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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SSTYPE May 12. 2016

제스타입 작업일지 - 2012 #2

사고의 확장과 저장. 그리고 정리.

#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가.


노트에 적혀있는 이 질문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왔다. 


그래피티를 하던 중고등학생 때는 막연하게 상상했었다. 어른이 되면 어떻게 살아갈지. 대학생이 되어서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생각했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꿈이라는 허황된 거품을 걷어내고 명확한 목표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위해 고민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이가 들수록 이 질문 그리고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조금씩 정리되었다. 먼 미래의 최종 목표는 사라지고. 가까운 미래의 작은 목표와 과정에 대한 계획만 남았다. 현실과 마주한 나의 이상은 가볍게 무너져 내렸다. 꿈과 이상이야 어쨌든.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이상이야 말로 내가 도달할 수 없는 허황된 것이었으니깐.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목표를 재설정했다. 직장은 직장대로. 일로서 하는 디자인과 분리하여 개인 작업을 꾸준히 하는 것. 처음부터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다. 야근을 마치고 퇴근해서 집에 오면 보통 녹초가 되어 씻고 나면 정말 움직이기 귀찮았다. 피곤하지만 단 한 시간. 아니 30분이라도 개인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누가 시키거나 확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번 손을 놓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손을 못 댈 것 같았다. 보통 새벽 2, 3시 정도 잠에 들었다. 잠을 줄이다 보니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일을 하면서 꾸벅꾸벅 졸거나 그러진 않았다. 매일 에너지 드링크 2, 3 캔씩 들이키면서 그런 생활을 유지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에너지 드링크가 효과가 있었나 싶지만. 습관처럼 마셨었다. 안 마시면 허전하달까. 코카콜라와 에너지 드링크. 담배와 술. 밤늦게까지 작업하고 잠도 적게 자면서 회사에서는 스트레스 받고. 그래서 일 년에 한 번씩 입원했었나 보다. 







다시 낡은 노트로 돌아가서. 내가 남긴 기록들을 살펴본다. 보아하니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작업에 대한 이야기와 작업을 하면서 남긴 생각들. 작업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다시 정리할 필요는 없다. 회사 업무다 보니 별로 재미도 없고. 작업을 하면서 남긴 생각들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작업을 진행하는 그 당시 스스로에게 남긴 글과. 당장은 정리되지 않은 의문문으로 끝나는 글들. 나중에 다시 펼쳐 보았을 때 그에 대한 해답을 남길 수 있도록 빈칸은 함께 남겨두었다. 대부분은 이미 답을 적어두었지만. 아직까지 답을 남기지 못한 질문도 있다. 뭐랄까. 좀 궁상맞긴 하지만. 이런 식의 자문자답이 내 주관을 더 또렷하게 해준다. 혼잣말은 전혀 하지 않지만. 작업을 진행하거나. 깊이 고민할 때는 늘 글로 적어두고 보면서 생각나는 모든 것을 적어본다. 생각은 흔적을 남기지 못하지만. 기록은 그 흔적들 사이에서 내가 의식하지 못한 채 놓쳐버린 것들을 다시 주어 담을 수 있다. 그게 무엇이든. 기록들을 조금 정리해보자면.


아는 것을 끼워 맞추면서 억지로 근거를 만들지는 말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타인을 설득할 수는 없다.
얄팍한 지식으로 덤비면 금세 바닥을 보이기 마련이니까.


남들 다 하는 거 따라 하느라 힘 빼지는 말자.


재미있는 작업도 억지로 하자니 영 하기가 싫다.
디자인이 점점 일이 되어 가나보다. 그것도 남일.
의욕이 갈수록 처진다. 나란 놈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무심한 듯 그저 시크한 매력이 넘치는 미니멀한 디자인?


눈으로 따지 말고 이빨 까지 말고 내 머리 속에서 끄집어 내자.
결국 내 머리 속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내 것이 아니다.


작업일지는 내 사고의 연장이자 저장이다.


늘 새로운 것을 눈에 담아 배우고
욕심내고 내 것으로 빼앗아라.
그리고 계속해서 발전하라.


생각이 평면적이면 결과 또한 플랫하다.
입체적으로. 좀 더 다각도로 접근해라.


MAX
MIN
MIX 


늘 준비된 상태로 아쉬울 것 없는 상태로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라. 회사가 나를 함부로 못하도록.


여백. 빈칸. 공간. 보이는 것을 돋보이게 해주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


막 던지지 말자. 항상 신중하게.
하지만 때가 오면 시원하게 던지자.


고민씨. 해결책을 내놓으세요.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것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니. 결국 남보다 더 많은 것들 알아야만 한다.


반성하되 후회하지 말 것.


소화 - 조화 - 변화 - 승화


계획은 효율을 낳고 효율은 시간을 낳는다.


사고의 확장 - 오감의 확장 - 작업 영역의 확장


남 일은 남 일. 내일은 내 일.


생각의 틀을 넓히기 위해서 시각의 폭을 넓히자. 


반복되는 작업에 의한 프로세스의 고착화. 이어지는 성장의 정체.
익숙한 프로세스를 벗어나 다양한 스타일로 작업을 진행하자.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면 객체의 다른 면이 드러난다. 


작업을 진행하며 늘 정리를 해야 한다.
어디까지 진행했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고.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를.


조금 뻔한 내용이지만. 당시 나에게는 이 기록 하나하나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단순한 텍스트가 가지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기록 저 너머에 남은 기억에 의미가 담겨있다. 이러한 기록들이 작업 진행에 대한 기록과 함께 쓰여 있기에 그 기억을 유지할 수 있다. 어떠한 작업을 진행하며 어떠한 일들을 겪었는지. 그 속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느꼈는지를.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기억들이. 이 기록을 통해서 또렷하게 재생된다. 너무 개인적이거나 혹은 쓸데없는 이야기들. 작업 진행에 대한 기록을 제외하고 정리해보았는데. 입사하고 4개월 동안의 기록이다. 대부분은 디자인 프로세스에 관련된 내용이다. 대학생 때는 디자인이라는 것이 결국은 모두 과제였다. 작업이야 내키는 대로. 밤을 지새우며 하면 되는 것이니 프로세스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직장에서의 디자인은 달랐다. 주어진 디자인 업무를 정해진 시간까지 처리하려면. 작업의 효율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밤을 지새우며 업무를 할 수는 없으니깐. 직장에 사수도 없다 보니 스스로 프로세스를 잡아갈 수밖에 없었다. 업무가 규격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엉망이었다. 네 명의 디자이너가 제각각의 방식으로 주어진 업무를 처리했다. 체계도 없었고 질서도 없었다. 뭐 그것이 나름의 체계였다면 내가 할 말은 없지만. 개개인의 자율에 기댄 것이 아니라. 방종에 가까웠다. 결국 나는 제 시간에 퇴근하기 위해서 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 기록들이 그러한 사고의 흔적들이다. 지금 보기에는 우습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으니깐. 그러려니 넘어간다. 나 스스로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의미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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