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빨래방이지만 가는 길이 새롭게 느껴졌다. 빨래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때문일까? 발걸음이 가벼웠고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도 여행은 출발하는 날 시작되는구나. 시시한 여행... 생각보다 더 재밌겠는걸?
내가 처음으로 빨래방을 간 것은 런던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할 때다. 런던은 집 값이 워낙 비싸서 원룸을 혼자서 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룸메이트와 방 하나를 공유하면서 살았다. 당연히 세탁물을 건조할 공간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빨래방을 찾게 되었다. 세탁물 바구니를 들고 처음 빨래방 문을 열었을 때, 콧구멍으로 밀려 들어오던 향기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단순한 세재나 섬유유연제 냄새가 아니었다. 그 향기는 따뜻한 햇빛이 들어오는 침대 위에서 새하얀 이불을 덮고 뒹굴거리는 내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그 정도로 특유의 포근한 향기를 가지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세탁기와 건조기에서 나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도 나쁘지 않았다. 그 소리가 귀 속으로 들어오면 왠지 모르게 간질간질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빨래방에 가게 되었다. 특히, 고민이 많아지는 날이면 없는 빨랫감을 만들어서 가기도 했다. 그렇게 빨래방은 나에게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마침, 시시한 여행의 첫 번째 여행지가 빨래방이 되었다. 나는 시시한 여행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시시한 여행을 정의해보자면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떠나는 여행이다. 무엇을 준비하고 특정 미션을 수행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여행이 아니다. 그저, 매 순간 발길이 향하는 곳으로 떠나 여행의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작은 규칙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SNS 하지 않기. 남들의 일상을 보게 되면 나의 현재와 비교를 하게 되고 결국 여행의 순간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여행의 순간들을 SNS에 공유하기 시작하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여행을 하면서 SNS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는데, 재밌는 이유 때문에 한번 사용하게 되었다. 이 재밌는 이유는 시시한 여행의 후반부에 불국사에서 누군가를 만나 생기게 되니 기대하기 바란다. 두 번째 규칙은 이어폰 끼지 않기. 일상에서 이어폰은 소음을 피하기 위한 필수템이다. 하지만, 여행 중에는 일상에서 소음이라고 생각하는 소리들 조차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다양한 소리들을 느낄 수 있도록 이어폰을 끼지 않기로 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큰 결심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감각을 민감하게 곤두세우는 것을 규칙으로 정했다. 목표를 정해두고 떠나는 여행과 달리 매 순간이 목표가 될 수 있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민감하게 여행을 하는지에 따라 시시한 여행은 나름 근사한 여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