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끝나지 않은 식민지의 피해라는 책을 읽고......
새해가 밝았다.
구정을 명절로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요즘 추세가 그런지 양력 새해를 지내는 사람도 생각보다 꽤 많다. 까치의 설날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되버린 것이다.
사실 설날이 주는 의미가 중요하지 설날의 날짜가 중요한 것은 아닐것이다.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여 찾게 되는 성묘와 새배는 그 중요한 의미가 가장 중요한 축이라 생각한다.
작년이 되어 버린 지난 12월 책 한권을 선물 받았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식민지의 피해] 라는 제목이 적혀 있는 책!
역사를 가르치고 공부하는 나에게 제목은 그리 생소하지도 그리고 그 안에 적혀 있는 내용과 의미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글을 읽어보니,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일제의 피해와 그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그들이 느끼는 아픔이 더욱 진하게 배여 나에게 다가왔다.
책의 첫 장을 넘기자 이사현씨의 딸 이희자 님의 사진이 보인다. 무덤 앞에 꽃다발을 놓은 그녀의 얼굴에는 아픈‘한(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합사라는 이름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묻힌 500여명의 한국인들.....
일제의 징용에 끌려 가족을 등지고 전쟁터에 나가는 일조차 고통이요, 그 억울함이 이만저만이 아닐진대, 죽어일본을 위해 싸우다 죽은 전쟁 영웅이 되어서 신사라는 곳에 묻힌 그들의 한을 생각하니.....
그리고 남겨진 그들의 가족이 느끼는 비통함과 슬픔은 지제 짐작하여 가늠하기도 어렵다고 생각되었다.
야스쿠니 신사 그곳은 메이지 유신 당시 도쿄 초혼사(招魂社)로 시작하여, 1897년 야스쿠니신사로 이름을 바꾼 곳으로 1869년 6월 28일 메이지 유신 신정부에 의해 건립되었을 때, 신정부를 위해 싸운 전사자는 천황을 내세워 높이 떠받들고 구 막부군의 전사자를 적도라고 폄하하며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시작했던 것처럼 이후 야스쿠니신사는 신사 본연의 의미를 상실한 체 일제 군부의 오만과 탐욕 그리고 만행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상징적 기관이 되어버렸다.
일제 미나미 지로 총독에 의한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정책이 가속되던 시기인 1939년, 그 해 조선금융연합회가 발간한 10월호 「가정의 벗」‘야스쿠니신사 사두의 감격’의 특집 중「군국 여학생의 충혼」이라는 글을 읽었을 때는 마음이 무척이나 떨리고 아팠다. 목포고등소학교 4학년 여학생이 야스쿠니신사에 참배(參拜)하지 못해 친구에게 돈을 전달하여 바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며 돈을 건네고, 친구는 네 몫까지 참배(參拜)하고 올 테니 안심하라는 내용이다. 그 소녀들은 조선의 딸들일진대, ‘어찌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겠느냐?’라며 지어낸 이야기로 치부하고 싶지만, 만약 그녀들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이 또한 억장(億丈)이 무너지고 소름이 끼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야스쿠니신사를 이용하여 말한 애국은 사실 우리에게는 친일(親日)이고 매국(賣國)과도 같은 것일진대, 민족을 말살(抹殺)하고자 한 그들의 만행(蠻行)이 가장 올바르고 참되어야 할 학생들의 교육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리고 그들의 교육이 ‘참’인 것 마냥 받아들여야 했던 당시의 학생과 민중을 생각하자니 마음 한편이 서글퍼지기도 하였다.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셔야 했던 순국선열(殉國先烈)과 호국영령(護國英靈)을 기리는 곳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답고 숭고한 마음을 기리며, 그들의 숭고한 피가 나와 내 조국을 있게 했음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무이고 책임이라 생각한다. 아울러, 우리의 선조들에 모든 행위가 다 정당하고 옳다고 생각하진 않으며, 잘못되고 그릇된 일에 대해서 후대는 함께 책임을 공감하고 때로는 사죄하며, 그릇된 일을 올바르게 잡아가는 것 또한 앞서 말한 의무 못지않게 중요한 책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시작부터 정치적 목적이 우선 이었던 이 야스쿠니신사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면서 극단적 민족주의를 위한 일제의 모든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시설이라는 점에 일제의 무책임하고 뻔뻔한 민낯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더욱이 일본의 국민에 의해 선출된 총리가 이와 같은 침략전쟁의 A급 전범자가 합사되어 있는 곳을 방문하여 참배한다는 것은 그 침략에 피해를 봤던 모든 국가와 민족에게 또 다른 모욕(侮辱)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함께 이를 미루어 짐작컨대, 세계 2차 대전 이후 그나마 몇 차례 보였던 일본의 사과 역시 진심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 생각한다. 책 중 독일의 노이에 바헤 추도문을 보면서 ‘사과(謝過)’란 것은 그리고 ‘진심(眞心)이 담긴 반성(反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자존심을 지키고 자신을 돌이켜 더 큰 발전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철모르는 미숙한 어린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떼쓰고, 우긴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사실이 합리화되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닐진대….‘하물며 국가는 더 하지 않겠는가!’
책 속에 야스쿠니신사에 강제로 합사된 피해자 가족들의 탄원서가 있다. 그리고“거기서, 아버지가 합사되었다는 표기를 보고 눈을 의심했습니다.”라는 첫 구절을 읽자마자 나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의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어도 어찌 보면 개인과 가족에게는 슬픈 일 일수도 있을 텐데, 원하지 않는 강요로 전쟁터에 끌려가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은 자로서 그 그릇되고 오만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라니…. 참을 수 없는 모욕과 분노는 물론이요, 그 감정 뒤에 따라오는 슬픔이 담긴‘한(恨)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 아버지는 한국 사람이지 일본 사람이 아닙니다. ‘천황’을 위해 죽어간 사람이 아닙니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젊은 나이에 죽어간 것도 억울한데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 있다니 저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유족에 통보도 없이 1959년 10월 일방적으로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동선홍의 자(子) 동정남씨가 도쿄법원에 낸 호소문의 내용이다. 그들의 피 끓는 한이 담긴 소리가 이렇게 묻혀 있건만, 도쿄지방법원은 1988년 대법원판결을 근거로 이들의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너무 어처구니없는 판결에 분노와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만행을 전쟁이 끝나고 반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행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내 작은 소견이지만, 일본은 아직도 제국주의의 허황되고 잔인한 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듯 보인다. 아니, 한국을 식민지화하고, 만주국을 세웠으며, 중국 본토를 침략하였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당시에 내세웠던 허울 좋은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라는 망상(妄想)을 아직도 좇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그 잘못된 망상의 상징이며, 결과물인 야스쿠니신사를 아직도 저렇게 보호하고, 참배하는 것 아니겠는가!
코로나-19로 모이기가 힘든 이 상황 속에서도 아니 어쩌면 이런 상황인지라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조상에 대한 애틋함이 더욱 더해지는 새해 첫날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읽은 나의 마음은 막막해지고 무거워진다. 나조차도 이럴진대, 이런 말도 안 되는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유족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안쓰럽다. 낯선 일본땅이 아닌 내 나라의 땅에서 내 핏줄에게 명절 인사를 받고 싶은 억울한 선조들의 한을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뒤따랐다.‘역사가 바로 서지 않는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는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 말을 이행하기 위해 다짐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원치 않는 강요로 야스쿠니신사에 합사 당한 유족들의 그 끝나지 않는 아픔이 어서 빨리 끝이 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