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닷컴 <세상 돌아보기> 이주선 칼럼(2025.2.18)
경제학은 사안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서 살을 발라내고 뼈대만 남기는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그 대표적 사례가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먼저 경제학은 사람을 직업·연령·성별·인종·국적 등으로 구분하는 방식을 다 버리고 모든 사람을 소비자와 공급자로 분류한다.
수요-공급의 법칙은 이 소비자와 공급자의 행동 양상을 명료하게 정리한 것이다. 다른 조건이 일정할 때 소비자는 특정 물건의 가격이 오르면 덜 사고, 내리면 더 사며, 공급자는 이와 반대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또 수요-공급의 법칙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자연과학의 원리들처럼 어느 사회나 거래공간에서도 반드시 성립한다. 경제학이 보이지 않거나 복잡한 다른 요인들보다 가격과 사고파는 물량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이유는 상호 이익이 되는 시장 거래의 당사자들이 어떤 인센티브 체계 아래서 거래하는지를 가장 명백히 알 수 있게 해주어서다.
기술은 진화한다. 그러나 경제학은 진화하지 않는다. 진화하지 않고 이미 확정된 원리들을 적용해서 기술 등 다른 사회현상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진정한 ‘경제학의 아름다움(the beauty of economics)’ 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경제학의 본질을 설명한 이유는 오늘날 기술진보의 선봉에 있는 인공지능(AI)의 본질에 대한 경제분석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경제학자들 중 AI 연구자들은 지난 10년 사이에 거의 셀 수없이 많아졌다. 심지어 작년 노벨 경제학상이 AI가 경제성장·무역·기업·일과 일자리·분배 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경제학자들에게 돌아갔을 정도다.
그렇다면 AI는 경제학자들의 눈으로 보면 무엇일까? 이 분야의 태두라 불릴 만한 캐나다의 저명한 AI 경제·경영학자들인 토론토 대학의 아제이 아그라왈(Ajai Agrawal)·조슈아 간스(Joshua Gans)·아비 골드파브(Avi Goldfarb)가 공동으로 2022년 출간한 책 ‘권력과 예측: 인공지능의 와해 경제학(Power and Prediction: The Disruptive Economics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경제학적 관점으로 본 AI의 본질과 진화 예상 경로에 대한 분석, 그리고 AI의 경제적 이익 극대화 방법들이 담겨 있다.
‘권력과 예측’의 표지.
아마 독자들께서는 이렇게 변죽만 울리는 제 이야기에 “그래! 그래서 AI가 도대체 뭐란 말야?”라고 채근하시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경제학적으로 AI는 ‘예측기계(prediction machine)’라는 것이다. AI를 살을 다 발라내고 그 뼈대를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예측은 인류가 지상에 출현한 이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가장 중시한 기술이다. 그래서 인류는 원시시대부터 미래를 보는 사람을 우대하여 이들을 ‘무당(shaman)’으로 제도화했다. 생존을 위해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전혀 알 수 없는 불확실성(uncertainty)을 다소라도 해소하고, 생존을 위한 절체절명의 제도인 ‘사회’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 이는 당연했을 것이다. 그래서 무당이라는 예측자(predictor)는 사회적 의사결정의 핵심적 지위를 오랫동안 차지해 왔으며, 궁극적으로 오늘날도 고등 종교라는 제도로까지 진화하여 유지되고 있다.
이외에도 인간의 학문과 과학은 지금까지 신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미지의 사안들의 본질을 이해하여 예측하는 데로 눈부시게 발전해 왔다. 과학적 방법론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알려지지 않은 미지수들(unknown unknowns)’인 불확실성의 아주 조그만 파편들의 양태를 ‘알려진 미지수들(known unknowns)’인 위험(risk)으로 변환하여 위험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모색하는 방법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과학과 학문의 진전은 결국 AI가 창조되는 데까지 과학과 기술의 진화를 추동해 왔다.
그러면 AI가 예측기계인 것은 왜 중요한가? 예측은 사람이 지금까지 가진 의사결정(decision-making)의 핵심요소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은 예측과 판단(judgement)으로 구성되는데, 지금까지 사람은 예측과 판단을 모두 담당해서 의사결정을 해왔다. 그런데 AI라는 사람을 월등히 추월하는 역량을 가진 예측기계의 등장은 사람의 의사결정 영역에서 예측과 판단을 분리시키는(decoupling)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이는 단순히 AI가 데이터를 학습해서 번역과 통역에 사용되고 다양한 사물과 사람을 식별하는 차원을 넘어 궁극적으로 인간의 역할을 변경할 것임을 시사한다.
예컨대 지금까지 기업의 관리자들은 예측과 판단을 둘 다 수행해서 의사결정을 담당해왔다. 그런데 예측을 사람보다 AI가 더 잘하면 기존 관리자들과는 다르게 AI가 제공한 예측을 더 잘 판단할 수 있는 관리자들이 중요하다. 이는 기존 관리자들의 권력(power)과 역할을 변경할 뿐만 아니라 기업조직의 심각한 재편을 불가피하게 할 것이다. 산업혁명 이래 과학혁명과 기술혁신이 기존 시스템과 조직, 그리고 일자리와 일에 어떤 와해(disruption)를 초래하고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과 체제로 진화해 나갔는지 보면 잘 알 수 있다. 전기와 인터넷은 이를 볼 수 있는 전형적사례들이다.
그런데 이런 AI의 와해적 성격과 본질은 결국 기존 기업이나 조직에 속한 관리자들이나 노동자들이 AI의 사용에 대대적으로 저항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기존 기업이 AI 도입으로 그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은 성공이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이 예측기계를 제대로 이용하려면 전 시스템을 그 사용에 최적화되게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게 최상일 것이다. 오늘날 AI를 시스템 차원에서 최적 운용하는 기업들은 애초 스타트업 단계부터 이를 시스템으로 채택한 기업들인 것이 이런 추론의 증거다.
걱정스러운 것은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이 채택한 AI 전략들은 이런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너무나 크다는 점이다. 대부분 기업의 AI 채택 관련 기존 전략은 손에 닿는 열매를 먼저 따먹거나, ‘첨단기술 채택 기업’이라는 이미지 확보가 초점인 것으로 보이고, 예측기계의 최적 이용을 통한 이익 극대화 전략 수립은 논외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 기업들이 AI를 시스템에 통합하려면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하므로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AI 기술 자체의 진화도 아직 초기 단계여서 진화의 방향조차 가늠이 쉽지 않고 그 속도도 따라잡기 어렵다.
그러나 AI는 예측기계라는 경제학의 본질적 정의는 이 예측기계가 어떻게 진화하든 기업 조직 또는 시스템이 그 이용을 최적화하는 데로 나아가는 근본적인 ‘AI 변환(AI Transformation)’ 전략과 시스템 디자인이 오늘날 경쟁에서 핵심 승부수임을 알려준다. 이 혁신의 선도자가 결국 미래 경제력(economic power)의 장악자가 될 것이고, 이 혁신을 이루지 못한 기업들이 와해의 급물살에 쓸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