다. 몸을 옆으로 틀든, 뒤로 틀든 간에, 내 몸은 항상 앞으로 나아갔다. 편한 자세가 아니라 속도는 조금 줄어들었어도 어떻게든 앞으로 움직였다. 더군다나, 새로운 감각이 더해지니 재미있고, 재미가 있으니 더 오래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인생에도 느슨함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매일 잔뜩 힘을 주고 살아가면 반복되는 일상이 내 몸과 마음을 망쳐버린다. 그러니, 인생도 가끔은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 찰나의 느슨함이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점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장난으로 시작한 APT가 전 세계를 웃고 울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행복과 슬픔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러나, 그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어버린다. 쫄지 말자. 내 인생에서 하루를 느슨하게 보낸다고 크게 바뀔 것은 없다.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둘 중 하나다. 그렇다면, 이번 주말은 아무 이유도 없이 아무 계획도 없이 그냥 쓸모없이 보내볼까. 하루가 힘들다면 한 시간이라도 그렇게 보내자.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노래를 부르고,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춤을 춰보자. 우리는 인간이지 로보트가 아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모든 순간을 100%로 살 순 없다. 오히려, 반드시 어떤 순간엔 0%로 살아야 한다.
심장이 하루 중 12시간을 쉬고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삐이이이이이-! 내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심장이 멈춰서 죽는 사람들을 얼마나 보았던가. 인간이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심장이 24시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심장은 혈액을 몸으로 밀어낼 때만 강하게 움직인다고 한다. 반대로, 심장에 혈액이 차는 동안에는 완전히 힘을 빼는 것이다. 심장이 잠깐 멈춘다고 사람이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오히려, 심장은 매 순간 움직였다 멈추길 반복하고 있었다. 즉, 심장도 하루의 절반은 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왜 하루도 쉬지 않고 죽기 직전까지 노력하며 살고 있을까. 심장이 나를 살리기 위해 힘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나도 나를 살리기 위해 삶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더 잘 살고 싶다고 더 열심히 사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다. 어쩌면, 덜 열심히 사는 것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음악의 제곱을 연재하면서 매번 마지막 문단을 쓰는 일이 가장 어렵다. 어떻게 하면 멋지게 끝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까, 여러 고민을 하면서 오랜 시간을 들인다. 썼다가, 지웠다가, 고치기를 수 십 번, 어느 날에는 수 백번 한다. 앉아서 쓰는 게 힘들면, 서서도 쓰고, 그게 안되면 걸으면서도 글을 쓴다. 완성을 넘어 완벽한 글을 만들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한다. 지금도 탄천을 걸으며 마무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 여태, 힘을 빼라고 이야기했으면서, 정작 나는 여전히 힘을 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잘 쓰지는 못해도,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다. 그래서, 그냥 이번엔 이대로 끝내볼까 싶다. 마지막이 항상 아름다울 수 없는 게 인생이듯, 마지막이 항상 완벽할 수 없는 것이 글이니까.
저 멀리 아파트가 보인다.
아파트, 아파트,
바람을 타고 날아온 노랫말에 미소가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