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을 신봉한 전륜성와의 화신 아소카!
“내가 발견했다. 완벽한 T를..... 하하하!“
저녁 식사 준비가 한창인 아내에게 재밌는 걸 알려 준다며 한껏 들뜬 마음으로 말했다.
“그런 사람이 어딨어?”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하하. 너도 알껄? 아소카 왕!”
와이프도 역사를 가르쳐서 이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아소카? 인도 최초의 통일왕조의 왕이었던 아소카 왕 말하는 거 아냐?”
"맞아. 그런데 아소카의 뜻은 알아?"
'큭큭큭.....알리가 없지. 그걸 어떻게 알겠어?"
"그...뭐냐? 슬픔을 모르는 자...눈물이 없는 자 뭐 그런 뜻이었던 거 같은데 맞아?"
'헉! 이런걸 대체 어떻게 아냐고.....!!'
[아소카 왕]
인도 최초의 통일 왕조를 이룩한 아소카왕은 마우리아 왕조를 세운 자신의 할어버지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의 손자로 태어났으며, 마우리아 왕조의 3대 왕이다.
인도 최고의 군주 중 한명으로 거론되는 아소카왕은 그야말로 피의 군주였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마우리아 왕조의 2대 왕이었던 빈두사라의 101명 중 자식 중 한명으로 태어난 그는 친동생 한명을 빼고 이복동생 99을 모두 죽였다. 그야말로 그 이름에 걸맞은 잔인한 자였다.
그리고 그가 재위에 올랐을 때도 그 성향과 잔인함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처음 아소카 왕이 즉위한 후 행동이 대단히 난폭하여 지옥(뇌옥)을 만들고서 사람들을 살해했다. 둘레의 담장은 높이 솟아 있고 귀퉁이의 망루는 더 높게 했다. 맹렬한 불꽃과 홍로(큰 화로), 날카로운 창과 예리한 칼 등 갖가지 고문 도구를 갖추고 그 모습을 지옥과 같이 차려놓고 흉포한 자들을 모아 옥주(전옥)을 맡겼다. 처음에는 나라 안의 법을 어긴 죄인을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모조로 도탄의 고통 속에 처넣었는데, 게중에는 감옥을 지나가는 자들, 그 다음에는 아무나 잡아다 살육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오는 자는 모두 죽게 되므로 그대로 입을 봉하여 밖으로 새어나가는 법도 없었다. - 현장 <대당서역기> 권8, 파탈리푸트라 성 -
왕위 계승을 비롯한 왕가의 암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런 성향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할 법도 하지만, 그렇기엔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고 왕위에 올라서도 그 잔인한 악행은 계속 되었던 것으로 보아 태생이 감정이 메말랐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아소카왕의 성향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칼링가 전투' 였다.
[칼링가]
전통적으로 칼링가 지역 왕이 없었다.
아울러, 칼링가 지역은 평화롭고 예술적으로 숙련된 사람들도 구성된 지역으로 알려져있다.
그들은 꽤 많은 항구와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열린(개방된) 문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칼링가는 원래 난다 왕조의 통치 아래 있었으만, 난다 왕조의 몰락 이래로 자치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칼링가는 마우리아 왕조의 입장에선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즉, 칼링가는 마우리아의 수도 파탈리푸트라와 중앙 인도 반도의 마우리아 영토 사의의 연락을 방해할 수 있으며, 뱅골의 무역 해안만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칼링가는 아소카왕의 할아버지 찬드라굽타가 수 차례 정복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었다.
칼링가를 업신 여겼는지 소수의 병력만을 보내 공격했지만, 몇 번의 실패가 계속 되었고 드디어 참다 못한 아소카 왕이 보병 60만, 기병 10만, 코끼리 부대 9천 마리로 구성된 대군을 이끌고 친정을 감행했다.
그리고, 마하나디강 지류인 다와강에서 칼링가군과 전면전을 치르면서 칼링가의 지배자인 마하파드마나바를 포함한 칼링가군 10명이 전사하면서 마우리아 왕조의 승리로 끝이났다.
하지만, 전쟁의 결과는 너무나도 참혹하였다.
포로로 이송된 인원만 15만명 그리고 사상자는 10만명에 이르렀다.
전쟁이 끝난 다음 아소카왕은 그 참혹한 현실을 자신의 탐욕과 정복욕에 결과로 여겨졌고, 눈물이 없는자 라는 아소카에 걸맞지 않게 다음과 같은 칙령을 내려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고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다.
신의 사랑을 받는 프리야다르시(아소카왕)는 대관식 이후 8년만에 칼링가를 정복했다. 15만명이 추방되었고 10만명이 죽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다른 원인들로 인해) 죽었다. 칼링가가 정복된 후, 신의 사랑을 받는 왕은 다르마(dharma: 불법)에 대한 강한 성향, 다르마에 대한 사랑, 다르마에 대한 교육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신의 사랑을 받는 왕은 칼링가를 정복한 것에 대해 깊은 후회를 느낀다. -아소카, 바위 칙령 중 -
그 냉정한 아소카 왕도 칼링가의 참혹성 앞에서는 그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전쟁 직후 아소카는 전쟁의 참상을 반성하고 모든 이로 하여금 불교를 믿게 하였으며, 무력에 의한 정복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인 다르마(dharma: 불법)에 의한 정치를 이상으로 삼고 이를 실현하는데 힘썼다. 또한, 부모와 어른에 대한 순종, 살생을 삼가는 등의 윤리를 백성들에게 장려하고, 지방관이나 신설된 관리에게 명령하여 백성들이 윤리를 철저히 지키도록 하였다.
현재 인도의 국민이 대다수 믿고 있는 종교는 힌두교이다.
하지만, 인도 최초의 통일 왕조였던 마우리아 왕조는 불교였고, 이 불교를 장려한 왕이 지금도 인도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손꼽히고 있다.
"인도 최초 통일 왕조를 세운 위대한 왕인 건 맞잖아. 그리고 그가 사용한 법륜(돌사자상에도 새겨져 있다.)이 현재 인도 국기에도 딱 그려져 있잖아. 하하하"
"그런데, 좀 다른 의미에서 위대한 왕이라 생각해.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엥? 이건 또 뭔 말이래?'
나의 의아한 표정을 보던 마눌님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사람을 증오하거나 미워하는 일은 쉬운 일이고, 누구나 다 쉽게 그러하잖아. 하지만, 그런 마음을 버리고 성향을 바꾸어 자비와 용서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거든. 인도 최초의 통일 왕조를 세웠다기 보다는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고 성향을 바꾸어 자비를 베풀었던 그 면이 난 더 대단하다고 생각는데 안 그래?"
"어....그...그렇지!"
이거 아는 척 좀 하려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랄까? 아무튼 난 또 마눌님에게 한 가지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