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진택 Sep 08. 2020

의사 파업과 집단 이기주의

의협이 태극기 부대같은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비슷하게 선동됐기 때문이다.




의협의 불법 진료 거부 

의사협회나 대한전공의협회는 노조가 아니기 때문에 파업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단체행동권을 가지나 국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에 대해서는 파업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대체로 선진국의 경우 평화적인 파업은 생존권적인 기본권인 동시에 국가권력에 대한 자유권으로서의 권리로 인정한다. 하지만 정당한 파업이란 사업자의 부당한 행위에 대항하기 위해 하는 거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쟁의하는 것은 테러일 뿐이다. 의사의 파업이 정당화될 수 없는 이유는 환자의 생존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향후 10년간 연간 400명의 의대 증원 계획을 밝혔다. 최초 논의 시점에는 전라남도에만 국립대 의대가 없으니 하나 만들려고 한다 라는 이야기가 많이 돌았었는데 거의 가짜 뉴스였던 것 같고 정부안은 단지 기존에 존재하던 사립대들의 정원을 더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일단 정책을 던져 놓고 이제부터 협의하면 된다는 태도였는데,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을 시도하며 친일 야당보고 이대로 두면 너희에게 더 불리하니까 논의에 참여하라 한 것과 비슷한 발상으로 의협의 참여를 이끌어보려고 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연간 400명 증원을 얘기한 것은 300명까지는 줄여줄 수도 있다는 속셈이었을 수도 있다. 


한국의 출생률은 심하게 낮은 상태고, 앞으로 갈수록 더욱 고령화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공공의료 확대 정책은 분명 필요하다. 어쩌면 코로나 이후의 미래가 끊임없는 새로운 감염병의 유행으로 심각한 문제가 계속될 수도 있고, 기후변화 위기 때문이라도 의사의 수요가 많이 늘기는 할 것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계에는 의사협회만 있는 게 아니라 병원 협회, 수련 병원 등 다양한 의료계의 구성원이 있으며 그분들의 자문을 받아 정책을 만들었다며, 의료정책 형성과정에서 의사협회와는 사전 협의하지 않고 다른 의료계 구성원들과만 사전 협의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의사협회는 의협을 배제한 정부 정책을 용납할 수 없다며 격렬히 규탄하고, 전공의 파업과 의대생 수업 거부, 국시 거부 등 강경 투쟁이 이어졌다. 정부가 의협을 배제하고 정책을 세운 것은 매우 잘못이긴 한데, 사실 이는 애초 의협에서 의사 증원은 무조건 안 된다며 대화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의사 수는 이미 충분하다거나, 지역 편중이 더 문제다 라는 얘기도 일리는 있으나 그런 이유로 괜찮다는 것은 마치 한국의 결식아동 문제를 이야기하니까 아프리카 가면 굶어 죽는 애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 우리나라는 별 문제 아니다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확실히 지역 편중, 대도시 집중 경쟁 때문에 더 문제지만 지나치게 많은 의사들이 하루 백 명씩 환자를 보며 어쩔 수 없이 3분에서 5분씩 진료하는 부작용과 의사 본인들의 과로 때문이라도 의사의 증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의협은 태극기 부대식 투쟁으로 떼를 쓰기보다 의사 증원이 더욱 경쟁을 치열하게 만드는 문제나 애초 과도한 수도권 집중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실무자 입장에서 의견을 내며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옳다. 


공공의대가 낙후된 지역에 보낼 의사를 키우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현재 정부는 코로나 사태 이후의 의료에 대응하기 위해 공공의대에서는 역학조사관과 감염내과 등 감염병 대처에 필수적인 인력만을 양성하겠다고 하고 있다.


시골에 10년 복무시킨다는 얘기는 기존 의대에 지역의사선발전형을 신설하여 대학이 있는 지역에서 선발하여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며, 대신 의사가 된 후 그 지역에서 10년간 근무를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의 남발

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던 서남대학교는 2018년 2월 28일 폐교됐다. 이 대학은 8년 연속으로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 지정되며, 꾸준히 대학구조개혁평가 최하 등급을 받아 결국 교육부가 대학 폐교 및 법인 폐쇄 명령을 내렸는데 현재도 법인 청산 작업이 진행되는 중이다. 주로 교비 횡령으로 물의를 빚었기 때문인데, 보통은 부실대학으로 지정되면 어떻게든 개혁을 해서 폐교를 면해보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데 몇 년을 그냥 배 째라고 버티다가 결국 폐교 수순을 밟게 됐다.



서남대의 막장 상황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나왔었는데, 방송에 보도된 내용에 의하면 서남대의 설립자인 이홍하 씨는 1998년 교비 400억 횡령, 2013년 교비 1004억 횡령 혐의로 구속됐으나 이례적으로 병보석을 받아 풀려났다. 98년 병보석 허가를 내 준 판사는 이후 이 씨의 변호사로 활동했고, 2013년에 허가를 내 준 판사는 이 씨 사위의 사법연수원 동기다. 이 씨는 서남대 부속병원인 남광병원에 고등학교 3곳, 대학교 5곳, 병원 2곳 등 자신이 설립한 법인의 재정을 장악하는 법인기획실을 설치하고 이곳에서 소액 쪼개기 인출, 차명 계좌, 자금 돌리기 등 각종 수법을 동원하여 자금세탁을 했다. 학교 건물을 짓는 데 투입된 인부들의 도장을 만들어 인부 한 명당 일당으로 적게는 1000만 원에서 많게는 3억 원까지 전달하는 서류를 꾸몄다고 한다. 실제 공사에 동원된 인부는 한 명당 최대 14만 원을 받았을 뿐이며 일부 공사에는 교직원들이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동원됐다. 


의대 교육조차 부실교육이라 기초의학 교수가 없어서 타 대학 교수가 와서 수업을 해야 할 정도였으며, 실습병원인 남광병원이 너무 환자가 없어서 수련병원 지정이 취소되고, 교육부가 임상실습 시간의 부족을 이유로 졸업생의 의사 면허를 취소시키라는 지시를 내리고 의예과 입학정원 모집 중지 행정 처분을 내리는 등 행정 소송이 이어졌다. 의대 TO를 노리는 대학이 많아 많은 대학의 제의로 의대만 다른 대학이 인수하고 나머지는 기존 비리재단에 다시 넘겨주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었으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비리사학에 대한 기조가 강경하게 바뀌며 2017년 12월 최종 폐교 결정이 이뤄졌다. 제적된 의대생은 가까운 지역에 있는 전북대와 원광대에서 특별 편입으로 전부 받아줬다. 두 대학 모두 학교 인프라에 비해 원래 의대 정원이 지나치게 많은 편이며 막상 대학병원 규모는 작은 편이라서 다소 논란이 되는데, 원래 특별 편입을 받아준다고 대학 TO를 흡수하는 건 아니지만 하여간 서남대 의대 정원 재배정 전까지 한시적으로 서남대 정원 49명을 전북대와 원광대가 나눠서 증원하기로 했다.


의과는 원래 나라에서 그 전공 TO를 조절하는 학과다. 


교육부는 관동대와 울산대 등 부실이 의심되는 의대들을 차후 또 폐교시키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부실의대 폐교로 확보한 TO로 국립 공공병원을 신설하려는 계획인 듯 보인다.



의협이 의사 증원을 반대하는 이유는 단지 의사 증원이 의사의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하고 차후 의사의 수입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고 이기적인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령 나라를 지키겠다는 것도 크게 보면 내 가족 내 나라만 사랑하는 이기심이 아닌가? 의사협회는 솔직하게 의사 증원이 의사 수입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밝히고 문재인 대통령이 역시 공산주의자라서 돈 많은 사람들 가난하게 만들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 나눠주려 하는 거다 주장했어야 그나마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명분 없는 파업을 진행하며 억지로 명분을 만들려 하니 자꾸 가짜 뉴스에 의존하게 된다. 정부에서 전라도에 의대 만들어주려고 의사 증원 하는 거다 부터 공공의대 만들면 장관 도지사 아들 등 사회지도층 인사 자제가 뒷구멍으로 들어올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데, 주장 자체가 근거가 없거니와 공공의대의 신입생 충원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야지 대안도 없이 무조건 잘못될 수도 있으니까 공공의료 확대 정책 자체를 안 해야 한다 주장하는 것은 좀처럼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국회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의대 증원을 찬성한 편인데, 당장 의대 증원은 지역 상인들에게 매우 도움이 되고 치적으로 홍보하기에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TO가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못할 뿐이지 의대 신설을 원하는 지역은 수없이 많다.


정부는 신설 의대를 허가해줄 생각이 전혀 없고 다만 서남의대가 사라진 TO를 공공의대로 채우겠다는 것뿐, 이는 의대 증원과 전혀 상관이 없다. 의협은 정부가 남원에 우선적으로 공공병원 설립을 논의한 것은 서남대 폐지 때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정부에서 의사 증원을 위해 새로 대학을 신설하려고 전라도 어디에 땅을 알아보고 있다 라는 식의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의사들에게 봐라 우리한테는 아직 합의 중이고 정해진 것 없다고 하면서 뒤로는 벌써 땅을 사놨다 라고 선동하는 데 사용했다.



박사모 출신 인사가 의사협회장이 된 이후 정부에서는 의협과 대화가 통하지 않게 되었다고 판단한 듯하다. 반면 한의계는 문재인 캠프 출신 인사가 한의사협회장이 되며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는 스탠스로 확 바뀌었는데, 그래서인지 추나요법의 급여화 시범사업이 전격 시행되고 첩약의료보험 시범사업도 다시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안면신경마비, 65세 이상 뇌혈관질환후유증, 월경통 등 3가지 질환에 대한 한방 첩약의 1년간 시범적인 건강보험 적용을 계획하고 있다.


사실 한의계는 전통적으로 내부 의견 통일이 안 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첩약의료보험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당연히 보험 편입이 되면 탈세를 하기 더 힘들어진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의학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인데 어떻게 질병별로 치료법의 일관된 스탠다드를 만들 수 있겠는가? 같은 환자를 봐도 한의사마다 다 변증이 다르고 처방이 다른데 어떻게 정해진 건강보험체계 내에서 약을 지어먹을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일단 한의학이 보험에 편입하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고 많은 논란과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와 한의계에서 꾸준히 노력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한방약의 보험화를 하고 있고 각기 장단점이 있다.



한의사 입장에서는 의협이 투쟁의 목표 4가지를 내세우며 그중 하나로 첩약의료보험 전면 철회를 주장하는 것은 상당히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의협은 첩약의료보험이 보험 체계에 부담을 줄 것을 우려하여 반대하는 것이며 그런데 쓸 돈 있으면 의사에게만 쓰라는 것인데, 대체 한약에 대해서 의사가 왜 이래라저래라 하는가? 국가 보험 재정을 걱정해서 감 놔라 배 놔라 할 정도면 의협에서 소방관 국가직 전환도 반대하고 경찰 공무원 증원도 반대한다고 발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의사들이 첩약의 보험화를 반대하는 이면에는 한의학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 한약 자체를 효과 없는 사기라고 생각하는 오만이 있다.


의사들이 첩약 보험화와 관련해 한약을 폄훼하는 글을 살포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항암제도 비급여라서 못 쓰고 죽어가는 환자들도 있는데 검증도 안 된 한약에 세금을? 중금속 허용치 50배 높은 한약을 급여화한다고?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많은 항암제가 수요의 부족으로 공급비용이 높아 비싼 가격이 형성되는 문제도 있지만 대체로 비급여가 되는 것은 효과와 부작용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양방에 비급여가 많다는 지적은 상당히 누워서 침 뱉기이며, 한약도 양약과 마찬가지로 우수 의약품 제조 관리 기준의 규제를 받고 있다.


당연히 간호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등 의사를 제외한 집단은 모두 의사 증원을 적극 찬성한다. 의료산업노조는 환자 안전과 불법 의료 근절을 위해서라도 의사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국가적 재난위기 상황에서 공공병원 확충과 공공의료인력 확대에 대해서도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명분 없는 파업

의협과 대전협 등은 정부의 정책 전면 철회 없이는 무조건 파업한다는 입장만 고집하다가 결국 지난 8월 26일부터 3일간 총파업을 실시했다.


과연 의사들은 정부가 부당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독립운동하는 마음으로 파업과 투쟁을 지속한 것인가? 정말로 의대생들은 스스로 떳떳한 명분이 있고 옳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유급과 국시 탈락도 감수하겠다는 것인가? 그보다는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국가를 협박하는 실력 행사를 계속하면 결국 정부가 백기 투항을 할 것이며 의사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던 게 아닌가? 이제 와서 국시 거부자 구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기한 파업과 국시 거부가 결국 블러핑이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정부는 8월 27일 전공의 파업 비율이 68.8%, 전임의는 28.1%라고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국 교회 지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전시 상황이 되면 휴가를 가거나 외출을 나갔던 군인들도 총을 잡는다며 현재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의료인들이 의료 현장을 떠나는 것은 전시상황에서 군인들이 전장을 이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은 의료계가 코로나 때문에 국민들이 받는 고통을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그렇게 기대한다면서도 정부는 한편으로 의료계와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법과 원칙대로 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는 전공의협의회와 의사협회가 직능단체로 별도의 노조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므로 단체행동 자체가 불법이라며, 파업 자체를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고발할 방침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원칙적인 법 집행을 통해 강력하게 대응하라 지시했다고 알려졌다.


의협은 강경하게 파업을 시도하면 정부에서 무조건 항복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항상 이겨왔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행위는 정말 정부의 정책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비이성적인 선택을 했다기보다 단지 언제나처럼 다 같이 의사의 이익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자는 것에 불과했다. 


의협의 파업 혹은 파업하겠다는 공갈은 이미 한두 번이 아니었고 매번 의협의 무조건적인 승리로 끝났기는 했다. 하지만 그동안은 파업을 하더라도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파업하지 않는다는 것이 최소한의 불문율이었는데, 이번 파업은 정말로 상당히 많은 병원의 응급실이 파업에 동참했고 각 병원에서 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져 실제 국민들이 의료대란을 체감했으며, 각종 언론에서 응급실로 이송된 환자가 파업의 영향으로 사망한 사건을 다수 보도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의사들이 의료현장을 떠난 상황에서 남아있는 간호사들의 업무 가중이 심해진 데다가 사망선고 등 불법적인 진료 업무까지 떠맡은 경우가 많았다.



하여튼 정책 전면 철회 대신 원점에서 재논의한다는 내용으로 합의가 이뤄진 후 의학계는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기는 하지만 얼렁뚱땅 갈등을 덮어놓고 넘어가게 될 모양인데, 분위기를 보면 결국 의대 증원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애초 의사 증원의 필요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고 의협에서 더 현명한 방식으로 투쟁하거나 어느 정도 정부와 대화하고 협조했으면 증원이 더 미뤄지긴 했을 텐데, 현재로서는 여론이 의사에게 너무 불리하다.


대전협에서 정부와 의협 간 합의문을 채택하고 단체행동을 잠정 중단하자는 안건에 투표를 했는데, 과반이 97명인데 파업 중단 반대 96, 찬성 49, 기권 48로 파업 중단 반대가 부결되었으나 단체행동 진행과 중단 여부에 관한 결정을 박지현 비대위원장에게 위임한다고 의결하고 다시 투표를 해서 파업 지속이 가결되었다. 말하자면 비대위에서 책임질 테니 믿고 찬성해달라 요구해서 결국 찬성을 만든 것인데, 아무래도 젊은 의사들이 민주주의에 대해서 약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중앙일보와 프레시안 등의 보도에 의하면 비대위 다수가 파업 중단을 원했는데 대표자회의에서 졸속 의결해 파업을 밀어붙였다. 일선 전공의들은 범의료계 합의안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비공식적으로 유포된 정보 속에서 파업을 강행하자고 주장하는 분위기였다. 대표자회의에서도 단체행동 중단에 대해 다수가 찬성했는데 강경파에 의해 파업 강행이 졸속 처리되고 대전협 지도부를 따를 수 없다고 판단한 비대위 핵심인물 다수가 사퇴를 표명했다. 


그래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만든 조직이 '어떤 전공의들'이라고 한다.

대전협 비대위 측은 어떤 전공의들이 주장하는 졸속 진행은 사실이 아니며 의결 과정과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건에서 재밌는 것은 친일 언론이 의협에 비판적이었다는 사실인데, 사실 국민여론은 의사에게 안 좋을 수밖에 없었으나 뉴시스에서 의사들이 박근혜 때는 700명 증원을 합의했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 하여간 뭔지 몰라도 문재인 정부가 잘못하니까 의사들이 투쟁하는 거겠지 라던 여론에 매우 결정적인 타격을 안겼다. 



보도 내용은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현재 공공의대 설립 등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 있는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박근혜 정부 당시는 공공의대 신설을 통한 의료 인력 확충 방안을 제안했다고 밝힌 것인데, 강 의원에 따르면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2015년 보건복지부 용역을 받아 공공의료인력양성을 위한 기반 구축 방안 보고서를 제출했으며, 이 보고서에는 공공의대를 설립해 2020년 최초 선발 인원 100명, 2025년부터 최대 700명 규모로 운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실 언론사 입장에서는 약사는 주요 고객이라 또 모르지만 특별히 의사 집단에 우호적일 이유는 없긴 하다.

친일 언론 입장에서는 무조건 문재인 정부가 잘못했다고 주장하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의협이 정부를 비난하니까 동조할 법도 했는데, 조선일보 등이 사건 초기부터 의협을 맹비난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최대집 회장이 박사모 출신이라고는 해도 현재 광화문 태극기 집회 정규 멤버로 포함된 것은 아니라서 같은 편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는 모양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의대생들'이라는 조직이 현재 의과대학에서는 각 학년 대표들에게 의사 결정 권한을 온전히 위임한다는 의결을 통과시킨 후 시국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가 전혀 없이 각 학교에서는 파업을 지속한다는 공지만 돌리며 파업 참여를 강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의하면 의협은 공익성 없는 명분에 비해 너무 과도한 방식으로 파업을 강행하여 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에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파업 주도 집단은 어떠한 방식의 의대 증원도 반대하고 의사의 수입에 긍정적 영향을 줄 만한 정책만을 허락한다는 식으로 정책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월권을 저지르고 있다. 전공의 단체 안에서는 국시 취소를 하지 않고 내년에 입사하는 인턴은 반역자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의료 공공성 강화 필요성에 공감하고 의사 사회 내 다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구성원에게도 투쟁에 동참할 것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분위기에 문제가 있다. 의협의 주장과 달리 객관적인 지표로서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인력의 지역별, 과목별 안배도 중요하지만 이는 증원과 병립해야 하는 과제이지 의사 증원을 반대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라고 했다.


정부의 의사증원안은 확실히 부실하다. 연간 400명 증원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기도 하고, 늘려야 하는 것은 공공의료인데 정부안은 오히려 사립의대와 민간병원의 인원 증원이며 이는 애초 의협을 배제하고 합의했던 각 대학과 병원의 이익에만 치중된 것으로 원안대로 시행된다면 의료공공성 강화나 지역 필수 의사인력 확보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


10년간 시골 근무를 강제한다는 것은 상당히 터무니없는 소리 같지만, 강제 안 해도 원래 여러 이유로 시골에서만 일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10년간 지역 근무 조건으로 전액 장학금 준다고 하면 이거 신청하는 사람은 많을 수 있다. 문제는 막상 일하게 됐을 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도시 근무해야 한다 주장하면 강제력을 쓰기가 애매하다는 것이며 사실 대놓고 위헌 신청하면 받아질 만한 위험이 있는, 문제가 있는 방안이긴 하다.



의협에서 공공의대 계획을 비난하는 홍보물을 올린 것이 상당히 욕을 먹었는데, 공공의대에 불합리한 추천제가 도입될 거라는 주장 자체가 약간 가짜 뉴스지만 그보다 문제는 사실 암기만 잘하면 성적 좋은 학생이 되는 교육에 의해 성적만 좋은 멍청한 의사가 양산되고 있는 상황을 국민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면 좋은 의사라는 엘리트주의에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하여간 의협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공공의대 제도가 성적이 안 되는 학생도 시골병원 의사 10년 한다고 지원하면 가산점을 준다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정부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공공의대에서 자격 없는 학생을 뽑아준다는 게 아니라 기존 의대 합격 인원 중에 조건이 맞는 사람에게 지역의사선발전형으로 장학금을 준다는 것이다.




국시 거부자 구제 논란. 한약 분쟁의 데자뷔

제85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이 8일부터 시작된 가운데 정부는 추가 접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이미 한 차례의 시험 일정을 연기했고 접수 기간도 추가로 연기한 바 있기 때문에 이 이상 추가적인 접수 기회를 부여하는 방안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현재 의대생들이 국가시험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정부에 구제 요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대한의사협회나 전공의 단체는 정부에 무엇을 요구하기보다는 의대생들이 스스로 학업에 복귀하고 시험을 치르겠다고 입장을 바꾸게 하는 노력을 우선하는 것이 순리라고 했다.


민주당도 표면적으로는 국시 거부 의대생들에 대한 구제 의향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일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연기했기 때문에 추가적인 접수는 어렵다. 국가고시를 신청하지 않은 의대생에 대한 구제책은 없다고 발언했다. 8일 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정부로서도 더 구제책을 내놓기 곤란한 상황이다. 의대생도 성인이므로,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사실 의사협회와 정부의 합의가 이뤄진 이후에도 국시 거부가 지속된 것은 매우 이해하기 힘든데, 의협이나 선배 의사들이 학생들 설득을 안 한 것이 문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여론은 국민이 180석을 몰아줬는데도 원칙대로 하지 못하고 특권층에게 끌려다니고 있다고 민주당을 비난한다. 법대로 하는 것이 정답인데도 민주당이 국민여론과 반대되는 행보, 특권층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행보를 거듭해온 것은 워낙 일관성이 있는 부분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당장 정부는 의대생들이 국시 보게 해주세요 해주기만 하면 어떻게든 해결해주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이는데, 각 대학 차원에서 강경파가 장악한 지도부가 워낙 상식을 벗어난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잘하면 정말 대량 유급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96년 한약 분쟁과 관련하여 한의협 300인이 삭발식을 하고 한의대생들이 장기간 수업 거부 후 대량 유급된 사태가 있었는데, 정부는 별다른 구제책을 내놓지 않았고 실제로 대부분의 인원이 그대로 유급됐다.


당시 복지부에서 약국에는 재래식 한약장 이외의 약장을 두어 이를 깨끗하게 관리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약사법 시행규칙을 공포했는데, 한의계는 이를 재래식 한약장으로 인해 약국이 한약을 전문적으로 취급할 수 있는 곳으로 오인되는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고자 제정 공포된 것이다 라고 해석했고, 약사회와 정부는 재래식 한약장보다 개량된 약장을 두어 한약의 과학적 발전을 유도하자는 것이지 약사의 한약 취급 자체를 제한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전한련과 약사회가 과격 시위를 계속하는 등 사회적 혼란이 이어진 후 정부는 약사의 한약 조제를 금지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동안 한약을 조제해온 약사들을 구제하기 위해 1996년 7월까지 한약 조제 시험을 치러 기존의 약사에게 한약조제권을 주기로 한 것이다. 


당시 한의계에서 한조시 출제 거부를 결의한 후 약대 교수들이 출제한 한조시 시험이 있었는데 한조시 문제의 사전 유출 등 부정 의혹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의계는 민족의학을 무시하는 의료법과 약사법의 모순에는 일제에 의하여 강제된 근대화라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보건복지부는 마치 약사의 이익집단처럼 행동한다. 의사 및 약사들은 한의학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한의학이 비과학적인 미신이라거나 효과가 없는데 사기를 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의료 정책을 만드니 어떻게 한의학이 발전할 수 있겠는가 라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의계가 꾸준히 가지고 있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현재 의협이 정부를 믿지 못하며 불신감을 토로하는 것이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는데, 하여간 한약 분쟁 자체는 한의계가 한약 취급을 원하는 일부 약사를 적대한 것보다 정부와 복지부에 대한 불신, 피해의식이 지나치게 격렬한 투쟁으로 이어진 부분이 컸다고 본다. 


한의사들은 한약 분쟁을 밥그릇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여론에 많이 억울해했다. 약사들에게 적대감을 토로한 배경에는 근본적으로 이들이 한약을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고 변증도 없이 판매하는 것 자체가 한의학을 무시하고 한약을 건강식품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라는 생각이 있었다.  


대체로 여론은 한약 분쟁을 한의사와 약사의 경제적 이윤에 따른 집단 이기주의 갈등으로 평가하며 자세한 내용엔 크게 관심이 없다. 한약 분쟁 이후 도입된 한약사 제도도 유명무실해지고 별다른 약사 한의사의 직능 변화 없이 현상 유지가 되었으나 결과적으로 한약 분쟁은 의약분업 논의의 시발점이 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적폐청산이 한일전이다. - 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