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팽귄>을 읽고
얼마 전 백패커 CSO 임승현님께 <세컨드 팽귄>을 선물받아 읽었습니다. 책은 스타트업에서 일 잘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저도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아래 세 가지 내용에 크게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가지 내용에 저의 생각과 경험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잘못과 책임은 구분 되어야 한다
질문은 프레이밍 과정이다
우리가 푸는 문제는 퍼즐이 아니라 미스터리이다
팀장에게 잘못이 없더라도 해결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이는 팀장 뿐만 아니라 팀원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열정이 없어 속도가 안나거나 꼼꼼하지 못해 실수를 하는 팀원들을 보며, 팀장은 잘못이 개인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잘못이 개인에게만 있는 경우는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누가 그 일을 했더라도 동일한 실수나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개인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어떤 일이 제대로 굴러 가기 위해 담당자의 큰 열정이나 높은 수준의 도덕성에 의존해야 한다면 그 일에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개인의 문제라고 말하기 힘들다. 개인의 열정이나 도덕성은 언제든 쉽게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하더라도 달성하기 힘든 프로젝트의 결과가 부진 하더라도 개인의 문제라고 보기 힘들다. 이런 경우 대부분 잘못은 개인 보다 구조나 프로세스, 전략이나 리소스에 있는 경우가 많다. 모두 팀장이나 상사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온전히 팀장의 몫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그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향력은 누군가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험 상 회사에서 사람들이 획득하는 영향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영향력은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는 책임감에서 나온다. 높은 오너십을 가진 사람들이 그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소리내어 말하고, 그 문제를 함께 풀 동료들을 먼저 살피고, 힘을 모아 문제를 풀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리더가 탄생한다. 어쩌면 리더가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것일지 모른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질문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좋은 질문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여럿이 같이 문제를 풀다가 가로막혀 고민하고 있을 때 좋은 질문이 막힌 생각을 뚫어 주기도 한다. 이런 경험을 몇 차례 하다 보니 막막할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생겼다. 나는 일을 하다 막혔을 때 아래와 같은 질문들을 던진다.
1. 목표 달성에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잘 되고 있는 것을 더욱 잘 되게 만들어 해결할 수도 있고, 안 되던 것을 되게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둘의 공통점은 원인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잘 되는 것을 더 잘되게 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에도 원인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큰 목표를 달성해야 할수록 평소에는 안 되던 것들을 되게 고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큰 문제에 막혀 있을 때에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목표 달성에 가장 큰 핑계 거리는 무엇일까?’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 가장 큰 걸림돌과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만들 핑계를 찾아, 이를 집중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다. 방향성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문제의 우선순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동료들의 의견이 너무 많고 또 다를 때, 이 질문이 동료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항상 큰 도움이 되었다.
2.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연결되는 경우의 수는 무엇인가?
문제를 깊게 파고 들다 보면 단서가 부족하거나 너무 많아서 막막한 경우가 있다. 이 두 가지 경우에 모두 이 질문이 도움이 된다.
데이터나 경험이 제한되어 있어 단서가 부족한 경우에는 시나리오 기반의 가설이 필요하다. 여기서 시나리오는 몇 안되는, 듬성듬성 있는 단서들을 이어 붙일 수 있는 ‘스토리’를 말한다. 마케터들은 이 스토리텔링을 고객 입장에서 해보면 좋다. 중간이 비어있는 몇 가지 데이터가 연결되어 합리적인 시나리오가 나오기 위해서는 고객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을 해야 하는지 떠올려 봐야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어설픈,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만 한 가설들이 나오면 제한된 단서로도 가설 검증을 위한 기초적인 실험을 시작할 수 있다.
단서가 너무 많아서 어려운 경우도 많다. 데이터가 너무 많아 그것들의 의미가 감이 잡히지 않을때, 혹은 많은 데이터가 서로 상반된 의미를 내포하는 경우에 특히 그렇다. 이 때도 경우의 수가 필요하다. 어떤 경우의 수가 충족 되어야 이 데이터들의 대부분이 연결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데이터가 제한 된 경우에는 몇 안되는 데이터가 시나리오를 통해 다양한 가설로 확장된다면, 데이터가 많은 경우에는 이들을 꿰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가설을 좁혀 나간다. 대부분의 데이터를 관통하는 한 두 가지의 경우의 수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유능한 분석가라도 모든 데이터의 의미를 연결하는 경우의 수를 찾기 힘들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데이터의 완전 무결한 연결점을 찾는 노력보다 적당히 합리적인 가설을 가지고 직접 고객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것이 답을 찾는데 훨씬 효율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서 푸는 문제가 대부분 퍼즐이 아니라 미스터리라는 것에 격하게 동의한다. 퍼즐은 조각들만 찾으면 비교적 쉽게 풀 수 있지만, 미스터리는 조각을 모아 퍼즐을 맞추고 그 퍼즐의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해 내야 풀 수 있다. 영화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암호나 다잉 메시지처럼 퍼즐의 그림 자체가 의미하는 바를 알아내기가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하나의 퍼즐 만으로 퍼즐의 그림을 해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힘들게 맞춘 퍼즐이 전체 그림의 일부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서 여러 개의 퍼즐을 맞추고 나서도, 그 그림들을 이리저리 맞춰 봐야 큰 그림이 보일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빠지기 쉬운 ‘데이터의 저주’가 흡사 양자역학과 비슷하다. 미시세계 속의 원자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거시세계에서 사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고전 역학에서 알고 있었던 것들과 서로 모순 되는 것들이 발견 된다고 한다. 미스터리를 풀어 나갈때도 마찬가지이다. 너무 많은 데이터를 보면서 퍼즐을 맞추다보니 서로 상충되거나 모순되는 퍼즐의 그림들이 나온다. 그래서 여러 퍼즐을 맞추고 나서 보이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림을 보며 ‘알 수 없다’는 해석과 함께 그 문제를 포기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과 우리가 푸는 미스터리의 차이점이 있다. 바로 그 미스터리를 만들어낸 사람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신에게 찾아가 양자역학의 미스터리를 물어볼 순 없지만, 우리는 미스터리의 비밀을 찾아가 물어볼 수 있다. 미스터리를 만들어 낸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고객들이다. 우리가 밤낮으로 고민하는 퍼즐의 조각부터 큰 그림은 뒤에는 고객이 있다. 엑셀 스프레드 시트 속에 미궁처럼 느껴지는 숫자들 뒤에도 고객들이 있다. 그래서 그림이 완벽하게 만들어 지지 않더라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모든 퍼즐의 조각들로 하나의 완벽한 그림을 만들어내지 못하더라도 고객을 관찰하고 조사해 그 그림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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