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떼를 넘어서 파라곤을 향하여 <1>(2017-1-21)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에서 그리고 여러 로마의 성당들에서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 시대의 족적들을 돌아봤습니다. 허물어져 가는 폐허지만 2000년 이상 된 이 장소들을 돌아보고 또 그 시대의 모습들을 상상했습니다. 이 여행의 설계자이자 안내자이신 연세대학교 신학과 김상근 교수님의 해설까지 있어서 여행은 처음부터 더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콜로세움의 하단에 지금은 몰골을 다 드러낸 여러 칸 방과 회랑들을 보면서는 그 당시 검투를 위해 끌려와 죽음을 당했을 전쟁포로들의 운명이 생각났습니다. 황제와 귀족들의 관람석에는 사자와 맹수 무리들이 사슴과 노루떼를 보고 포효하는 표정이 생각났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그 돔을 가득채운 소위 로마시민이란 자들이 검투사의 피를 보며 소리를 질러대며 기뻐하던 죽음과 저주의 모습을 봤습니다.
로마가 왜 망했을까? 김상근 교수님의 대답은 여러 사람들을 포용하고 개방적이었던 로마가 그 강점을 어느 순간부터 가로막기 시작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합리적인 설명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보다 더 근원에 있는 멸망의 원인은 생명과 축복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죽음과 저주를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 니다. 전쟁은 상대적일 수 있으나 전쟁이 끝나고 나서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에는 심각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멸망하게 하는 심각한 민심의 분열과 시민의식의 약화를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죠.
로마의 검투가 종료된 것은 제가 알기로는 황제 등 권력자들의 개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로마시민들이 그런 위대한 마음을 먹어서가 아니라, 한 사막에 있던 수도사가 콜로세움에 들어 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호소하다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후에, 검투를 그만두게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군중이 아니라, 촛불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올바른 희생이 이런 사악한 일을 멈추게 한 겁니다. 생명과 축복을 택한다는 것은 이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포로 로마노는 제가 꼭 보고 싶어하던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카이사르, 부루투스, 안토니우스와 키케로 등 로마 공화정의 거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서 였습니다. 그 거대한 지역에서 어떻게 소리가 들려서 군중들이 말을 들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카이사르가 마지막으로 부르투스에게 23번 칼에 찔려 죽여져서 화장된 터를 보면서 인간은 역사로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정치인과 권력을 가진 사람, 모든 부자, 모든 지식있는 사람은 다, 더 큰 권력, 더 큰 부를 이룰 사업의 독점, 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 더 많은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추구하면 할수록 이런 노력은 자신을 결국은 암살당한 카이사르와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갑니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 지도자들의 모습도 이와 하나도 다르지 않으며, 우리 역사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했던 생명과 축복 그리고 죽음과 저주의 2분법을 생각하게 됩니다.
포로 로마노에서, 서로가 서로 다른 모습을 포용하던 공화정 시대 로마는, 황제의 통치로 획일화의 길을 가지 않던 그 시기에, 그리스인보다 탁월하지 못하면서도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그런데 제국이 되어 오만하게 군림하는 동안 포용이 아니라 스스로의 특권을 위해서 피정복자들을 압제하고, 그들의 소유를 강징하는 폭압을 강화했을 때, 결국 종말을 맞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나 물어봅니다. 박(근혜)대통령과 그 주변의 사람들은 생명과 축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탄핵의 마당에서 지금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나? 촛불을 든 사람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있나? 촛불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고 나시면 그 옷을 나누어 가지려고 서로 싸움하는 로마병사들이 이기심을 번득거리며 서로에게 악하고 독한 말을 정의라고 포장하며 뿜어내고 있지는 않는가? 언필칭 정론이라고 핏대를 높이는 기자들이나 유명 앵커는 정론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인기와 사심 그리고 자신이 당한 곤경에 대한 보복을 위해서, 아니면 한 줌 안되는 이데올로기를 위해서 이런 일들을 하고 있나?
이런 사실들에 대한 보는 눈을 가진 척하는 나 또한 눈을 감고, 앞에서 돌을 던지고 침을 뱉으며 스데반을 죽이라고 목청을 높여 떼창을 해대던 자들이 맡긴 옷을 지키는, 제대로 보는 눈이 없는 개심 이전 바울과 같은가?
무수한 생각들이 포로 로마노를 지나는 시간 머리 속에 가득 들어왔습니다. 그런데도 로마의 하늘은 너무나 코발트빛으로 파랗고, 그런데도 수천년의 세월을 지내고 서 있던 건축물, 조각 그리고 회화들은 '영원이 무엇인지'를 웅변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과거 로마 시대에 황제는 높고 조각가와 화가는 그들이 부리는 '밑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간데가 없고 그들이 만들어낸 예술이 남아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인생보다 예술이 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예술도 폐허가 되거나 빛바래는 것을 보면 하나님만이 영원하시고 그가 제시하시는 가치만이 영원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내일은 바티칸으로 갑니다. 아마 거기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할 여러가지 것들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