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버지의 컴퓨터가 계속 말썽을 일으킨다. 거의 10년 가까이 된 이 컴퓨터는 요즘 '자신을 제발 좀 놓아달라'며 계속 투쟁을 벌이기에 당근에서 새로운 컴퓨터를 하나 찾아보기로 했다. 찾다 보니 마침 괜찮은 매물이 있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판매자와 거래 장소와 시간 약속을 정했다.
거래는 일요일 오전이었다. 토요일만큼은 반드시 즐겨야 된다는 생각에 일요일 새벽까지 놀다가 4시간? 정도 겨우 자고 거래 장소에 나갔다. 5분 정도는 일찍 나갔는데 상대는 이미 와 있는 것이 아닌가? 꾸벅 인사를 하고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그 유명한 문장인 '당근이세요?'를 처음 사용했다. 몇 마디의 형식적인 대화를 나누고 물건을 팔러 나온 그 사람은 친절하게도 내 가방 안에 컴퓨터 넣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보도 위라서 컴퓨터가 정상 작동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최소한 컴퓨터 내부에 모든 부품이 제대로 있는지는 확인을 해야 됐기에 그 자리에서 양해를 구하고 컴퓨터 내부를 열어봤다. 근데 어라? 컴퓨터 내부를 확인해 보니 부품 몇 개가 없는 거 아닌가!?!? 컴퓨터에 대해서 아예 모르는 사람이 나갔다면 사기 먹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부품이 왜 없는지를 물어보니 상대는 자신이 부품 끼는 것을 깜빡했다는 황당한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그 자리에서 거래는 파투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당근 마켓 앱을 열어 상대를 비매너 유저로 신고했다.
신고를 하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이 사람도 단순한 실수를 했던 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조그마한 실수로 신고를 먹으면 기분이 얼마나 안 좋겠는가? 그런데 그때 이 사람이 아침에 내게 보내준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거래하기 하루 전 나는 판매자에게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었고, 그 사람은 거래 당일 아침에 컴퓨터가 정상 작동하고 있는 사진을 내게 보내줬었다. 사진을 받은 시간과 만난 시간의 차이는 2시간 정도밖에 안 될 텐데 그 사이에 부품을 잠깐 빼고 깜빡했다? 이건 아무리 봐도 고의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혹시라도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이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신고를 끝마쳤다.
사기꾼들 멈춰!!!
당근 마켓에서는 첫 거래였지만 불발로 끝났고 그 불발에서 두 가지의 꿀팁을 알아내게 되었다.
첫 번째로는 자신이 거주하는 곳은 어느 정도 숨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점이다. 역을 말할 때도 한 정거장 정도는 떨어진 역을 말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건장한 사내인 나도 사기 의심으로 인해 거래가 불발되면 이렇게나 찝찝한데 여성분들은 그 찝찝함이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거래할 때 역을 좀 다르게 말하면 이런 찝찝함을 많이 지워낼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로는 신용도(당근 마켓에서는 온도) 정도는 확인하는 것이 좋다는 점이다. 내가 오늘 거래하려고 했던 상대는 +도 -도 없는 기본 온도를 가지고 계셨다. -는 아니었기에 거래를 하려 했지만 자칫하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사실 거래하려는 품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가면 좋은데 모든 품목들에 대해 다 알 수도 없고 길거리에서는 정상 작동 확인이 불가능한 제품들도 많기에 온도를 확인하는 방법이 더 보편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 사기 의심을 당한 분의 입장에서도 뭔가 억울할 수도 있다. '사진은 예전에 찍어 놨던 거고 당연히 정상 작동될 거라는 생각에 옛날 사진을 그냥 보냈다.'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래 전에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 왔으면 판매자의 입장에서도 한 번 더 확인해주는 것이 맞다. 최소한 남이 속을 수 있을만한 사진은 안 보내는 것이 맞다. 거래가 불발 나고 집에 올 때는 걸어왔기에 내 피 같은 돈은 교통비 1,250원을 날리는 것에서 멈출 수 있었다. 다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1,250원으로 글의 주제가 하나 생겼으니 괜찮은 편이 아닐까..? 싶은 것도 사실이긴 하다. 한 번의 대중 교통비 값으로 글의 주제 하나를 살 수 있다면 아마... 많은 분들이 몇 번 이용할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지웠지만 아마 글의 주제가 너무 부족해지면 다시 한번 정도는 깔지 않을까 싶다.
+ 제 글이 메인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ㅡㅡ)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