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서 볼 수 없었던 디자인을 다뤘던 패션 디자이너
구찌 하우스가 몰락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려고 했던 지난 1990년,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을 맡고 있던 버그도프 굿맨 출신의 던 멜로는 하우스에 색다른 모습을 더하기 위해 자신과 함께 일할 디자이너를 찾고 있었습니다. 당시 뉴욕에 위치한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건축학과를 졸업한 톰 포드는 패션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현실로 옮겨내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끌로에의 마케팅팀을 거쳐 캐시 하드윅 그리고 마크 제이콥스가 수장으로 있던 페리 엘리스에서 자신의 패션 커리어를 쌓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던 멜로가 포착해낸 것이었죠. 그는 곧바로 톰 포드에게 연락해 구찌의 여성복 디자이너로 일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여성복을 중점적으로 다루던 유러피안 하우스에서 미국적인 디자인을 보여주던 그의 가능성을 본 것이었죠.
시간이 흘러 1994년이 되었고 던 멜로는 버그도프 굿맨의 회장직을 위해 하우스를 떠나면서 자신의 자리를 톰 포드에게 승계시켰습니다. 구찌의 전성기이자 톰 포드 자신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죠. 그는 구찌의 여성복은 물론 남성복 그리고 모든 액세서리의 디자인을 총괄했으며 시즌의 키 비주얼을 알릴 수 있는 중요한 캠페인 화보와 모든 오프라인 스토어의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맡으며 구찌의 모든 것을 책임졌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구찌의 영업 수익을 90%나 증가시키며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톰 포드는 로스앤젤레스의 전설적인 나이트클럽인 '스튜디오 54'에 자주 방문하며 이 곳을 찾는 수많은 셀러브리티들의 화려한 메이크업과 의상 그리고 그곳을 가득 메우는 디스코 음악에 매료되었고 이를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그의 데뷔 컬렉션이었던 1995년 가을·겨울 컬렉션은 화려한 LA의 밤거리를 연상케 했고, 그동안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으로 '밀라노에서 가장 미래지향적인 디자이너'라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1994년도부터 2005년도까지 이어진 톰 포드의 구찌는 지금까지도 대중문화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이번 디코드 트렌드 뉴스에서는 그가 구찌 하우스에서 보여준 최고의 순간을 다루려 합니다. 지금까지도 상징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는 톰 포드의 구찌를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톰 포드의 데뷔 컬렉션 무대에 섰던 케이트 모스는 청록색 새틴 셔츠를 입은 채 런웨이를 질주했습니다. 이 셔츠는 마치 란제리를 떠올리게 했고 가슴 부분이 벌어져 있는 실루엣은 함께 매치한 벨벳 팬츠와 완벽한 궁합을 자랑했습니다. 같은 해에 개최됐던 MTV의 비디오 뮤직 어워즈(VMA)에서 마돈나가 이 새틴 셔츠를 입어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죠.
이 새틴 셔츠는 곧바로 그의 데뷔 컬렉션을 대표하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고, 이 새틴 셔츠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할 정도였는데 그는 그 인터뷰에서 "저는 밀라노에서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장르를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패션을 다루려고 했죠."라고 말하며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이 새틴 셔츠는 약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싼 값에 팔리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을 거친 중고품이 1,500달러에 팔리고 있죠.
1996년에 발표된 토니 브랙스턴의 'UN-BREAK MY HEART'는 국내에서도 유명한 곡이죠. 당시 이 곡의 뮤직 비디오에서 그녀가 직접 착용한 의상이 화제였는데, 이는 톰 포드의 가장 유명한 구찌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는 FW96 시즌에 등장했던 드레스였습니다. 칼럼 드레스 스타일로 몸매를 부각하는 타이트한 실루엣과 옆구리를 그대로 노출시킨 컷 아웃 디테일을 담아내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들의 워너비 드레스로 뽑히고 있죠.
당시 최고의 R&B 싱어로 손꼽히던 토니 브랙스턴이 구찌의 드레스를 입었다는 건 구찌가 대중문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톰 포드 이전에도 구찌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그레이스 켈리와 함께 했고 톰 포드는 이러한 하우스의 마케팅을 계속해서 이어간 것이었죠. 관객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았던 이 컬렉션에 등장한 드레스는 지금까지도 부드럽지만 정교한 디자인으로 많은 팬들의 가슴속에 남아있습니다.
톰 포드가 처음으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했을 때만 해도 당시 활동하고 있던 수많은 모델들은 이 오래된 브랜드가 자신의 커리어를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런웨이 무대에 오르는 것을 거절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자신만의 감각으로 하우스의 부활과 변화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던 톰 포드의 존재를 몰랐기에 그랬겠지만 말이죠.
이런 이유로 톰 포드는 자신의 세 번째 시즌이 될 때까지 린다 에반젤리스타, 나오미 캠벨, 클라우디아 쉬퍼와 같은 흥행 보증 수표였던 최고의 모델들과 인연이 닿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국내외의 모든 패션 브랜드가 최고의 모델 혹은 셀러브리티들과의 계약을 따내며 캠페인을 촬영하고 있지만 당시의 구찌는 신인 모델에게 그 역할을 맡길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톰 포드의 세 번째 시즌이었던 1996년 가을·겨울 컬렉션의 캠페인에는 남아공 출신의 신인 모델이었던 조지나 그랜빌이 렌즈 앞에 섰고, 평론가와 대중들에게 극찬을 받았던 시즌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즉시 스타 모델로 떠올랐습니다.
이 캠페인을 시작으로 케이트 모스, 앰버 발레타, 샬롬 할로우, 커스티 흄, 트리쉬 고프와 같이 데뷔 컬렉션부터 톰 포드를 믿고 함께 했던 모델들은 구찌의 뮤즈가 되었고 최고의 모델로 올라섰습니다. 등용문과 같은 브랜드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셀러브리티와 톰 포드 사이의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팝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머라이어 캐리입니다. 그녀의 열두 번째 싱글 차트 1위를 달성하게 해 줬던 'HONEY'의 뮤직비디오에서 그녀는 비밀 요원을 연기하며 톰 포드의 구찌 드레스와 스틸레토를 신고 등장했고 특히 스틸레토 힐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클로즈업까지 되며 화면에 비쳤고 그 즉시 많은 여성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죠. 톰 포드는 이를 의식해 1997년 가을·겨울 시즌에 그녀의 뮤직 비디오에 출연했던 장면을 오마주한 캠페인 컷을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구찌는 지금까지 수많은 셀러브리티들에게 의상들은 물론 액세서리를 제공해왔습니다. 특히 제가 디자인한 아이템들은 더욱이 이러한 인물들에게 입히는 게 올바른 선택이라고 믿고 있어요. 지극히 사치성의 성질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