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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사 Dec 15. 2021

행복은 억지로 찾는 거야

ENTJ는 우울증을 이렇게 박살 낸다.

 28년 하고도 6개월. 난 도저히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한 세월이다. 너무 오랜 시간 자신을 비관해서 일까? 정말 흔하디 흔한 병인 우울증에 걸려버렸다. 죽으면 편해지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죽음이라는 그 자체가 너무나도 무서워 죽지 못했다. 그렇게 갈팡질팡 하다가 오랜 고민 끝에 결국 살기로 결정했다. 살기로 결정한 이유는 별 게 없다. 그저 죽음이라는 게 살아가는 것보다 조금 더 무서웠을 뿐이다. 




 살기로 결정한 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닌 날 괴롭히는 우울증의 기세를 약하게 하기 위해 행복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시도했던 것은 자신을 위로해주는 글과 책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F가 아닌 T의 성향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감정의 위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 권이 아닌 몇 권의 책을 읽어 나갔지만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생각은 항상 똑같은 문장으로 귀결되었다.

'아니, 그래서 뭐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 건데?'


공감 말고 방법을 알려 달라고!!!

공감으로 치료하기를 실패한 내가 두 번째로 시도했던 것은 인터넷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들을 검색하는 것이었다. 많은 검색 끝에 여러 방법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거기서 나오는 모든 방법들을 직접 실천 하기 시작했다. 기도, 명상, 기부, 봉사, 독서, 운동, 관점 바꾸기, 영양제 먹기, 일기, 상담, 햇빛 쬐기, 행복한 생각 하기 등등 닥치는 대로 다 했다. 감정을 위로해주는 글보다는 이쪽이 내게 더 잘 맞았고 약 1년 6개월 간의 사투 끝에 우울증을 우리 안에 가둬놓을 수 있었다. 




 위의 방법들을 실천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행복한 생각 하기'였다. 행복할 일이 있어야 행복한 생각을 할 거 아닌가? 행복이 전혀 없었던 나였기에 억지로라도 행복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들을 구체화하여 실천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것은 없다. 그저 사소한 것들을 행복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미세 먼지가 없는 날, 맛있는 것을 먹었던 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날 등 평소라면 '괜찮네'정도 생각하고 끝낼 것들을 '이것이야 말로 행복!'이라고 억지로 생각하며 그 순간을 즐겼다. 미세 먼지가 없는 날은 맑은 공기를 즐기기 위해 산책을 했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면 재미있는 예능 등을 같이 봄으로써 그 시간을 더욱 즐겁게 만들었으며,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날이면 내일이면 기억도 나지 않을 잡담을 길게 떨곤 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을 할 때면 ‘이 정도면 행복하지’라고 자기 자신을 세뇌시키며 근육을 이완시키듯 뇌를 천천히 이완시켰다. 뇌를 이완시킨다는 문장에서 공감이 잘 안 가시는 사람들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뱉으면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면 비슷하다. 약간 멍 때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랑 비슷하다.


 뇌를 이완시키고 나면 마음속에서 아주 작게 느껴지는 행복들을 구체적으로 사물화 하기 시작했다. 사과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붉은색과 둥근 원형, 새콤달콤한 과즙 등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면 비타민A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약간 막막하지 않은가? 우리의 행복이 그렇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행복’이란 사과처럼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 비타민A처럼 막막하게 떠오를 것이다. 그래서는 행복의 감정을 더 오래 지속시키거나 필요할 때 떠올릴 수 없다. 사과를 강하게 생각하면 사과 맛이 살짝 느껴지는 것처럼 행복도 강하게 생각하면 몸속에서 자극이 일어날 수 있도록 행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 행복이란 탁구공 만한 크기에 36.5도의 온도를 가지고, 빛도 나며, 심지어 말랑거리기 까지 하는 원형 구체이다. 작고 따뜻하면서도 빛이 나는 찹쌀떡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런 모양인데 36.5도의 온도를 가지고 빛이 납니다.
안에 딸기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아무래도 행복이라는 특성상 따뜻하거나, 부드럽거나, 말랑거리는 느낌으로 만들면 더 좋다. 눅눅하고 까끌거리는 것은 행복과는 잘 안 어울리지 않는가? 행복이 느껴질 때면 사물화 한 행복을 몸 안에서 보관한다는 느낌으로 그 행복이 더 오래갈 수 있도록 상상하고 생각하며 행복의 여운을 오래 지속시켰다. 사실 위에 적어 놓은 사소한 행복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저런 경험이 많았을 텐데 그저 ‘날씨 좋네’ 혹은 ‘음식이네’ 정도로만 생각하고 그냥 넘기지 않았던가? 어떻게 보면 행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지만 나에게 있어 행복이란 억지로 찾고 구체적으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굳이 이런 생각까지 하며 행복을 긁어모아야 되나..’라고 생각했지만 조금 익숙해지고 나서는 숨 쉬듯 자연스레 자잘한 행복을 모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독자 분들도 지금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은 어떤가 싶다. 지금 당신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 날씨는 좋은가? 아니면 정말 감사하게도 이 글이 재미있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오늘 재미있는 일이 있었거나 내일 기대되는 일이 있는가? 주변에 맛있는 것이 있거나, 연락할 친구가 있거나, 푹신한 잠자리가 있거나, 귀여운 영상 등을 볼 수 있는 환경인가? 다 너무나도 사소하지만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이다. 사소한 것들에서 억지로 행복을 찾고 느끼는 것. 삶에는 이런 행복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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