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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직 Jan 24. 2024

'더 빨리, 더 많이'라는 오해

스케이트보드를 먼저 만들자

"실행력은 더 많은 일을 더 빨리 하는 것이다"


실행력에 대한 오해는 이런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실행력을 생각할 때 ‘생산성’, ‘자동화’와 같은 키워드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손이 빠르다’, ‘빠릿하다’가 실행력을 칭찬하는 말이기도 하고요. 물론 일을 빨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같은 일을 남들보다 빨리 할 수 있다면 남들은 가지지 못하는 여러 가능성이 생기니까요. 가장 큰 가능성은 시도 횟수입니다. 큰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여러번 시도하는 것이 필요한데, 남들 보다 일을 빨리 끝낼 수 있다면 같은 시간에 남들보다 더 많은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 더 많은 시도는 더 많은 성장과 성과의 기회를 의미합니다. 남들보다 일을 빨리 끝내고 다른 사람들이 더 잘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이런 사람들이 얻게 되는 좋은 기회입니다. 주위 동료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면서 영향력이 만들어 지고 리더가 탄생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문제 해결사에게 필요한 실행력은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는 단순해요. 그들이 풀고자 하는 문제들은 대부분 크고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문제 해결사들이 도전하는 어려운 문제들은 손이 느려 시간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풀지 못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방법이 막막하고, 방법을 알더라도 실행하기가 너무 어려워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수능을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수능에는 쉬운 문제도 있고, 어려운 문제도 있습니다. 고득점자들의 변별력은 어려운 문제를 얼마나 풀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능은 쉬운 문제를 얼마나 많이 빨리 푸느냐가 아니라 누가 어려운 문제를 많이 푸느냐의 대결입니다. 물론 쉬운 문제를 빨리 끝낼 수 있는 ‘빠른 손과 빠릿함’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거에요. 남들보다 쉬운 문제를 빨리 풀어낼 수 있다면 어려운 문제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쉬운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빠른 손이 있다고 항상 어려운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학 문제를 한번 생각해 볼까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방법은 내가 알고 있는 다양한 공식과 원리를 조합하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잘 조합하고 활용하여 문제를 풀어 낼 수 있는 효율적이고 단순한 길을 찾아내야 해요. 특히 수능은 더욱 그렇습니다. 출제 범위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출제 범위에 포함되는 수학의 이론과 원리를 알고 있으면 이들을 조합해서 문제를 풀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내가 아는 것을 조합해 해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에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복잡하게 꼬여있는 단순한 원리와 공식의 조합들을 풀어 나가야 합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이런 경험이 다들 있으실 거에요. 끝내 풀지 못한 어려운 수학 문제의 답이 궁금해 답안지를 보면 생각보다 풀이법이 단순합니다. 대부분 내가 아는 원리와 공식이 적용 되었는데, 그 어려운 문제를 풀고 있을때는 이상하게 내가 아는 것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아요.  


문제 해결사에게 필요한 실행력도 이와 비슷합니다. 많은 일을 빨리 해낼 수 있다면 어려운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 만으로는 어려운 문제를 풀기 힘듭니다. 그래서 문제 해결사에게는 ‘답안지’가 필요해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원리와 공식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활용해야 그 문제를 풀 수 있을지, 나만의 답안지를 먼저 만들어 보는 것이죠. 답안지만 손에 있다면 문제 해결사가 풀지 못할 문제는 없습니다. 답안지를 보고 수학 문제를 풀면 그렇게 쉬운 것처럼요. 


그래서 문제 해결사에게 필요한 실행력은 결과물을 구체화 하고 그 그것에 다다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루트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내가 풀어야 하는 문제의 답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죠. 길을 떠나기 전에 도착지까지의 지도를 그리거나, 레고를 조립할 때 조립 설명서가 먼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다들 이런 경험도 있으실거에요. 아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네비게이션없이 출발했는데 중간에 길을 헤맨다던가, 설명서를 대충 보고 일단 조립을 시작 했는데 레고를 완성하지 못했던 경험이요. 요즘은 네비게이션없이 운전대에 앉는 것이 상상이 잘 되지 않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에게 지도가 있다면 훨씬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조립 설명서를 보면서 레고를 조립하면 중간에 만든 부분을 다시 해체하거나, 다 만들고 나서 원했던 결과물이 아니라서 허탈해 할 일도 없을 거에요.


문제는 일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조립 설명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 해결사의 실행력에서 얼마나 빨리 조립 설명서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쉽게 알수 있듯 손이 빠르다고 이 조립 설명서를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건 아니에요. 그럼 문제 해결사들은 조립 설명서를 어떻게 만들까요?




리버스 엔지니어링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내 손에 없는 조립 설명서를 만드는 일은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가능하기도 합니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가끔 뉴스에서 들을 수 있는 단어인데요. 복제품 기업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한 기업이 혁신적인 기업의 신제품 스마트폰을 분해하여 제조 방법을 알아냈을 때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했다고 말합니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은 ‘역공학’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완성된 장치나 시스템의 구조를 역순으로 분해하여 이것의 창작 원리를 추론해 내는 기술을 말합니다. 


이 때 ‘카피’, ‘복제’ 등의 단어가 함께 떠올라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실제로 일부 국가에서는 특정 상품이나 시스템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금지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다양한 산업에서 역공학은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세상에 없던 제품이 출시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리버스 엔지니어링하며 내부 구조를 이해하고 제조 방식을 추론해 내기도 합니다. 테슬라를 보면 잘 알 수 있어요. 테슬라는 만들어진지 10년이 넘은 전기차 생산 기업이지만, 여전히 테슬라가 새로운 자동차를 출시 할때마다 많은 전문가와 유튜버들이 이를 분해하여 연구 하기도 합니다. 테슬라 자동차의 혁신을 비밀을 파헤치는 것이죠. 어떤 부품들이 사용 되었는지, 그 부품들이 기존 자동차의 부품들과 어떻게 다르고, 어떤 구조로 부품들을 연결 했는지 등을 자세히 살펴 보며 그 비밀을 찾습니다. 


윤리적인 문제를 빼고 생각해 보면 혁신적인 결과물을 분해하고 재설계하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은 참 스마트한 방법입니다. 이런 기술이 있다고 세계 최초의 일을 해 낼수는 없지만, 이 기술을 잘 활용하면 누군가 해낸 일을 빠르게 복제하여 따라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잘 활용하면 내 손에 없는 조립 설명서를 그려 낼 수 있습니다. 


문제 해결사가 분해와 재설계를 통해 실행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이미 그 문제를 푼 사람의 방법을 참고하는 것입니다. 이를 분해하고 재설계하여 나만의 조립 설명서를 만드는 거죠. 조립 설명서를 만들때 내가 참고한 방법과 달라야 하는 부분이 보인다면 체크해 두었다가 조립 설명서에서 그 부분만 바꾸고 개선하면 됩니다. 그럼 누군가가 어렵게 얻은 실행력의 비법을 쉽게 배우고 해킹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방법을 분해하고 재설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타인의 결과물 그 자체를 그대로 따라 만들면 그건 정말 모방품이나 복제품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방법을 배울 수 있는 대상은 많습니다. 가깝게는 회사 안에도 있을 거에요. 내가 풀고자 하는 문제를 먼저 풀었던 사람의 해결법을 참고하면 됩니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는지, 그 과정에서 장애물은 무엇이 있었고, 그 장애물을 어떻게 해결 했는지를 참고하는 것이죠. 


만약 내가 기획한 프로젝트가 4~5개의 부서가 힘을 모아야 하는 큰 과업이라면, 먼저 그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동료를 찾아 그의 방법을 살펴보며 어떻게 해 냈는지를 연구하면 됩니다. 만약 내가 수행해야 하는 업무가 다수의 클라이언트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복잡한 일이라면, 올해의 영업왕을 수상한 선배가 어떤 방식으로 영업 관리를 하고 있는지 배우는 것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템플릿’이나 ‘매뉴얼’을 좋아합니다. 그 일을 먼저 수행했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템플릿이나 매뉴얼은 그 일의 전반적인 과정을 분해하여 이해하기 가장 좋은 참고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역기획으로 연구할 수 있는 대상은 무궁무진합니다. 꼭 먼저 그 문제를 해결한 사람만 분해의 대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회사 안에 같은 문제에 도전 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 또한 도움이 됩니다. 그러면 그의 실행과 접근 방식을 분해하여 어떤 지점이 문제였는지 알아내고, 이에 대한 개선점을 찾음으로써 나만의 조립 설명서를 만들 수 있습니다. 회사 밖에서도 분해의 대상을 찾을 수 있어요. 꼭 우리 회사의 동료가 아니더라도 회사 밖에 나와 비슷한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방법을 찾아 분해하고 재설계하며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면 됩니다. 


누군가는 분해하고 재설계하는 과정은 ‘실행’이 아니므로 이런 것을 ‘실행력’이라고 말하기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힘든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난이도 높은 실행을 해야 합니다. 난이도 높은 실행은 그저 빨리한다고 해 낼 수 있는게 아니에요. 앞에서 말한 수능 문제 처럼요. 힘들고 복잡한 실행일수록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실행력이 필요한데, 이런 실행력의 절반은 ‘당장 그일을 시작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일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해 낼 수 있는지 명확히 하는 것이라 믿어요. “나에게 나무를 베기위해 1시간의 시간이 있다면 그 중 40분은 도끼날을 갈겠다”고 말한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 처럼요.  


누군가는 “그거 너무 당연한거 아냐?”라고 반문 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그 일을 어떻게 할지, 어떻게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할지 곰곰이 생각을 하고 시작하니까요. 저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당연한 것을 깊게 고민해 보지 않고 일단 눈앞에 보이는 일부터 빨리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조립 설명서 없이 내 앞에 놓여있는 레고 블럭들을 무턱대고 일단 무엇이든 만들어 보는 사람들이죠. 이런 사람들은 여전히 실행력의 의미를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로 오해하고 있을 거에요.


이런 사람들이 조립 설명서 없이도 일단 조립을 시작하는 이유는 그것이 쉽고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길을 찾는 것처럼, 조립 설명서를 먼저 만드는 일은 어렵거든요. 일단 눈앞에 보이는 레고 블럭들로 과거에 만들어 봤거나 익숙한 모양으로 일단 만들어 보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모양이나 만들어 내야만 하는 모양이 아니더라도요. 하지만 이렇게 레고를 조립하면 분명 중간에 여러번 조립한 레고를 분해해야 할거에요. 그래서 설명서 없이 일단 조립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에 본인이 했던 익숙하고 쉬운 방식’을 빨리 반복하는 것에서 부족한 실행력에 대한 위안을 찾습니다. 




스케이트를 먼저 만들자


"만약 분해하여 재설계 할 대상이 없다면?"


그런데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회사 안이나 밖에서 분해하고 재설계하며 배움을 얻을 수 있는 대상이 없다면, 여기서부터가 진짜 실행력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지도나 조립 설명서를 보며 길을 찾거나 조립을 해 나가면 너무나 편하겠지만 문제 해결사는 많은 경우 아무런 레퍼런스가 없는 영역에서 빈 종이에 직접 지도를 그려가며 출발해야 해요. 이건 분명 어렵고 난해한 일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앞에서 실행력의 본질은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구체화 하고 이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루트를 찾고 그대로 수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일은 두 가지로 단계로 구성되어 있어요. 첫  번째는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구체화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를 분해하고 재설계하여 가장 효율적인 루트를 찾는 것이에요. 우리는 이 두 단계의 일을 순차적으로 함으로써 어려운 실행을 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눈앞에 보이는 일을 먼저 하느라 중요한 본질을 놓칩니다. 


자동차를 만든다고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자동차를 만들라니, 생각만 해도 어려운 실행 과제네요. 무엇부터 시작 해야 할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눈에 보이는대로 자동차를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먼저 자동차를 떠올려 보겠죠. 내가 알고 있는 자동차는 바퀴가 있고, 자체의 프레임이 있고, 엔진이 있고, 시트가 있고, 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성품들이 조립되어 자동차가 만들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아, 그럼 자동차 본체 프레임먼저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자동차 프레임을 만들어 보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공정도 복잡하고 많은 기술자도 필요할 것입니다. 큰 투자도 필요할 것이고요. 눈에 먼저 보인다는 이유로 실행이 어려운 일을 붙잡고 큰 투자를 하고 있으니 시간은 지연되고 돈은 많이 들고 실행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실행력이 좋은 문제 해결사들은 스케이트보드를 먼저 만듭니다. 스케이트보드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요?


이유는 간단해요. 문제 해결사들의 눈에는 ‘자동차를 만들라’는 목표 뒤에 숨은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결과물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편리한 이동 수단을 만든다’는 것이죠.


앞서 말했듯 좋은 실행력의 첫 번째 단계는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구체화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결과물을 구체화 할 때, 결과물의 가장 겉에 보이는 How에 집착하는 함정에 빠집니다. 우리가 조립 설명서를 만들기 위해 구체화 하고 분해해야 하는 것은 결과물의 How가 아니라 Why와 What인데 말이죠.


미국의 유명한 작가 사이먼 시넥은 ‘골든서클’의 개념을 통해 우리가 하는 일을 크기가 다른 세 개의 동심원 구조로 설명합니다. 모든 일의 구조를 설명할 수 있는 이 동심원의 가장 바깥에는 How가 있어요. 그 일을 잘 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한 것입니다. 가장 바깥에 있는 것이라서 누구나 쉽게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수단은 눈에 잘 보이니까요. How의 원 한칸 안에는 ‘What’이라는 조금 더 작은 원이 있습니다. 이건 그 일을 잘 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것입니다. 가장 안쪽 원에는 ‘Why’라는 이름의 원이 있습니다. 가장 안쪽의 이 원은 그 일의 본질적인 ‘목적’을 말합니다. 동심원의 구조에서처럼 가장 안쪽에 있는 목적이라는 원이 그 일에서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수단과 행위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How : 수단

What : 행위

Why : 목적


자동차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볼게요. 자동차를 구성하고 있는 ‘수단’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잘 관찰하면 모두가 알 수 있거든요. 잘 굴러가는 바퀴, 연비가 좋은 엔진, 튼튼한 자체, 편안한 시트 등이 자동차에 필요한 좋은 수단들입니다. 자동차의 What에 해당하는 ‘행위’는 이것들의 조합으로 비교적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바로 동력으로 움직이는 이동 수단입니다. 그럼 자동차의 Why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자동차가 필요한 이유는 편리하고 안전한 이동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동심원의 가장 안쪽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자동차의 ‘목적’ 원이에요.


골든서클에서 대부분의 일은 Why가 What을, What이 How를 정당화 합니다. 본질적인 목적이 핵심적인 행위를, 핵심적인 행위가 필수적인 수단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죠. 자동차의 본질은 자동차의 ‘수단’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동심원의 구조 상 그 반대에 가깝죠. 자동차라는 수단이 필요한 이유는 자동차의 목적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목적을 구체화하고 이를 위한 핵심적인 행위를 구상하면 좋은 수단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됩니다. 명료한 목적이 핵심적인 행위를, 핵심적인 행위가 필요한 수단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동심원의 구조에서 가장 마지막에 있는 수단들이 바로 우리가 실행해야 하는 구체적인 대상이 되구요.


문제 해결사들은 자동차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에서, 직관적으로 그 일의 본질적인 목적을 먼저 생각합니다. 가장 겉에 있어 명확하게 보이는 자동차의 수단만 보고 당장 실행에 착수하는 것이 아니라요. 자동차의 본질적인 목적과 행위가 각각 편리한 이동과 이를 위한 간편한 이동 수단이라는 것을 먼저 분명하게 하고, 이를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수단들을 떠올리고 실행해 봅니다.


그래서 문제 해결사들은 스케이트보드를 먼저 만듭니다. 


완벽한 ‘이동 수단’을 위해 엔진과 바퀴, 튼튼한 프레임과 같은 것들이 언젠가는 필요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실행하기 힘든 것들이니까요. 하지만 스케이트보드는 달라요. 작은 나무 합판과 쓸만한 네 개의 바퀴만 있으면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스케이트보드가 편리한 이동을 위해 완벽한 수단은 아니지만 그 목적과 행위에 부합하는 최소한의 수단은 되겠네요. 그렇게 스케이트보드를 먼저 만들어요. 최소한의 요건으로 ‘편리한 이동’과 ‘간편한 이동수단’이라는 목적과 행위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사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렇게 스케이트를 만들고 나면 본인의 ‘1차 결과물’을 잘 관찰해 봅니다. 스케이트가 약간의 편리함은 주지만 운전이 힘들어 속도를 내기는 힘들어요. 그럼 스케이트보드에 손잡이 모양의 핸들을 달아 봅니다. 그렇게 퀵보드가 만들어져요. 퀵보드를 타다보니 운전이 쉬워져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되었는데, 막상 먼 거리를 서서 이동하니 불편합니다. 그럼 앉을 수 있는 안장을 달아 자전거를 만들어 보는거죠. 자전거는 편하지만 계속 발로 페달을 밟아야 합니다. 이때가 되면 과감히 리소스를 투입하는 집중과 투자를 통해 엔진을 만들어 오토바이를 완성합니다. 본질적인 목적과 행위에 대한 초점을 잃지 않으면서 조금씩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면 언젠가 자동차가 만들어 질거에요. 


이것이 문제 해결사들이 어려운 실행을 통해 문제를 풀고 결과물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입니다. 한번에 엄청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해 엄두가 나지 않는 자동차를 보며 발만 동동 구르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죠. 


우리는 이미 이런 접근 방법을 오래전부터 들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는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와 같은 속담이 가장 많이 들어 본 말들이에요. 조금 더 세련된 표현들도 있어요. ‘Done is better than perfect’와 같은 말들입니다. 모두 문제 해결사의 실행력을 잘 묘사한 표현이에요. 


어려운 일에 도전할 때 같이 일했던 동료들을 보면, 크고 완벽한 결과물을 막연히 상상하며 어떻게 시작할지 감이 오지 않아 영원히 ‘준비’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면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결과물의 핵심적인 목적과 행위를 눈앞에 보이듯 구체화 하고 이를 단계 별로 달성할 수 있는 실행의 명확한 로드맵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들은 크고 어려운 과제에 참고할 답안지나 조립 설명서가 없는 상황에서도, 당장 눈 앞에 보이는 How가 아니라 Why와 What에 집중하여 나만의 조립 설명서를 먼저 만듭니다. 비록 첫 술에 배부르지 않더라도 천리길을 위한 첫 걸음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어려운 실행을 해내는 문제 해결사들입니다. 


이런 실행의 접근법을 ‘린 어프로치’라고 합니다. ‘린 어프로치’는 ‘린 스타트업’과 함께 최근 스타트업의 실행력을 묘사하는 말인데요. 실리콘밸리에서 ‘불가능할 것이다’라는 어려운 일들을 대부분 해내며 급속 성장한 에어비앤비나 우버와 같은 스타트업이 추구하는 업무 방식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스케이트보드를 MVP라고 불러요. MVP는 Minimum Viable Product의 약자인데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의 본질적인 목적과 행위를 충족할 수 있는 최소 요건의 수단을 모은 ‘초안’ 정도의 의미입니다. 당장 해낼 수 없는 거창하고 복잡한 자동차가 아니라, 본질에 초점을 맞추고 방법을 찾아보면 어떻게든 만들어 볼 수 있는 스케이트보드 처럼요.



문제 해결사들은 MVP를 생각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떻게 모든 것을 다 해내지’가 아니라 ‘무엇을 안 해도 해 낼 수 있을까’에요. 눈치 채셨겠지만 수단을 더하는 질문보다 수단을 덜어내는 질문이 본질에 집중해 우선순위를 추려내 실행하기에 더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에는 위험이 따릅니다. 편리한 이동 수단을 원하는 누군가에게 스케이트보드는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아닐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만들어지지 않는 자동차를 상상만하다 결국 터덜터덜 걸어가는 것보다, 한번에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일단 길을 출발하는 것이 결국 도착지에 더 빨리 도착한다는 것을요. 스케이트를 타고 가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해 퀵보드와 자전거를 만들어 내면서 점점 더 안전하고 빨리 이동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문제 해결사는 어디서 위험을 감수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으니까요. 


이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본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동심원 안에 있는 핵심적인 목적과 필요한 행위를 생각하며 우리가 가진 것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해요. 훌륭한 문제 해결사들은 어려운 실행을 앞에 두고 우리가 가진 불완전한 수단으로 로드맵을 만들고, 작은 위험을 감수할 방법을 찾습니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 직접 작게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발빠른 실행을 통해 1차 결과물의 문제점과 개선안을 찾아 내요. 스케이트보드에서 퀵보드로 만들 방법을 찾아 냅니다. 


문제 해결사들의 ‘일단 부딪혀 보는 것 같은 모습’에 손에 잡히는대로 무턱대고 일을 하는 사람들과 혼동하면 안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동심원을 깊이 뜯어보지 않고 How에 집착하는 함정에 빠지거든요. 동심원의 바깥만 보고 무턱대고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이 함정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그것이 쉽기 때문입니다. 내게 주어진 일의 동심원 가장 안까지 들어가 본질을 정의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수단들을 찾아 위험을 감수할 로드맵을 그리는 일은 어렵거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일단 눈에 보이는 수단을 관찰해 일을 시작하고, 끝내 결과물을 만들지 못한 채 일을 끝내는 것이 쉽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사는 무턱대고 시작하는 사람들과는 달라요. 그들은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나아가기 위해 동심원 깊이 뛰어들어 나만의 조립 설명서를 먼저 만드는 사람들이니까요. 


문제 해결사들이 이런 실행력을 보이면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문제 해결사들의 방식에 반대하는 동료들도 많아요. 반대하는 이들이 문제 해결사를 붙잡으려는 이유도 명확해요. 동심원의 바깥에 집착하는 그들의 눈에는 문제 해결사의 한 걸음의 천리길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케이트보드는 그저 부족한 허점 투성이로 보일거에요. 


어디서나 완벽함을 추구하는 이런 사람들은 문제 해결사의 첫 걸음을 보며 결국 실패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피드백을 경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 해결사들은 이런 반대에 너무 신경 쓰지 않기를 바래요. 결국 문제 해결사의 첫 걸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결론은 ‘실패할 바에는 이예 시도 자체를 하지 말자’ 혹은 ‘완벽한 수단이 가능해 지는 순간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자’인 경우가 많거든요. 모두가 쉽게 알 수 있듯 이런 결론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저 그들이 가는 길과 문제 해결사가 가는 길이 다른 것이죠. 


그래서 저는 문제 해결사들을 응원합니다. 오늘도 반대를 무릅쓰고 시도하려는 문제 해결사들의 작은 ‘스케이트보드’에 응원을 보냅니다. 


더 깊은 이야기는 인스타그램 @zseo_hj, 링크드인 @서현직으로 DM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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