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야 하는대......

(병자호란 그리고 쌍령전투)

by 홍반장

"이제 그만 좀 일어나라! 대체 몇 시냐!!"


휴일이지만, 마눌님의 알람 소리에 맞추어,

일어나기 싫은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뭘 모르내!! 휴일에는 늦게 일어나 줘여해. 그래야 쉬는거 같단 말이지!"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다

한 소리 더 들었다.


이를 닦으며, 거실 청소를 하고 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

"오늘 점심은 뭐야?" 늦게까지 잠을 잤더니 허기가져서 청소하고 있는 아내를 보며 무심코 툭 던지듯 말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없는 말은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기라도 하듯이,


" 안 먹어도 될꺼 같은데! 무얼 그리 꼬박꼬박 다 챙겨 먹을려고 그러셔? 뱃살 좀 보고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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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기에는 조금 이른거 같은데, 운동 좀 할겸 뒷산이나 다녀오지 그래?"


'아! 귀찮게!'라고 생각하는 찰라,

"아빠 가자. 가! 살빼러 가자! 가!"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리 큰 아아들이 내 손을 잡고, 산에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 이러고 주구장창 시간만 보내는 거 보다 낫겠지'


"그래! 다녀 오자고. 아들 물병 챙겨, 후딱 다녀와서 점심 먹자구!"


우리 아파트 뒷산!

산 정상까지 여러 갈래 길이 있지만, 우리 집 아파트에서 가는 길이 가장 빠르고 가깝다.

이유는 다른 길에 비하여 가파르다.


울 아파트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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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까지 갔다가 바로 아파트 정문까지 다시 오는대 1시간이 채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살이 쪄서 시간은 자꾸.... 자꾸.... 뒤로....)


"헤헤! 힘들다. 아들 천천히 좀 가자!"

전부터 느끼는거지만 산은 애들이 더 잘 타는거 같다. (가벼워서 그런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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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에서 여유있게 포즈를 취하는 우리 아이들!


산 정상의 이름은 국수봉이다.

그리고 그 국수봉에는 비석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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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방 창문에서 바라본 뒷산과 산 정상에 있는 비석

산을 올라간 우리 큰 아들이 가만히 비석을 바라보다가 묻는다.


"병자호란이 뭐야?"



1636년 청나라의 홍타이지가 조선의 친명정책을 변경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명과의 전면전 전에 배후의 안정을 목적으로 조선을 침공한 전쟁이 병자호란이다. 조선에서는 청의 침공에 맞서 주전파와 주화파로 나뉘어져 논쟁이 벌어졌으나, 이내 항쟁을 결심하였다.


당초, 조선의 방어전략은 수성을 주 목적으로 하여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끄는 것!

명을 배후에 두고 전쟁이 장기전으로 간다면 청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라는 책략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하지만, 청 나라의 기병은 조선군이 지키고 있는 산성을 우회하여 번개처럼 처들어왔다.

청 군의 침공을 알아챈 것은 이미 한양에 거의 접근한 12월 13일 급하게 파천을 결심한 왕 12월 14일 강화도로 피신하려 했으나, 정묘호란의 경험이 있었던 청군은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끊었고, 이에 어쩔 수 없이 파천의 장소를 남한산성으로 옮겼다.


[쌍령 전투]

청군에게 고립된 인조와 신하들

그리고 계속되는 주화파와 주전파의 논쟁에 인조의 이마에 깊은 골이 맺혀졌다.

하지만, 이내 의왕군(義王軍)이 도착하여 청군을 물리쳐줄거라 기대 했던 인조는 항전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그 기대에 호응하듯 경상 좌병사 허완과 우병사 민영이 군사를 모아 출발하여 남한산성 근처의 쌍령에 집결하였다.

때마침, 조선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약 30여명의 기마병들로 척후병을 보낸 청!!

이를 발견한 조선군이 숙련되지 못한 채 총을 발사했고 탄환을 재차 보급받기 위해 아우성 치던 그 때,

청의 기병이 목책을 넘어 마구잡이로 조선 병사들을 살육하기 시작했다.

허둥지둥!

도망치기 바쁜 조선군은 청의 기병에 의해 심지어는 자신들끼리 밟고 밟혀 죽는 참극이 벌어졌다.

그리고 허완은 통한의 쓰라림을 감추지 못해 스스로 자결하였다.

아울러, 반대편의 민영은 그나마 분전하였으나, 화약고가 폭팔하는 천재까지 겹쳐 민영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병사가 전사하였다. 겨우 30남짓의 기병에게 의왕군 수천명이 살해당했던 치욕적이고 쓰라린 전투

(조선의 4대 패전 : 용인전투, 칠전량해전, 쌍령전투, 현리전투)


이 전투를 계기로 인조 역시 항전을 포기하고

삼전도에서 청의 황제에게 삼궤구고두례(세번 무릎을 꿇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법)

행하며 굴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삼전도비 1.jpeg 서울 송파구에 있는 삼전도비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들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비석 앞에서 가벼운 목례를 취했다.


"아빠, 이런 곳에서 싸움을 하셨다니 무척 힘들었겠다. 그런데, 아빠 힘들어?"


"아니, 괜찮은데....."


"그럼, 운동하러 가자" 이야기 하면서 정상에 있는 운동기구로 뛰어갔다.

그런 아들을 보며 여태 무심코 지나쳤던 비석 앞에 나도 가벼운 목례를 취하고 아들을 쫓아갔다.


'아이구, 삭신이야~ 진짜, 살 빼야겠다'


다짐을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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