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봤을 문장이다. 문제가 있다면 나는 저 신경질 나는 문장을 이미 7번이나 봤다는 것. 처음 떨어졌을 때는 너무 대충 올렸다며 웃어넘겼고 두 번째 떨어졌을 때부터는 아직 내 글이 부족한가? 하며 글을 고쳤다. 다섯 번 떨어졌을 때는 너무 짜증이 난 나머지 브런치 앱 평가를 열고 과감하게 1점을 투척했었고 일곱 번째 떨어졌을 때는 신청란에 욕이라도 적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로 글의 실력이 많이 늘기도 했고 내가 그리는 미래에는 브런치라는 발판이 필요했기에 이를 악물고 새로운 느낌의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팔 수를 도전했을 때는 큰 변화가 있었다. 내 세상에 브런치를 넣는 것이 아닌 브런치라는 세상에 나의 글을 넣었다. 브런치의 글들을 보면 상당히 담백하다.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보면 무덤덤하게 독백하듯이 쓴 글이라는 느낌을 받았기에 내 글의 문체 또한 그런 식으로 바꾸었다. 신청을 한 다음 날, 업무 도중 틈틈이 새로고침으로 작가 신청 페이지를 갱신하는 나였기에 이번에도 별생각 없이 글을 갱신했다. 근데 이번에는 평소와는 다르게 '작가로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가 아닌 메인 창이 뜨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란 나머지 업무 시간임에도 자신의 메일 창을 들어가 결과를 확인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저 메일을 보고 속으로 충분히 기뻐한 뒤 1점 줬던 평가를 다시 5점으로 올렸다.
사실 실력으로 통과했다는 생각은 지금도 들지 않는다. 떨어질 때마다 그날 바로 재신청을 했던 나였기에 브런치팀 입장에서는 꽤나 귀찮았을 것이다. 아마 교수님이 다시는 보기 싫은 학생한테 D-를 준 느낌으로 합격시켜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오히려 D-가 좋았다. A+의 글들만 보며 식상했던 독자들에게 새로운 글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며 예전 자신이 올렸던 작가 신청서를 다시 봤는데 떨어질만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님이 궁금해요
처음 '작가님이 궁금해요'에는 되게 간단하면서도 구구절절하게 적었다.
'평소 우울증과 공포증을 앓고 있었으나 그것을 극복한 사람. 자신이 어떻게 성장을 하고 마음을 다스렸는지에 대해 적어 나갈 것이다.' 내가 브런치 팀이었다면 '이 당돌한 돌+I는 뭐지?'라는 생각을 하며 불합격을 줬을 것 같다. 다섯 번쯤 됐을 때는 다른 작가들의 자기소개를 보며 글을 작성했다. 그들의 자기소개는 운치도 있고 감성도 있었기에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 하려고 했었다.
'행복한 사람들보다는 반 보 뒤지지만 우울한 사람보다는 한 보 앞선 사람
자신의 길을 쭉 걸어 나가는 사람보다는 한 보 뒤지지만 정체되어 있는 사람보다는 반 보 앞선 사람
약 1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매일 글을 써 오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는 성장에 관한 글을, 목요일에는 위로에 관한 글을 써 내려갈 작가'
나름 되게 감정적이게 잘 썼다고 생각하며 저 글들을 당당하게 적어 냈었다. 저 정도면 자기 자신이 어떤 주제를 얼마나 자주 쓸지가 잘 나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이 부족했는지, 소개가 부족했는지는 몰라도 저 문장으로는 합격하지 못했다. 저 소개마저 떨어지고 나서는 '자신만의 특색이 없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마지막 합격의 글에는 자신만의 특징을 최대한 담으려고 노력했다.
'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세상의 말과는 달리 자기 자신을 세 번이나 바꾼 덜 사람.
공포증으로 한 번, 습관으로 한 번, 우울증으로 또 한 번. 총 세 번의 변태 과정을 거쳐 인간쓰레기에서 사람 언저리까지 성장했다. '
이 문장들은 합격했을 때 써놓았던 문장들의 일부인데 여기서는 세 가지를 강조하고 싶었다. '사람은 한 번 바뀌기도 어려운데 이 사람은 뭔데 세 번이나 바뀌었을까?'와 '이 사람은 뭔데 자신을 '덜 사람'이라고 표현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려고 했고 공포증, 습관, 우울증을 말함으로써 내가 한두 번 글을 쓰고 떠날 것이 아니라 '합격만 시켜준다면 오랜 시간 글을 적어 나가겠습니다!'를 간접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지금 와서 고백해보면 '떨어지면 또 바꿔서 올리지 뭐' 이 정도의 안일한 상태로 올렸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브런치에 어떤 글을 발행하고 싶으신가요?
다른 작가들의 합격 수기에서 이 항목에는 목차를 적어 넣으면 좋다는 글을 본 이후, 앞으로 자신이 어떤 글을 쓸지 아주 간략한 소개와 함께 목차를 써 내려갔다.
'자기 개발서에서 흔하게 얘기하는 사람 만나기, 행복한 생각 하기, 습관 만들기 등등을 필자가 직접 경험해보고 더 알기 쉽게 풀어쓸 예정. 예를 들면 어디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나면 좋은지, 행복한 일이 없을 때 행복을 어디서 찾는지, 자신의 습관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되는지 등등이 있음' 이 글은 내가 사수할 때 쓴 글이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팔 수 할만했다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팔수 때는 자신이 어떤 글을 써 나갈지를 간략하게 적었고 그 밑으로 앞으로 진행될 예시들을 써넣었다.
' '나'는 무엇 때문에 공포증과 우울증을 얻었고, 무엇을 하며 그것들을 극복해 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자신의 경험담을 시간의 순서대로 차분하게 적어나갈 예정.'
자신의 글이 많이 성장했다고 느끼는 부분이 바로 이 목차 부분인데,
덕질로 힐링하기 -> 겨울이라는 내 마음에 꽃이 내릴 수 있도록.. (덕질 하기)
분노로 성장하기 -> 카투사에 들어갈 수 있었던 비결, 게임 못 하기
봉사 하기 -> 아니, 그니까 애인 구하러 간 게 아니라니까요(9개월 봉사 후일담)
억지로 행복 찾기 -> 행복은 억지로 찾는 거야 (ENTJ는 우울증을 이렇게 박살 낸다.)
제목들이 저렇게 바뀌었다. 제목부터 눈에 띄게 바뀌었다는 것이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계속 떨어지며 글뿐만 아니라 제목 같은 디테일에도 더 신경 쓰는 습관이 만들어졌다. 떨어지는 것 자체는 무척이나 짜증 났지만 순기능이 없다고는 말하기 힘든 것이 이런 부분인 것 같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가장 중요한 글이다.
입사지원서에 자기소개 파트가 있긴 하지만 지원자의 기본 스펙이 좋지 않다면 자기 개발서는 읽히지 않고 버려진다. 브런치에서 스펙은 글이다. 글이 좋지 않다면 다른 칸들을 아무리 잘 채워도 절대 합격할 수 없다.
나의 맨 처음 글은 ~~ 해라, ~~ 하면 된다. 식의 가르치는 글이었다. 네 번째 도전에는 ~~ 하세요, ~~ 하면 좋습니다.로 어투를 많이 순화시키기도 했었다. 말투를 여러 번 바꿨음에도 자꾸 떨어졌기에 브런치의 글들을 읽으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7번이나 떨어지고 난 후, 8번째 재도전할 때는 다른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옆에 띄어 놓고 그들의 글을 보면서 분위기를 베껴 나갔다. 그들의 글을 읽다 보니 브런치에서 인기 있는 글들은 매우 담백하게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별다른 양념 없이 독백하듯 차분하게 자신의 글을 써 내려가는 느낌이다. 합격하고 싶었기에 자신의 글을 브런치에 맞게 바꾸었다. 최대한 담백하고 무덤덤하게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글이 너무나도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떨어진다면 단순히 브런치 팀의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다. 면접관을 바꿀 수는 없으니 우리가 바뀔 수밖에 없다. 그저 한 발 양보한다는 생각으로 브런치 팀의 입맛에 딱 맞는 글로 합격한 뒤에 자신만의 스타일로 글을 써 내려가는 것도 필시 좋은 생각일 것이다. 팔 수에는 다른 작가의 분위기를 베낀 글 딱 하나만 올렸었는데 통과한 걸 보면 꼭 세 개의 글을 올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활동 중인 SNS나 홈페이지가 없다면
SNS나 홈페이지를 굳이 올려달라는 이유는 이 사람이 얼마나 브런치의 활동을 오래 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다른 페이지들에서 오랜 활동 내역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브런치에서도 오래 연재하는 것을 기대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그 홈페이지에 있는 글의 내용을 브런치로 복사 붙여 넣기만 해도 연재는 끊기지 않으니 말이다. 나에게는 글을 써 내려가던 SNS나 홈페이지가 없었다. 다만 스터디그램을 진행하던 인스타 하나가 있었을 뿐이다.
매일매일 올리는 스터디그램의 예시
내 스터디그램을 보면 작문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다만 3월부터 매일 올렸기에 '나의 성실함을 봐줘!!'라는 생각으로 활동 중인 SNS나 홈페이지 칸에는 꼭 자신의 스터디그램 주소를 넣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만약을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하나 새로 만들어서 브런치에 썼던 글들을 그대로 블로그에 옮겨 적었다. 약 백 번의 도전도 각오했었기에 그 정도면 블로그에도 글이 꽤 쌓여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이 분야에서는 자신의 성실함을 조금이라도 어필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적어내면서 대비용으로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운용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뽑기 게임을 하다 보면 '뽑을 때까지 돈을 넣기 때문에 못 뽑을 수가 없다'라는 글을 볼 때가 있다.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할 때 딱 저런 생각이었다. '떨어지면 합격할 때까지 신청할 것이기에 합격 못 할 수가 없다.' 길게 보았기에 떨어져도 짜증은 났을지언정 포기하지는 않았고 글의 부족한 점들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만약 작가 신청이 떨어지고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당신의 글이 계속 떨어진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글은 전혀 틀리지 않았으니까. 다만 브런치 팀의 입맛에 맞지 않았을 뿐이다. 당신이 좋은 작가라는 것은 혹은 좋은 작가가 될 거라는 것은 내가 알고, 당신이 알고, 미래의 팬들이 안다. 다만, 이번 한 번만 당신을 위해서가 아닌 당신의 글을 기다리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글이라는 완벽한 요리에 간을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 싶다. 나를 포함한 당신의 글을 사랑할 미래의 팬들이 당신의 글을 읽으며 기뻐하고, 위로받으며, 행복해질 수 있는 그날을 하루라도 빨리 선물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