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의 역사적 유례를 살펴보며......
명절이 되어 가족들이 모이면 통상적으로 정치 이야기를 하곤 한다.
특히, 대선과 총선이 얼마 남지 않는 지금 같은 이 시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분명하건, 서로 본인들이 원하는 정당이나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들이 항상 그렇듯 모두의 생각과 딱 맞아 떨어지지 않아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치 이야기를 할 때면 어느때 누군가 했던 말인지 당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나라 정치는 정당 정치야."라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이 말에 딱히 반박할 말이 없다는 것도 내가 어느정도 동의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선거에 있어 정당 보다는 후보자의 인물됨이 더욱 중요할 것이며, 어떠한 정당의 당론이 국민의 안녕과 이익에 앞서 우선시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헌데, 이런 분명한 사실을 알면서도 어느샌가 이점을 망각한 채 사람이 아닌 당을 보며 당 색깔에 맞추어 해당 인물을 평가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느끼곤 한다.
이와 같은 모습은 비단 나만의 모습이 아닐 것이며, 많은 사람들도 나와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 이와 같은 문제는 현 시점에만 존재했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역사적으로 정당의 출현과 대립의 구도만 논하자면 아주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당의 존재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정당 정치를 꽃피운 시기는 아마도 16세기 이후 조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6세기 조선은 훈구(勳舊)와의 피나는 싸움(4대사화: 무오,갑자,기묘,을사)에서 승리한 사림(士林)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그들이 생각해 온 성리학적 가치관을 정치에 반영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실상 사림 집권 이전의 조선은 성리학적 유학 보단 한당(漢唐) 유학이 강하게 반영된 사회였다. 한당 유학에서는 천인상응설(인간과 하늘이 교감한다.)에 따라 왕만이 하늘의 위임을 받아서 정치를 하고 책임도 하늘에만 진다는 사고로, 왕이 정치를 잘못 했을 경우 하늘에서 여러 가지 천재지변을 통해 왕에게 주의를 준다는 사상이다. 즉 정치적 주체는 왕이고, 신하는 왕을 보조해 주는 존재에 불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남송대 형성된 주자(1130년~1200년 본명 희, 자는 원회, 호는 회암)에 의한 성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보편적 이(理)를 지니고 있으며 황제(왕)와 사대부(관리)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일반 백성의 탁기(濁氣)에 비해 기가 청명(淸明)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전까지 왕을 보좌하는 정치적 역할을 했던 사대부(관리)가 이제는 보좌를 넘어 왕과 함께 정치를 주도해 나간다는 사명감과 정당성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아울러 사대부의 정치적 간섭은 나라의 정책 뿐만 아닌 왕에게 학문적 그리고 도덕적 소양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강하게 요구하였으며, 이런 요구로 이황은 성학십도 이이는 성학집요 등을 집필하여 왕에게 바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왕 답지 못한 왕을 끌어내리는 정변에 정당성을 심어주기도 한 것이다.
이제 사대부는 왕과 함께 정치적 공도를 이끌어가는 주역이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어디 모두 다 같겠는가? 서로 뜻있는 자들끼리 모여 당을 형성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은 어느샌가 백성을 위한 정치보다 자기 당을 위한 붕당의 변질을 가져왔다. 즉, 백성을 위한 참된 공도 정치 실현이 아닌 자기 당의 이익과 상대당를 위붕으로 간주하여 파멸을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송대의 학자인 범중언(989년~1052년)과 구양수(1007년~1072년)는 붕당에 대해 “사리를 탐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소인의 당 또는 위붕 이라 하고, 공도의 실현을 추구하는 자들을 군자의 당 또는 진붕”이라고 말하며, 군주는 붕당이 만들어지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위붕과 진붕을 가려 진붕이 우세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변질된 붕당정치는 결국 정치적 파행은 물론 그 피해의 여파를 고스란히 백성들이 물려 받아야 했고 백성들은 고혈과 눈물로써 생활해야만 했다.
이런 파행적 붕당 정치에 해결책을 제시한 대표적 인물로는 율곡 이이 선생님과 영조•정조 임금님의 탕평론이있다. 율곡 이이는 조제 보합론을 제시하였고, 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백성의 이익과 국가의 안녕을 위해 힘써 일할 사람을 당과 상관없이 등용하자는 것(혹은 그런 인물들로 새로운 당을 만드는 것)이다. 다음의 영조•정조 임금님의 탕평론이란 서경에서 나오는 말로 ‘임금의 정치가 한쪽을 편들지 않고 사심이 없으며 당을 이루지도 않는 상태’라는 뜻이다. 요는 훌륭한 인재를 당을 초월하여 선별하고, 나아가 각 당의 역할 또한 당의 이익을 앞세운 편협한 당론을 극복하고 국가의 안녕과 백성을 위한 공론에 뜻을 모으자는 것이다.
(율곡 이이)
즉, 앞선 분들의 공통적 생각은 각 당의 편협적 이익과 위선적인 공론보다는 사람의 인물됨과 백성을 생각하는 애민의 마음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상, 붕당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민주적 발전에 있어 나타나는 당연한 소산물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북한처럼 조선 노동당 하나라면 그야말로 독재이지 않는가!)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표면이 본질을 가리우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붕당의 존재 이유 당의 존립과 많고 적음의 유무가 아닌 국가와 백성의 안위이라는 것이며, 색깔론에 빠져 사람의 인물됨에 앞서 당을 먼저 바라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선 시대가 왕정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붕당을 이루어 정치를 해 나갔던 그 바탕과 명분이 백성을 위함이었거늘, 하물며 민본주의를 넘어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현 민주주의 시대에는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각 후보자를 내세우는 정당은 각 정당의 당리당약에 치우지지 말고, 국민을 위하는 정책을 제시하고 타 당과의 화합과 발전에 총력을 보이는 자세를 그리고 나라의 주인인 나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당의 색깔에 치우쳐 후보자와 정책을 바라보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소중한 주권을 사용하였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