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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피플 Nov 07. 2024

러브 러닝

토요일은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느지막이 눈이 떠진다. 찌뿌둥한 몸을 뒤척이며 밤새 굳어있던 몸을 풀어준다. 끄응읏차! 팔과 다리를 있는 대로 쭉 늘려서 기지개를 켜면 일주일 내 일상에서 쌓인 피로가 녹아내린다. 휴일엔 침대 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듯 차렵이불을 다리 사이에 끼고 다시 꽉 안는다. 은은하게 퍼지는 섬유유연제 향기와 살갗으로 전해지는 포근한 촉감이 휴일의 만족감을 한껏 높인다. 들뜬 마음으로 휴대폰을 들고 배달앱을 킨다. 메뉴는 정해져 있다. 맥도널드를 검색해서 베이컨 토마토 디럭스 버거 라지 세트를 시킨다. 휴일만큼은 비싼 음식 가격과 배달비 앞에서도 내 손가락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결제 버튼을 향해 질주한다. 그렇게, 배달이 도착하면 종이 포장용지를 벅벅 찢어서 펼쳐 놓고 그 안에 라지 사이즈의 감자튀김과 케첩을 붓는다. 음식이 준비됐으면 다음은 영화다. 영화는 주중에 합리적인 사고로 무장했던 나의 딱딱한 뇌를 말랑하게 풀어주는 브레인 안마기가 된다. 영화가 시작되면 망토처럼 몸을 감싸고 있는 이불 사이로 손만 쏙 꺼낸다. 그 손으로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번갈아 집어 먹는다. 나는 그 순간 장기하 <부럽지가 않어>의 주인공이 된다. 이불, 햄버거, 영화만 있으면 누구도 부럽지 않은 휴일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장기하_부럽지가 않어


지금도 여전히 휴일에는 영화를 챙겨보고 있다. 다만, 침대에 드러누워서 볼 수 없을 뿐이다. 허리 수술을 하고 나서는 오래 앉아 있거나, 누워 있지 않으려고 한다. 자전거도 계속 타줘야 녹슬지 않는 것처럼, 허리도 계속 움직여야 가동성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휴일에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놓칠 수는 없는 법! 나는 일어서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절에 재택근무를 위해 샀던 모션 데스크가 큰 도움이 됐다. 모션 데스크를 최대한 위로 올려서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면, 눈높이가 올라가 자연스럽게 허리에 좋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 동안 똑바로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 장시간 일어서서 생활을 해본 적도 없었고, 수술로 코어 근육이 많이 손상됐으니 당연한 일이다. 얼마나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는지 영화를 보고 나면 소파에 엉덩이 자국이 생겼다. 그러나, 지금은 고수의 반열에 올라 스쿼트를 하면서 영화를 보고 있다. 눈과 귀는 영화를 위해 열어두고, 허리와 하체는 코어 근육을 단련하는 것이다. 영화를 볼수록 탄탄해지는 허벅지를 만지고 있으면, "난 진짜 운이 좋다니까."라는 탄성이 나온다. 이참에, 영화와 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인생의 치트키를 알게 됐으니 말이다.

일어서서 보는 영화관, 우리 집 큰 방


최근에 스쿼트를 하면서 봤던 영화는 I FEEL PRETTY 다. 영화는 주인공인 '르네'가 실내 자전거를 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르네는 남다른 패션센스와 유쾌한 입담으로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정작 본인은 통통한 몸매 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살아간다. 날씬해지기만 하면, 예뻐지기만 하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그러다, 힘이 과하게 들어가면서 넘어지게 되는데 그 순간 머리를 크게 부딪힌다. 쿵!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창피해진 르네는 화장실로 도망간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르네가 거울 속의 자신을 보더니 갑자기 너무 예뻐졌다고 방방 뛰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우리가 보기에는 통통한 모습 그대로인데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물리적인 변화가 하나도 없지만, 르네는 본인이 날씬해졌다고 믿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자신감만 넘치는 르네를 보고는 처음엔 어이가 없었으나, 계속 보고 있으니 르네가 점차 다르게 보인다. 르네의 말대로 르네가 보이기 시작한다. 르네가 날씬해 보이고, 르네가 예뻐 보이고, 르네가 섹시해 보인다.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게 된 르네는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랑받는 사람이 된다.


빡! 이 영화를 보는데 누군가 뒤통수를 후리는 기분이 들었다. "너는 너 자신을 얼마큼 사랑해?" 라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조차 건네본 적이 없었다. 사랑은 제처 두더라도 위로나 감사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누구도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항상,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배웠다. 칭찬, 위로, 감사, 사랑 같은 다정한 말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나에게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던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살갑게 인사를 잘도 건네면서, 처음 보는 내 모습을 마주하면 놀라서 도망가기 바빴다.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보고 싶다며 표현을 잘도 하면서, 나 스스로에게는 따뜻한 안부 한 번 건넨 적이 없었다. 수술을 하고 내가 자신감을 잃은 이유는 통증 때문이 아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이유도 다른 사람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나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나 때문이었다. 나는 나를 사랑할 줄 몰랐다.


코스모스 길을 걷고 있는 동네 어르신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_들꽃


시집이나 가사는 종종 쓰인 언어와 다르게 해석이 될 때가 있다. 나태주 작가의 들꽃이 그렇다. '너'가 자꾸 '나'로 느껴진다. 자신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나 같은 사람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연서처럼 읽힌다. 학교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던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들꽃이 알려주는 것 같다. 어쩌면, 나를 향한 사랑도 나를 자세히 보는 것부터 시작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차근차근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이다. 나 자신의 얼굴도 하나하나 자세히 봐야 하는 것이다. 요즘은 매일 저녁이면 샤워를 하고 꼭 거울로 나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있다. 내 눈동자 색은 짙은 갈색이구나, 내 콧대가 꽤나 날카로웠네, 땀구멍인지 주근깨인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에 난 구멍들이 꽤나 귀여운걸. 나를 천천히 보고 있으면, 나도 몰랐던 나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다음에, 나에게 은근슬쩍 말을 건다. 오늘은 잘 지냈어? 라고 하루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 처음엔, 나에게 안부를 묻는 나의 음성이 들리는데 생마늘을 씹은 것처럼 코 끝이 찡해졌다. 오랜만에 다시 연락이 닿은 친구처럼 반갑기도 하면서, 처음으로 용기를 내서 먼저 연락해 준 친구처럼 고맙기도 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고, 무엇이 힘들었고 감사했는지, 일상을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에게 가장 솔직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이자, 나는 나에게 가장 진심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자, 나는 나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을 해줄 수 있는 연인이었다.


그래, 나를 사랑해야지! 머리로는 알겠는데 막상 용기가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듣는 순간은 잠시지만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린다. 그 세계는 현실과는 멀어지고 나 자신과는 가까워지는 공간이다. 오직, 음악과 내가 충만한 세계에선 나를 온전히 바라보게 된다. 특히, 가호의 <러닝>은 유독 나의 자존감을 북돋아 준다. 가호는 이태원클라쓰의 OST <시작>이라는 음악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반짝 받았지만, 나는 가호의 보컬에서 느껴지는 회복과 희망의 에너지 때문에 아직까지도 찾아 듣고 있다. 맑은 시냇물 같이 청량한 목소리에선 새살이 돋아날 것 같은 생명력이 느껴지고, 힘차게 몰아치는 폭포처럼 호소력 짙은 가창력에선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이 흘러넘친다. 가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은 사랑마저 샘솟는다. 게다가, <러닝>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를 응원하는 가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뒤쳐진 나를 일으킬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나라고, 두려움에 맞서고 있는 나를 응원할 수 있는 것도 다름 아닌 나라고. 지금 부르고 있는 이 음악도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는 노랫말이 내 심장을 뛰게 만든다. 이 음악은 아침에 들으면 제곱으로 좋아진다. 풍부한 밴드 사운드로 시작했다가 보컬이 들어오면 밴드 사운드는 자연스럽게 페이드 아웃 되는데, 마치 새벽에 짙게 서린 안개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온기로 걷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침에 일어나 <러닝>을 틀어두고, 창문을 여니 내 머리카락을 넘기는 부드러운 바람이 들어온다. 마치, 그 바람이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을 수 있는 희망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오늘도 영화 같은 내 인생의 러닝타임은 러닝과 함께 재생된다.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을 거야
Running running 너와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어
바라던 곳에 닿을 그날을

가호_러닝


나는 1km를 5분대에 달리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15분이 넘게 걸린다. 나는 이름만 들으면 모두가 아는 회사에 다녔지만 지금은 동네 백수다. 나는 매주 약속이 있을 정도로 찾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연락 오는 곳이 거의 없다. 지금은 내 체력도, 내 능력도, 내 관계도 모두 바닥인 인생인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시 물어본다면 이번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나를 이만큼 사랑해 본 적이 없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가장 최악의 나이지만, 나는 지금의 내가 가장 사랑스럽다. 내가 얼마나 아프던지, 내가 얼마나 못났든지, 내가 나를 사랑하는 데에는 무엇도 상관이 없다. 언젠가 아름답다의 '아름'이 '나'라는 의미라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는 말이다. 당시에는 글자로만 읽었던 글이 왜 이제서야 가슴으로 이해가 되는 걸까. 나는 비로소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네가 너인 것이 어떻게 약점이 될 수가 있어?"

박상영_대도시의 사랑법


최근 박상영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문장 하나가 유행을 타고 있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약점이 될 수 없다는 말인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SNS로 공유하고 있다. 그만큼 자기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도 그랬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 아니,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요즘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하니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새벽 내내 바람에 떨어졌던 낙엽을 쓸어 담는 관리실 아저씨, 누군가 무심하게 뱉은 껌을 떼느라 바닥에 앉아서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 내가 나를 피해 다니고, 내가 나를 싫어하던 일상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보인다. 나아가 그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이 보이니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게 된다. 수고가 많으세요, 라고 말을 건네면 고맙습니다, 라는 말이 어김없이 돌아온다. 어쩌면, 사랑은 언제나 나로 시작해서 당신으로 이동하지만 결국엔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나를 사랑하는 일은 남을 사랑하는 일이고, 남을 사랑하는 일은 나를 사랑하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동그라미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마지막 자음이 동그라미(ㅇ)로 맺어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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