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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 시몬스에 대한 모든 것.

월터 반 베이렌동크와 린다 로파의 심미안.

by d code 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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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 시몬스에 대한 모든 것


매튜 윌리엄스가 지방시로 가기 이전에 패션 업계는 라프 시몬스가 프라다로 간다는 소식으로 술렁였습니다. 벨기에 출신의 라프 시몬스는 100여 년 전 프라다 하우스가 설립된 이래 최초로 외부에서 영입된 디자이너로 그동안 자신이 쌓아왔던 커리어가 한번 더 인정을 받는 순간이었습니다.


젊은 세대의 서브 컬처, 음악, 예술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들을 남성복에 녹여내어 상당한 추종자들을 만들어왔던 라프 시몬스. 칸예 웨스트는 자신의 첫 번째 이지(YEEZY) 컬렉션 런웨이에 참석한 라프 시몬스를 보며 "제가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걸 오늘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저기에 라프 시몬스가 왔잖아요."라고 발언하며 그를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라프 시몬스는 오랜 시간 동안 럭셔리 웨어와 스트리트 패션을 막론하고 패션 업계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쳐온 디자이너입니다.




라프 시몬스의 첫 번째 컬렉션 (1995년 가을·겨울 시즌)


마틴 마르지엘라의 영향


라프 시몬스는 패션 디자인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벨기에에 위치한 LUCA 예술대학에서 산업 디자인과 가구 디자인을 전공했으며 졸업을 앞두고 '앤트워프 식스'라고 불리는 전설적인 디자이너 그룹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월터 반 베이렌동크의 인턴으로 일한 것이 그가 패션에 몸 담았던 첫 번째 순간입니다. 그는 월터 반 베이렌동크의 전시장 디스플레이를 제작하고 컬렉션 초대장을 디자인했지만 의류 디자인하는 것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월터 반 베이렌동크가 파리 외곽에 위치한 놀이터에서 열린 마틴 마르지엘라의 1990년 봄·여름 컬렉션에 라프 시몬스를 데려가면서 상황은 바뀌게 됩니다.


월터 반 베이렌동크에 의하면 라프 시몬스는 그 쇼를 보는 동안 마틴 마르지엘라가 컬렉션을 통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와 초현실적인 디자인에 감격스러운 감정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는 그때서야 패션 디자이너가 자신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느꼈고, 월터 반 베이렌동크는 앤트워프 왕립 예술 학교의 패션 디렉터였던 린다 로파에게 라프 시몬스를 소개해줬습니다.


린다 로파는 라프 시몬스에게 현재 가지고 있는 지식만을 이용해 옷을 제작해보라는 미션을 줬고 그는 슬림한 슈트와 소매가 없는 셔츠로 구성된 자신의 첫 번째 컬렉션을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첫 작품을 본 린다 로파는 즉시 밀라노의 한 에이전시에 연락해 바로 프레젠테이션을 열었고 실험작이 될 뻔했던 라프 시몬스의 첫 작품은 정식 컬렉션으로 진행되어 그 즉시 고객들에게 판매까지 하게 됩니다. 심지어 바니스 백화점에서도 소개되어 호평을 받았고 이렇게 라프 시몬스는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됩니다.




10대만의 문화와 감정


라프 시몬스는 당시 앤트워프에서 자란 10대 청소년들을 위한 옷을 제작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것이 길거리에서 모델을 캐스팅했던 이유이기도 하며 진정으로 자신이 원했던 것을 디자인을 통해 표현했기에 그의 옷에서는 진실된 분위기마저 느껴졌습니다. 또한 라프 시몬스는 자신의 쇼에 서는 모델들에게 워킹을 지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옷에 대한 의견을 묻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옷을 직접 감상했던 패션 관계자들이나 직접 구매하는 바이어들의 의견 또한 적극적으로 들으며 비평가들과 실제로 옷을 사는 고객들이 모두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만한 컬렉션을 제작하는 것에 몰두했습니다.


1997년 가을·겨울 시즌에는 자신의 첫 번째 런웨이 쇼를 열기도 한 그는 2000년 가을·겨울 시즌을 끝으로 휴식기에 들어갑니다. 한 시즌의 휴식이 끝난 뒤 그는 2001년 가을·겨울 시즌에 복귀 컬렉션을 발표했고 이 시즌은 패션 업계 역사에 남게 됩니다. 라프 시몬스는 이 컬렉션을 통해 10대들의 반항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오버사이즈 재킷과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검은색 후디와 같은 마초적인 분위기의 아이템이 주를 이뤘고 미동 없는 표정의 모델들은 마치 군인처럼 보였습니다. 이때 당시의 옷은 약 20년이 지난 지금도 엄청난 시세를 형성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라프 시몬스는 가장 중요한 파트너를 만나게 됩니다. 영국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피터 새빌은 2003 F/W 시즌부터 라프 시몬스 컬렉션에 새로운 그래픽 디자인으로 새로움을 더했고 특히 이때 사용된 그래픽이 들어간 피쉬테일 파카는 가장 높은 시세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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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전환점


이렇게 자신만의 아카이브를 형성하고 있었던 라프 시몬스는 2005년 7월 프라다 그룹의 제안으로 질 샌더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해 자신의 또 다른 커리어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라프 시몬스가 만들어 낸 최초의 여성복을 볼 수 있었고 질 샌더의 미니멀리즘과도 자연스럽게 융화되며 자신의 가치를 더욱 높였습니다. 상업적으로도 성공하길 원했던 라프 시몬스는 질 샌더 네이비라는 서브 라인을 만들어 능력을 과시했고 약 7년간 질 샌더 하우스의 위치를 더욱 높이 끌어올렸습니다.


질 샌더에서 자신의 능력을 다시 한번 과시한 라프 시몬스는 디올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그는 불미스러운 일로 디올 하우스를 떠나게 돼버린 존 갈리아노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채웠고 디올 하우스의 거대한 자본력과 라프 시몬스의 천재성은 비평가들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켰습니다. 그는 2012년 가을·겨울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시작으로 1990년대 디올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춰 약 4년간 디올에서 근무한 뒤 자신의 브랜드와 관심사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로 사임하게 됩니다.


이외에도 라프 시몬스는 피렌체의 남성복 박람회인 삐띠 워모에서 선보이며 자신의 10주년을 기념했고, 2008년에는 영국의 캐주얼 브랜드인 프레드 페리와 함께 1960~70년대 영국의 청소년 문화를 주제로 협업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패션 포토그래퍼인 윌리 반데페르와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촬영한 라프 시몬스의 캠페인 화보도 그의 커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던 건 바로 스털링 루비와의 협업입니다.


라프 시몬스와 스털링 루비의 첫 만남은 2007년 도쿄 플래그십 스토어의 인테리어 구상을 위한 미팅으로 시작됐으며 2010년과 2014년에는 컬렉션 디자인에도 참여하며 팬들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스털링 루비의 시그니처인 흩뿌린 듯한 페인트 디테일과 그래픽 디자인은 그동안 라프 시몬스가 보여줘 왔던 것을 기반으로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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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 클라인에서의 실패로 그를 비판할 수는 없다.


라프 시몬스의 넓은 스펙트럼과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낸 컬렉션은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자신의 브랜드를 비롯해 질 샌더와 디올에서 보여준 하우스와의 궁합은 상업적으로도 뛰어난 디자이너라는 걸 증명한 셈인데, 2017년 캘빈 클라인이 이탈로 주첼리의 다음 타자로 라프 시몬스를 데려온 결정은 의문을 남깁니다. 라프 시몬스는 캘빈 클라인의 남성복과 여성복을 모두 맡아 CFDA 어워드에서 수상까지 하며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지만 약 2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경영진과의 의견 차이로 브랜드를 떠나게 됩니다.


대량으로 판매하는 속옷과 청바지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캘빈 클라인은 세계적인 명성의 디자이너를 데려와 럭셔리 패션에 집중하며 분위기를 쇄신하려 했고 그 작전은 성공적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매출적인 부분은 더욱 낮아졌고 캘빈 클라인의 모회사인 PVH그룹의 회장인 엠마누엘 치리코는 "라프 시몬스를 데려오며 캘빈 클라인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우리는 너무 빠르게 앞서갔다."며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비록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캘빈 클라인에서의 커리어로 라프 시몬스라는 디자이너가 평가를 절하당하는 건 아쉽게만 느껴집니다. 그는 항상 예측 불가능하고 신선한 작품만을 우리에게 보여줘 왔으며 항상 미래를 내다보는 디자이너입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자신의 오랜 친구인 미우치아 프라다와 함께 꾸려나갈 프라다를 더욱 완벽한 하우스로 이끌어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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