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니 애비를 잘 아는대......

1. 장수(張壽)왕

by 홍반장



성균관 명륜당(明倫堂)

영조대왕이 용상(龍床)에 착석해 있었고, 그 앞에는 전시(대과 합격생 중 최종 순위를 결정하는 시험)를 치른

총 33명의 인원이 최종 합격증명서인 홍패를 받기 위해 왕 앞에 부복하여 있었다.

이어 순위가 발표되고, 차례대로 왕에게 나아가 홍패를 수여받는다.

그리고 영조는 한명씩 그들의 신상내역을 묻는다.

"너의 가문과 네 부모는 누구인고?"

영조 대왕의 말에 감복하며, 주저리 주저리 대꾸를 시작한다.

그리고 가만히 듣고 있던 영조가 무심코 한마디를 툭 내던진다.

"내가 니 애비를 잘 아는대......"


이 말을 들은 과거 합격자, 이제는 왕의 신하가 된 자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짐작컨대,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을 보며, 내가 너희 엄마도 가르쳤어! 라고 말했을 때,

이말을 듣는 학생의 기분과 얼추 비슷하지 않았을까? ㅋㅋㅋ

(물론, 당시 조선의 시대상을 고려하면 지금보다 그 충격의 정도는 훨씬 심했을 것이다.)

성균관 명륜당I.jpg

(성균관 명륜당)


"왕권이 강하려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여려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왕위(재위)를 오랫동안 차지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를 오래 한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해 잘 알 수 밖에 없고, 잘 할 수 밖에 없는 일 이잖은가?

( 누군가의 말마따나 한 가지 일을 10년 넘게 하면 그 방면에 장인이 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영조(1694~1776)

조선 시대 왕 중 최장수 왕이자, 재위기간(1724년 8월 ~ 1776년 3월)만 무려 51년 7개월이나 되는 왕!

이름은 금(昑)

숙종의 아들이자, 어머니는 화경숙빈 최씨이다.

1699년 연잉군에 봉해지고, 1721년 왕세제에 책봉되었다.

이후, 이복 형이었던 경종(재위 1720년 6월 ~1724년 8월)이 죽자 조선의 21대 왕의로 등극한다.



우리에겐 사도세자의 아버지이자, 조선 후기 최고의 성군으로 일컬는 정조대왕의 할아버지로

더 잘 알려진 분이기도 하다.


정말로 어렵 사리 왕위에 오른 영조!

그에게는 건강에 정말로 안 좋은 세 가지 엄청난 아킬레스건이 있었다.


첫번째는, 어머니의 출생 신분이다.

천민(노비)출신이었던 화경숙빈 최씨

그녀는 인현왕후의 몸종이었으며, 궁중에서도 천한 무수리들의 허드렛일을 돕는 일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유교국가에서 적장자 상속이 원칙이 된 이곳에서 서자(첩의 자) 출신도 아닌

얼자(천민의 자) 출신의 영조가 왕위를 계승했다는 것은 당시 정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고, 급변했는가를 보여주는 반증인 반면, 영조 개인에게는 엄청난 자격지심을 가지게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두번째는 자신의 이복 형이자 선대 왕인 경종의 죽음이다.

희빈 장씨의 아들로 태어나 숙종으로 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경종(이윤)

하지만, 희빈 장씨가 사사되면서 그의 아들이었던 경종은 그야말로 살 얼음판을 지나는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지만 결국 왕위에 오른 경종

그리고, 노론의 엄청난 무리수로 인해 경종에게 연잉군(훗날 영조)을 왕세제로 채택할 것을 요구하였고,

그런 가당치 않은 요구를 받아 들인 경종.

다른 이유는 차치하고, 아무도 추측건대 배다른 형제라 하더라도 혈육은 자신의 이복동생 연잉군 밖에

없었기에 그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병 약했던 경종은 죽음에 영조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영조는 독살설에 휘말리게 된다.



약방에서 입진(入診)하고 여러 의원들이 임금에게 어제 게장을 진어하고 이어서 생감을 진어한 것은 의가(醫家)에서 매우 꺼려하는 것이라 하여, 두시탕(豆豉湯) 및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을 진어하도록 청하였다.

경종실록》, 경종 4년(1724) 8월 21일


24일 경종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고 의식이 없자 인삼을 쓰도록 요구하였다. 하지만 의관 이공윤은 "삼다(蔘茶: 인삼차)를 쓰면 안 된다며, 계지마황탕(桂枝麻黃湯) 처방했지만 저녁에 상태가 더 심각해졌다. 이에 당시

세제(世弟)였던 영조와 도제조였던 우의정 이광좌를 비롯한 신하들이 급히 경종을 찾아가고 영조는 "인삼(人蔘)과 부자(附子)를 급히 쓰도록 하라." 하는 지시를 내렸고, 이에 이공윤은 반대하였지만 영조의 강력한 주장에 결국 인삼차를 복용하게 한다.

그러자 잠시 경종의 안색이 다소 안정되는 듯 하나 곧 병세가 악화되고 결국 사망하고 한다.



위 글에서 보듯 영조는 형을 위한 마음이었던지 아니면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형을 독살하였던 간에

분명한 건 경종의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경종의 급작스러운 죽음

영조에게는 평생의 아킬레스건 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늦은 나이에 얻게 되었던 사도세자 이선이다.

너무도 잘 알려진 사도세자 이야기

영조의 첫째 아들인 효장세자가 병으로 일찍 죽고, 정말 늦은 나이(42세)에 얻게 되는 둘째 아들 이선

너무도 예뻐하여 태어난 다음해 바로 원자와 세자 책봉을 하였다.

(조선 역사상 가장 빠른 원자와 세자 책봉)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도세자의 애정결핍과 정신질환은 심해져갔고,

결국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하게 된다.

(사도세자의 자세한 이야기는 제 브런치 " 세자저하! 공부 시간입니다." 를 살펴보세요.)


이렇듯, 건강에 최악이라 할 수 있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한 가지도 아닌 세 가지나 가지고도

조선시대 최장수 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져간 영조.


대체, 어떻게 하면?


혹자는 영조가 건강한 체질을 타고 났다고 말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조는 타고난 약골에 어렸을 때부터 여러가지 잔병치레가 많았었다.


그럼, 대체 그 비결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의 식생활 습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조는 소식을 하였다.

조선시대 왕은 평균 수라 3회, 간식 2회 총 5회의 상을 받지만

영조는 3회로 줄였으며, 그나마도 소식이나 단식도 자주했다고 한다.


두번째로는 누구나 잘 아는 이야기이지만,

육식을 절제하고 채식위주로 식사를 했다고 한다.

(백성들과 같이 한다는 애민정신이 담겨 있다고 전해진다.)


마지막으로 술을 많이 금했다고 한다.

술 대신 차를 많이 마셨으며, 생강차를 즐겨 드셨다고 한다.


오늘도 난 저녁 식탁에 차려진 반찬을 보고 너스레를 떨며 아내에게 핀잔을 준다.

하지만, 의례적으로 나에게 대답한 줄 알았던

"당신, 건강을 생각해서야. 고마운 줄 알아."

라는 말이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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