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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면 우울증을 없애 주시나요?

종교 없는 사람의 기도하기 챌린지

by 기사

나는 종교가 없다. 신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종교가 없는 나지만 감사 기도를 하면 우울증이나 공포증 같은 부정적 감정들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기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처음 감사 기도에 관한 문장을 봤을 때는 상당히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감사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자신이 하루 동안 좋았던 일들, 감사드릴 수 있는 일들을 다시 복기한다는 뜻인데 앞서 억지로 행복을 찾았듯이 좋은 기억들을 의도적으로 다시 꺼내는 것은 긍정적 마음을 유지하는 것에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란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이고 따로 금액이 들거나 긴 시간이 드는 것도 아니니 저 정도의 짧은 노력으로 정신력을 회복시킬 수만 있다면 손해 볼 일은 전혀 없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내 첫 기도는 그렇게 시작됐다.


첫 감사 기도를 시작할 때 나는 기도를 상당히 얕보았다. ‘감사 기도 따위가 뭐가 어렵겠어? 그냥 감사 몇 번 하면 되는 거잖아?’라고 생각했지만 감사 기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평소 세상을 안 좋게 생각하는 나였기에 감사할 일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뭔가 좋은 일이 있는 날에야 그 일에 관해서 감사 기도를 드린다고 하지만 그저 힘들기만 했던 날에 ‘오늘 제가 뛰어내리지 않게 막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드릴 수는 없지 않은가. 현재의 나로선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이 너무 어려웠기에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감사 기도를 드리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블로그의 감사 기도를 보며 그들의 기도는 주로 자신이 살아 있음에 감사드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나처럼 특별히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닌 그저 오늘도 숨 쉬고 있음에, 굶지 않음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음에 감사를 드리는 거였다. 그 기도문들을 보고서야 감사는 특별한 일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분들은 좋으면 좋은 대로 힘들었다면 어떻게든 그걸 넘긴 오늘 하루에 대해서 감사를 드렸던 것이다.


그 마음을 따라 하려 했으나 머릿속으로 이해도, 마음속으로 공감도 가지 않았기에 그저 감사 기도가 몸과 정신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주된 목표로 삼아 기도드리기 시작했다. 감사를 드림으로서 몸에 나오는 긍정적 변화가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감사드리는 것 자체로는 본인에게 손해가 올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더 거리낌이 없었다. 분명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도 도저히 신께 감사를 드릴 것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나도 그러했기에 미세 먼지가 없을 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을 때, 공포증이나 불안증 등이 없었을 때, 하루 일과를 다 끝냈을 때 등등 정말 사소한 것부터 감사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 나는 매일 다섯 가지의 감사 기도를 드리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오늘도 자신이 매일 하는 성장(책 읽기, 공부하기, 글 쓰기, 운동하기)을 잘 끝낼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매일 고정)

2. 오늘도 날씨가 맑음에 감사드립니다. (미세 먼지 없는 날 고정)

3. 오늘도 정신병이 없었음에 감사드립니다. (별다른 우울증이나 공포증이 없었던 날 고정)

4. 매일 달라지는 기도

5. 오늘도 앞의 네 가지의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날을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매일 고정)


실제 내 삶에서 특별히 감사드릴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어찌 보면 모든 사람들의 삶에서 매일 특별하게 감사드릴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남들이 당연히 여기는 것에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다. 의도치 않게 저 훌륭한 사람들의 기도를 비슷하게나마 따라 하게 된 것이다. 오늘은 너무 힘든 일만 있었고 아무리 찾아봐도 추가로 감사드릴 내용이 없다면 '오늘은 너무 힘들었으니 내일은 좋은 하루 좀 주세요.' 같은 푸념의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남한테 말하면 슬픔이 반이 된다고 하던가? 오히려 종교가 없었기에 신을 너무 위대하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가족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기도를 하면서 얼마나 달라졌냐고 묻는다면 안 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은 수준이다. 매일 밤마다 그날 자신이 좋았던 일을 어찌 되었든 간에 억지로나마 복기는 하니 어두운 밤에 반딧불이 하나 날아다니는 정도의 행복은 얻는 것 같다. 그 작은 행복이 내 정신병들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하지만 흔히 다이어트할 때 밥 한 숟갈 덜어내듯 불안증 한 숟갈 덜어내는 정도는 해준다. 만약 정 기도라는 단어가 내키지 않는다면 자기 최면의 개념으로 해보기를 바란다. 작게는 최면으로부터 나온 행복이, 크게는 신의 자비가 당신과 함께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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