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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직 Feb 25. 2024

지나고 나서야 확실해 지는 의미

거창한 이유나 의미가 없어도 성장할 수 있는 이유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저는 아직도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한참을 생각합니다. 아마 질문을 한 사람들은 저에게 커리어에 대한 멋지고 원대한 비전이나 신념 같은 것을 기대했던 것이겠죠. 하지만 저에게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성장을 이끌었던 것은, 멋지지 않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것을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약간의 모험심과 치열함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처음부터 이유와 의미를 모두 알고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해 보기 전에 그 일의 의미와 이유를 명확히 알기란 힘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유와 의미는 배워나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것을 그려놓고 시작하려고 하기보다, 길을 걸으면서 자주 뒤를 돌아보는 편입니다. 조금이라도 걸으면서 알게 된 이유와 의미로 다음 걸을 방향을 정하면서요. 





커리어라는 길에 옳고 그름은 없어 누군가의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저는 원대한 목적과 멋진 이유를 가지고 커리어를 시작하고, 삶의 목적과 커리어의 방향을 아름답게 조화시킨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럽습니다. 커리어를 시작할 때 가졌던 명확한 이유와 목적을 차근차근 달성해 성공에 이른 사람들도 참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저는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어쩌다 들어선 이 길을 그저 열심히 걸었습니다. 그 당시 명확한 목적이나 이유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졸업 이후의 세계가 궁금했던 저에게 그저 ‘출발’하는 것 자체가 목표였습니다. ‘도착‘과 ’목적지’를 생각할 정도의 여유는 없었으니까요.


처음에는 신념이나 목표는 차치하고서라도 분명한 이유나 계획조차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걷기 시작한 이 길이 어떤 목적지로 연결되어 있을지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저 물 흐르듯이 지금이 되었어요. 도미노가 오차 없이 순서대로 넘어지듯 모든 걸음이 맞아떨어져 매끄럽게 흘러 왔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그 과정에서 잘못된 결정도 많았고, 후회스러운 이직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른 채 ‘일단 해보자’는 일들도 많았고요. 그중 예상치 못하게 잘 된 일들도 가끔 있었지만, 그중 몇몇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냥 물 흐르듯 걸었습니다. 그저 바로 눈앞에 보이는 딱 한 치 앞의 길만 보면서요.


앞을 내다보기 힘든 길이었지만 10년 넘게 걷다 보니 사람들이 제가 지나온 길을 보며 의미를 궁금해했습니다. 보잘것없는 커리어지만 외국계 기업과 스타트업을 넘나든 것에, 제조업부터 엔터테인먼트까지 다양한 도메인을 경험한 것에 원대한 목표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듯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아도 처음에는 거창한 이유나 목표는 없었습니다. 그저 지금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도전하는 모험심과, 거기서 좋은 성과를 내고 싶은 경쟁심과 치열함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이제야 했던 일들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된 것들이에요. 직접 해 보기 전까지는 그 의미를 잘 알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경험이 쌓이고 몰랐던 의미를 알게 되니, 스스로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대단할 것 없는 커리어지만, 다양한 회사에서 보람차게 일했고 나름의 성장을 맛봤고 작가로서 활동도 시작했습니다. 이 모두 시작하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입니다. 지금도 저는 커리어를 시작할 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회사에서, 지금까지 해 보지 않은 낯선 일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 또한 전부 처음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것들이에요.


종종 성공한 사람들이 본인을 성공으로 이끈 창대한 비전과 이유를 멋지게 설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분들도 분명 처음부터 모든 의미와 이유를 오차 없이 그려놓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어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무언가를 해 보기 전에 그 일의 의미와 이유를 명확히 알기란 힘들기 때문입니다. 막상 해 보니 생각했던 이유와 다르거나, 원하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삶에서 강한 의미를 갖게 되는 일들도 있습니다. 더 가까운 사례로는 기대했지만 실망한 여행지, 우연히 먹었는데 소울 푸드가 된 음식, 남들이 다 한다길래 따라 했다가 푹 빠져버린 새로운 취미가 있을 거예요. 이 모두 불확실함으로 가득한 삶과 경험이 주는 묘미입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가지는 크고 창대한 비전이 환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박하고 평범한 이유로 일을 하고 있어도 괜찮아요. 지금 하는 일의 깊은 이유와 의미를 모르고 있어도 괜찮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완수하고 성장하겠다는 마음이면 충분하거든요. 그런 마음으로 일단 경험하고 나면 처음보다 조금 더 명확해진 이유와 의미를 알게 될 거예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원대한 목표와 이유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어떤 일을 해 보기 전에는 이유나 의미를 상상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큰 꿈을 가지고 시작한 일인데 기대와 달라 실망하는 경우도 허다해요. 반대로 억지로 했는데 큰 뜻을 가지게 되는 일들도 있을 겁니다. 


목적과 이유 없이 지금의 일을 하고 있어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도 말하고 싶어요. 그런 것이 없어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목적이 없고 이유를 모른다고 멋진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삶의 의미는 역사 속 세계적인 철학자들도 답을 찾지 못한 난제이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의 멋진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요.


나의 목표나 신념이 너무 소박해 남들과 비교되어 실망하는 사람들에게도 말하고 싶어요. 전혀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원대한 꿈을 꿀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각자 원하는 여행지가 다르듯, 우리는 모두 다른 마음으로 일을 합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조금 더 잘하고, 조금 더 가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그것으로 내가 더 보람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를 이끄는 이유와 의미는 처음부터 알고 있는 아니라, 직접 해 나면서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흐릿했던 이유와 의미들을 조금씩 알아가게 될 거예요. 그렇게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눈앞의 의미가 또렷해져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 올 거예요. 하지만 이 모두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입니다. 


저는 사회 초년생들이 소박한 이유와 의미라도 지금의 생각대로 길을 걷고, 조금 걷고 난 뒤 가끔씩 뒤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짧은 길이라도 그 길을 걸으면서 알게 된 의미와 이유로 지금의 자리에서 다음 걸어갈 방향을 잘 정하면 되니까요. 커리어도 이것의 반복입니다. 조금 헤매더라도 상관없어요. 우리가 걷는 길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언제든 뒤돌아 다시 뛸 수 있는 마라톤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처음인 이 길에서 한 번도 뒤돌아 가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만 곧바로 뛰어가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누군가는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이유와 의미도 모르는 일을 무턱대고 하냐면서요.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부족한 사회 초년생들에게 ‘일단 하면서 생각하라’는 말은 폭력과 같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요? 타인이 의미를 정해주는 것이 더 큰 폭력이므로, 내가 일을 하는 의미와 이유는 직접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생각과 사유만으로 하지 않은 일의 이유와 의미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직접 탐험하고 시도하면서 의미를 알아가는 사람들이니까요. 


물론 각자의 타고남이 다르고 주어진 것이 달라 처음부터 할 수 있는 경험이나 꿈꿀 수 있는 이유가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패를 가지고 최선의 수를 만드는 것입니다. 포커는 여러 장의 카드를 받아 승패를 겨룹니다. 몇 장은 게임이 시작될 때 주어지지만, 대부분의 카드들은 게임을 하면서 받게 돼요. 처음 받아 든 카드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승패가 나뉠 카드 중 우리는 이제 한 두 장 정도를 받았을 뿐이니까요. 게임을 하면서 앞으로 우리가 받아내게 될 카드가 훨씬 더 많이 남았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합니다. 원대한 이유나 의미를 몰라도 우리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딱 눈앞에 보이는 한 치 앞의 길에 집중해서 아주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도전하는 모험심이면 충분합니다. 그 일을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시도해서 성장하겠다는 마음이면 충분해요. 아직 이유를 찾지 못한 당신은 분명 멋진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직접 걸으면서 이유를 찾아 나갈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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