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력 강하다고 정신병 안 걸리는 거 아니더라
길었던 비행기 시간이 지나고 한국 땅에 발을 디뎠을 때는 더 이상 공포증을 느낄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비행기만 타지 않으면 비행기 공포증으로 고통받을 일은 영원히 없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비행기는 내 안의 공포증을 깨워주는 촉매제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한 번 공포증을 느낀 이후 술을 마시거나,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게 되면 비행기 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포증이 올라왔다.
애써 '나는 괜찮을 거야. 난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니까.' 따위의 말로 자신을 격려하며 정신과를 외면했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온 몸을 덜덜 떨며 정신 병원을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상담은 별 게 없었다. 그저 어떤 이유에서 공포증이 생겼는지와 일을 다니고 있는지, 증세가 얼마나 심한지 정도의 얘기만 오갔던 것 같다. 유럽 놀러 가다가 12시간 비행기에서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공포증에 걸렸다는 얘기를 했을 때 의사의 눈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을 보았다. 별 다른 트라우마 없이 갑자기 생긴 만큼 치료하기가 조금 난해 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조차도 말하면서 어이가 없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싶었겠지. 어쨌든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약을 처방받아 그날부터 꾸준히 먹기 시작했다.
정신과 약을 먹다 보니 감정이 무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계속 둔해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 둔해졌다고 하더라도 공포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보다는 나았기에 지속적으로 약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참 유감스럽게도 내가 먹은 정신과 약은 먹자마자 효과가 발휘되는 종류는 아니었나 보다. 약 2 ~ 3주가 지나서야 공포에 대해서 좀 무뎌졌기에 약을 먹으면서도 처음 몇 주간은 정말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렇게나 좋아하던 밤이 무서워진 것이었다. 시간이 늦어 하늘이 어두워지면 '내가 여기서 공포 증상이 다시 도지면 병원을 갈 수 없겠구나!' 같은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고 또다시 공포증에 휩싸였다. 밤하늘이 어둡다는 당연한 이유 하나 만으로 벌벌 떨게 되었던 것이다. 그럴 때 내가 느끼는 공포는 마치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을 번지 점프 위에 올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을 출구가 없는 번지 점프대 위에 올려놓으면 그들은 위에서 벌벌 떨기만 할 거라 생각했지만 공포증을 느낀 이후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나는 공포가 극심해졌을 때 뛰어 내려서라도 이 공포를 끝내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심지어 가끔은 내가 고층에 사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된 적도 있었다. 공포증이 극심해졌을 때 고층은 바로 뛰어내리면 되기 때문이다. 저층에서 고층에 올라오는 그 짧은 시간만큼의 시간은 고통을 덜 받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아직은 공포증보다는 자살로 인해 가는 사후 세계가 조금은 더 무서웠기에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것을 가까스로 막아가며 겨우 살 수 있었다.
벌써 이때 갔던 정신과에서 신세를 진 지 4년이 넘었다. 초반 6개월 정도는 약이 떨어질 때마다 자주 갔었던 것 같고 다음 1년 6개월은 불안증이 너무 심하게 올 때만 병원에 다시 가고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올라왔을 때는 버텼다. 약에 의존하는 것도 좋지 않았지만 내 자존감만큼이나 낮은 통장에서 돈을 더 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2020년 중반쯤 됐을 때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한 날을 제외하고는 병원을 가지도, 약을 찾지도 않게 되었다. 공포증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기에 공포증이 올 때면 그동안 쌓여 왔던 노하우를 가지고 무난하게 흘릴 수 있었다. 처음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좀 치료받다가 정신과를 아예 안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는데 벌써 4년이나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아주 얇게 유지할지언정 아예 끊지는 못 할 것 같아 유감이다. 다만 공포증이 내게 줬던 수많은 긍정적인 부분들을 지금은 알고 있기에 옛날만큼 공포가 두렵지 않다. 참 유감이지만 이 녀석과 미운 정이라도 들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