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공부를 시작한다. 영어를 예로 들자면 애인이 영어권 사람이라서 공부를 시작했을 수도 있고, 한국이 싫다며 외국으로 나갈 준비 중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는 영어 성적이 필요해 공부를 시작했을 수도 있다. 그 많은 이유 중 나는 말싸움에 이기기 위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승자는 패자에게 각종 조롱을 내뱉는다. 실력이 좋았으면 몰랐겠지만 거의 모든 게임에서 실력이 부족한 나는 게임을 할 때마다 각종 조롱에 시달려야만 했다. 당시의 나는 조롱을 받을 때마다 참을 수 없었고 승자의 조롱은 각종 욕설을 포함한 말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다만 패자 입장에서 말싸움을 이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었다. 아무리 잘 반박하려고 해도 '너 나한테 졌잖아~'라는 한 문장이면 말싸움은 나의 패배로 끝이 났다. 게임을 할 때마다 패배가 약속된 말싸움 때문에 게임 시간이 길어지자 난 한 가지 큰 결심을 했다. 어차피 게임에서 못 이기는 거 말싸움이라도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같은 한국어 조롱으로는 시간만 길어질 뿐이니 한국어 조롱에 영어 조롱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문장을 보며 '애초에 말싸움을 안 하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할 독자분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한국 남자에게 있어 '너 게임 못 하잖아'는 거의 부모님 욕과 비슷하기에 저 문장을 듣고 그냥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애초에 저 말을 듣고 쉽게 넘길 수 있는 현자라면 말싸움으로 몇 시간씩 소비하지도 않는다.) 게임하는 사람들 중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체 비중에서 영어 잘하는 비중이 많아봐야 얼마나 많겠냐는 생각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왕 게임을 질 거면 게임도 지고 말싸움도 지는 멍청이가 아니라 게임은 지되 말싸움은 이기는 멍청이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결정 뒤 기적처럼 영어 공부만 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게임에서 지고 조롱을 받을 때면 항상 영어 공부를 했다. 아주 가끔 문법 책을 보기도 했지만 내 영어 공부는 주로 한국 자막이 있는 미국 드라마와 게임으로 이루어졌다. 미국 드라마와 게임에서 나오는 조롱 문장들을 노트에 따로 필기하며 문장을 외워 나갔다. 멍청한 이유로 시작된 영어 문장 공부는 다행히 대성공이었다. 그들의 조롱을 받을 때마다 나는 노트에 필기한 영어 조롱으로 답하였고 그들은 더 이상 말대꾸를 하지 못 했다. 그렇게 몇 개월 혹은 몇 년간의 공부가 지난 후 나는 한국어로 조롱을 받으면 조롱 영어가 자동으로 나오는 훌륭한 멍청이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군대를 가야 되는 나이가 되었다. 대부분의 남성이 그렇듯 나 또한 군대 가기가 싫었기에 군대를 빠질 방법을 이리저리 찾던 중이었다. 그때 마침 한 친구가 나에게 귀띔을 해줬다.
"야 카투사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가면 개꿀이래. 매주 나온다더라"
그 얘기에 혹한 나는 카투사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검색했다. 최저 컷을 넘기면 운에 의존한다지만 최저 컷도 없는 상태에서는 운이 아무리 좋아도 카투사에 들어가지 못했기에 그나마 가장 쉬워 보이는 토익을 잡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평소 미국 드라마를 많이 봐서 그런지 별 공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점수는 생각보다 높게 나왔다. 너무 옛날이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500점대 후반이나 600점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수능 당시 내 영어 등급이 4등급이었던 것을 기억하면 상당히 높게 나온 점수다. 시험 점수는 lc가 가장 높았고 그 뒤로 독해와 문법이 따라왔었다. 문법 공부 없이 조롱의 문장들을 통째로 외워 나갔기에 문법 점수가 낮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런 문장들을 외워 나갔기에 문법 점수만 낮을 수 있었다. 그렇게 토익 780점 커트라인에서 785점으로 커트라인을 넘을 수 있었고 딱 저 턱걸이 점수로 카투사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때는 내 낮은 게임 실력이 참 짜증 났지만 지금에 와서는 어느 정도 감사하고 있다. 내 게임 실력이 처참했기에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발컨이라서 카투사에 들어가다니.. 세상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