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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선 Oct 13. 2023

이재명, 조국… 빙산의 일각이다

문화일보 오피니언 <시평> 칼럼(2023-10-12)

* 이 글의 필자가 제시한 제목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입니다.


과거라면 당장 사퇴했을 비위

개딸 팬덤으로 정치 좌지우지

자숙하긴커녕 양심 세력 행세


곳곳에 이런 비정상의 뉴노멀

공직자들이 각성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향한 弔鐘이 될 것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의 제목은 17세기 영국 성공회 수사이자 시인이었던 존 던의 기도 시에서 차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원제를 제대로 번역하면 ‘그 종은 누구의 죽음을 알리려고 울리나?’ 정도가 돼야 한다.


헤밍웨이가 인용한 던의 시 일부분은 ‘…나 자신이 이 인류의 한 부분이니, 친구의 죽음은 곧 나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라.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이 울리는지 알아보려 하지 말라, 그것은 너 자신을 위해서 울리는 것이므로(Therefore, send not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 과거 정상이나 상식이었던 많은 것이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 되고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나 ‘뉴노멀’이라는 신조어는 이런 대전환의 시대를 묘사하는 용어가 됐다. 특히, 이런 일은 우리나라 정치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같으면 정치인이었다가도 당장 사퇴했을 윤리적·법적 하자를 가진 이재명 씨 같은 사람이 ‘개딸’이라는 팬덤을 몰고 다니고, 국회를 장악한 거대 야당 대표로 파벌을 형성해서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 법대 교수였던 조국 씨 일가의 비정상적인 삶의 양태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가족의 비상식적·비정상적인 삶으로 인해 법의 심판을 이미 받고 소추 중인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들의 삶과 행동을 비판하고, 자숙(自肅)은커녕 정의의 투사인 듯이 나선다. 자칭 ‘양심 세력’이라는 범운동권 좌파의 간판을 무색하게 하는 행동들은 그냥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국민으로서는 정말 ‘염통(심장)에 털이 난 짓’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과연 이런 상황은 이재명과 조국, 그리고 운동권 좌파 세력에만 국한된 것일까?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권과 행정부를 구성하거나 이를 위해 고위 공직에 추천되는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이런 행태와 삶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것은 필자만이 가지는 착시나 편견인가?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교육감 등 선출직은 물론 정부 고위직 공무원을 하면서 이런 행태를 보인 사람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 사람뿐일까? 대학교수, 변호사, 언론인, 고위 전문 관리직을 하면서 조국 교수 일가와 같은 삶을 산 사람은 조 교수뿐일까? ‘운동권 좌파’ 같은 이른바 ‘내로남불’ 행태와 끼리끼리 나눠먹기 행태가 그들에게만 국한된 것일까? 행정부·국회·법원의 고위 공직자들은 다수결과 법치를 빙자해서 맡겨진 권력을 남용하거나 악용해서 제 논에 물 대는 데 급급해하지 않고 있을까?


우리는 국방·치안·사법·교육·복지·행정·산업에서 과연 우리의 믿음에 부합하는 일을 하는 믿을 만한 공직자들을 두고 있을까? 그들이 우리가 맡긴 권력과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우리의 안위와 재산 보호를 위해서, 그리고 나라의 미래를 위하는 일을 하고 있을까? 이것이 오늘날 평범한 국민이 가진 큰 걱정이자 우려임을 그들은 알고나 있을까?


국회의원 이재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당사자는 물론 민주당까지도 마치 그가 무죄가 확정된 것처럼 행동하는 일이나,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되고 가족 전체가 사법적 소추를 받는 조국 교수와 자녀가 마치 민주화 이전 시절 탄압에 저항하는 투사인 양 나서는 것은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어도 걱정스러운 일이다. 민주화 투쟁을 했다면서 자신들의 공로를 내세워 정치적 지대를 나눠 먹은 세력이 북한의 인권 실상을 무시하고 탈북민들을 조롱하거나 협박하면서 자신들의 교조적 전체주의 양태를 국민에게 강변하는 일도 우려스럽다.


그러나 존 던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이들을 비난하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이들의 행태를 반복한다면 설사 그들과 다른 이름과 다른 정당과 다른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더라도 진정한 지도력을 발휘해서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기는 힘들 것이므로. 그들에게 먼저 울린 조종은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울린 조종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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